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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가재난질병 연구하랬더니…'돈벌이' 나선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취재파일] 국가재난질병 연구하랬더니…'돈벌이' 나선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위험에 대한 인지능력 부족과 이기심 등으로 언제나 잠재적인 위험에 노출돼 있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게 바로 '국가'입니다. 개인이 직접 하기 어려운 공공서비스를 국가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맡는 것입니다. 유시민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개인과 시장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에, 국가가 개입해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공공서비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보건’입니다. 전염병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많이 감염될수록 내가 걸릴 확률도 높아집니다. 물론, 반대 경우도 성립합니다. 또, 감염 확률을 계산하기가 쉽지 않고, 그로 인한 인적·물적 경제적 피해도 막대하기에 국가는 '보건·방역정책'을 수립해 '국가재난질병에 대한 예방과 관리'에 나섭니다. 물론, 비용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충당합니다.

● 지지부진한 농식품부 'AI 긴급백신' 사업
[취재파일] 국가재난질병 연구하랬더니…'돈벌이' 나선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최근 우리가 자주 접한 국가재난질병에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AI'입니다. AI 바이러스는 전파 속도가 워낙 빨라, 정부는 그동안은 AI가 발생하면 감염원인 닭과 오리를 살처분해 왔습니다. 2003년 첫 발생 이후 지금까지 7천2백만 마리가 땅에 묻혔고, 직·간접 피해액도 1조 원에 달합니다.

잇따른 AI 발병으로 인체 감염 위험성까지 제기되자, 정부는 지난 10월 전문가 공청회를 거쳐 'AI 긴급 백신' 정책을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무조건 살처분하는 게 아니라, AI가 발생하면 주변 농가 가금류에 백신을 주사해 피해를 줄이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업이 지지부진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유는 뜻밖에 간단했습니다. 바로, 적합한 '실험실'을 못 구해서였습니다. AI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강해, 반드시 바이러스가 새나가지 않는 '생물안전 3급(BL3)' 시설에서 실험해야 합니다. 그런데 백신 개발에 나서야 할 제약회사들이 이 'BL3' 실험실을 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BL3' 실험실은 건설비는 물론 유지·보수에도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고, 더욱이 주기적으로 국가기관의 점검까지 받아야 해 민간 기업들이 운영하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취재파일] 국가재난질병 연구하랬더니…'돈벌이' 나선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이에 대비해 정부는 2012년 나랏돈 371억 원을 들여, 아시아 최대 규모의 동물용 'BL3' 실험실을 갖춘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를 전북대학교에 세웠습니다. AI를 비롯해 메르스, 광우병 등 민간에서 다루기 어려운 국가재난질병과 인수공통전염병을 연구하라는 취지였습니다. 'AI 백신' 정책을 수립 중인 농림축산식품부 검역본부도 백신 개발에 참여할 제약회사에 이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에서 실험하라고 권했습니다.

● 인수공통전염병 연구소, 돈벌이 위해 대기업 용역 연구 수행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는 제약사들의 'BL3' 실험실 사용 요청을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연구소가 밝힌 거절 사유는 '연구소 내부 사정'이었습니다. 얼마나 중요한 사정이 있었기에 '국가재난질병 연구'라는 연구소 설립 취지까지 어겨야 했을까요? 
[취재파일] 국가재난질병 연구하랬더니…'돈벌이' 나선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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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취재진은 어렵게 연구소 내부 'BL3'실험실로 들어갈 볼 수 있었습니다. 실험실 내부를 직접 확인해 보니, AI 연구 등을 위해 지은 '가금류 사육실'엔 닭이나 오리는 한 마리도 없습니다. 대신 그곳엔 '실험용 쥐'만 있었습니다. 다른 가금류 실험실엔 개당 3천만 원에 달하는 실험용 닭장 10개가량이 텅 빈 채 방치돼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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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결과, '가금류 사육실'에 있던 쥐는 한 대기업이 연구소에 의뢰한 실험용 쥐인 걸로 확인됐습니다. 대기업 용역 실험을 맡기 위해 세금으로 운영하는 'BL3' 실험실을 막아뒀던 겁니다. 한마디로, '국가재난질병'을 연구하라고 지은 연구소가 돈벌이를 위해 대기업의 실험을 대신해 주고 있었던 셈입니다.

더욱이 이 실험은 인수공통전염병도 아닌 사람 영유아용 백신용 실험으로, 생물안전 3급(BL3)보다 낮은 수준의 실험실에서도 충분히 가능한 실험입니다. 이렇게 연구소가 돈벌이에 나선 동안 정작 AI 백신을 개발하려는 제약사들은 연구 개발에 필수적인 'BL3' 실험실을 못 구해 발만 동동 굴렀습니다. 또, 연구소는 대기업 용역 연구를 맡기 위해 앞서 진행 중이던 '메르스 연구'도 서둘러 마치게 종용했던 걸로 알려졌습니다.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던 한 전직 수의대 교수는 "국가 정책, 더 나아가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고위험 병원체 연구를 하라고 지은 연구소가 설립 목적을 망각한 채 돈벌이에 나서고 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 "대기업 용역 연구는 연구소 발전을 위해 받은 것" 해명

이에 대해 연구소장은 "해당 대기업 용역 연구는 애초 'BL2' 실험실에서 실험을 진행했지만, 장비 고장으로 'BL3' 실험실에서 내년 3월까지 임시로 진행하게 됐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대기업 용역 연구를 받은 것도 연구소 발전을 위한 것이다."라고 밝혔습니다.

연구소장의 해명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결론적으로 최소 내년 3월까지는 이 연구소에서 AI 백신 개발을 위한 실험실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올겨울 들어서만 지금까지(2017년 12월 26일) 전북 고창과 정읍, 전남 영암 농장 4곳에서 고병원성 AI가 발생해, 20만 마리 이상의 닭과 오리가 땅에 묻혔습니다. (※ 야생조류 분변에서 AI가 검출된 것까지 합치면 고병원성 AI 확진 사례는 모두 9건입니다.) 또, 안타깝게도 'AI 비상근무'에 나섰던 곡성군 공무원은 격무에 쓰러져, 끝내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돈을 끌어와 조직을 키우는 건 '장(長)'으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조직이 왜 존재하는지, 존재 이유에 대한 성찰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건 '독(毒)'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버스운전사에게 가장 중요한 건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해 교통법규를 무시하며 과속하는 게 아니라 승객들이 안전하게 목적지에 내릴 수 있게 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의 존재 이유가 국가재난질병 연구가 아닌 대기업 돈 벌어주기 위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연구소·전북대·교육부, 적절한 후속조치 마련해야
[취재파일] 국가재난질병 연구하랬더니…'돈벌이' 나선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
사실, 국가의 과학 정책이나 특정 과학자의 연구 과정에 대해 취재하는 건 참 어렵습니다 . 전문적인 내용이 많은 데다, 대개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서만 진행되다 보니, 이른바 정보의 비대칭성도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보니, 연구가 특정 이익집단에 편향성을 가지고 있어도 언론은 연구 결과를 맹신하게 되거나 문제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기자이기 전에 수의사로서, 동시에 기초의학(병리학)을 전공한 연구자(수의학박사)인 저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수주 동안 취재했지만, 연구소는 높은 수준의 보안이 요구돼 접근하는 거조차 쉽지 않았고, 더욱이 연구소에서 진행 중인 구체적인 연구내용까지 파악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저희 언론이 가장 두려워해야 하는 건 특정집단의 이익이 아닌 바로 ‘국민의 눈’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취재와 보도에 임하려고 했습니다.

보도가 나간 뒤, 해당 대기업은 연구소에 의뢰한 용역 연구에 대한 재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수는 없습니다. 해당 인수공통전염병연구소는 물론 연구소를 관리하는 전북대학교, 더 나아가 관리감독 책임을 가진 교육부가 어떤 후속조치를 마련하는지 지켜보겠습니다. 개인 연구나 수익을 위한 연구소가 아니라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국가재난연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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