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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역적 사죄'가 '불가역적 해결'로…사실상 외교 참사

'불가역적 사죄'가 '불가역적 해결'로…사실상 외교 참사

최재영 기자 stillyoung@sbs.co.kr

작성 2017.12.27 20:17 수정 2017.12.27 21:5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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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합의 내용 가운데 가장 논란이 많았던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표현 역시 알고 보니 외교 참사 수준의 내막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불가역적 사죄'를 요구했던 게 최종 합의 과정에서 불가역적 해결로 바뀐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최재영 기자입니다.

<기자> 

[기시다 후미오/일본 외무상 (2015년) : 이번 발표를 통해 동(위안부)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합니다.] 

일본 정부는 당시 '불가역적 해결'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 뜻도 묻기 전에 '불가역적 해결'에 합의한 정부를 향해 비판이 거셌습니다.

그런데 이 표현은 원래 일본의 사죄와 연결해 우리가 먼저 꺼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2015년 1월 국장급 협의에서 '일본의 사죄는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사죄가 돼야 한다'고 요구했던 겁니다. 일본의 사죄 번복이 빈번했던 점을 짚은 요구였습니다.

그러자 일본은 그동안 주장해온 '최종적 해결' 문구에 '불가역적'을 추가하자고 요구했습니다.

결국 2015년 4월 네 번째 고위급 회의에서 '최종적 및 불가역적 해결'에 잠정 합의를 이룹니다. 그리고는 우리 측 요구로 '일본 정부가 재단 관련 조치를 착실히 시행한다면'이라는 전제를 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일본이 예산 10억 엔을 출연하면 위안부 문제는 불가역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해석되는 여지만 만들었습니다.

[오태규 위원장/위안부 합의 검토 TF : 처음에 (정부가) 그렇게 주장을 했으면 그것이 끝까지 관철돼서 그런 것을 따내야 되는데 따내지 못하고 결국은 그 맥락이 전혀 다른 곳으로 가는 것들은 저희들도 사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당시 청와대는 '불가역성'은 일본의 사죄에도 적용된다는 자기만의 생각으로, 사실상 '외교 참사'를 초래했습니다.

(영상취재 : 최남일, 영상편집 : 이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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