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입법부 항의 방문에 갑작스런 '일구이언'…방통위가 우려스러운 이유

[취재파일] 입법부 항의 방문에 갑작스런 '일구이언'…방통위가 우려스러운 이유
● 세 번째 항의 방문…한국당의 최우선 과제는 '방통위'

정당의 지도부는 취임 직후나 새해 첫 일정으로 현충원을 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을 모신 곳에서 헌화를 하면서 새 각오를 다지는 것은 정치적으로 여야가 따로 없는 일입니다. 강력한 대여투쟁을 선언한 자유한국당 김성태 신임 원내대표도 첫 일정으로 현충원을 찾은 건 똑같았습니다. 정치적으로는 현충원 다음 일정이 중요합니다. 지도부가 방문하는 장소만으로도 무엇을 강조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국회 내부 일정을 소화하는 게 보통이겠지만 김 원내대표는 지도부 10여 명을 이끌고 과천 방송통신위원회를 항의 방문했습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걸려 있는 최대 현안은 KBS 이사에 대한 해임 절차입니다. 지난 11일, 방통위는 업무추진비를 부당하게 유용했다는 감사원의 감사 결과를 토대로 야권 성향의 강규형 이사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사전 통지한 바 있습니다. 청문 일정도 22일로 못 박아 통보했습니다. 강 이사의 법인카드 사용에 큰 문제가 있으니 청문을 거쳐 해임 건의를 하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공표한 바 있습니다. 강 이사가 해임된다면 KBS 이사회의 여야 구조가 뒤바뀌게 됩니다. 현재 구조는 여권 성향 5명, 야권 성향 6명인데, 강 이사가 해임되고 보궐 이사가 오게 된다면 여권 6명, 야권 5명으로 역전됩니다. 이인호 이사장이 불신임되는 건 물론 고대영 KBS 사장도 해임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한국당 입장에서는 MBC와 마찬가지로 공영방송 KBS 사장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겁니다. 극한투쟁을 통해 존재감 있는 한국당을 과시하려는 김성태 원내대표가 방통위 항의방문을 현충원 다음 일정으로 골랐다는 것은 한국당의 최우선 정치 과제를 보여주기 위한 행보로 볼 수 있습니다. 이번이 세 번째로, 늘 있는 한국당의 위력 시위로 가볍게 보기에는 새로 구성된 한국당 지도부가 보여주려는 정치적인 의미는 명확했습니다.

● 김성태 "인민재판식 언론탄압"…이효성 "심사숙고해 재논의"

이번 항의 방문은 전체를 공개했던 전과는 달랐습니다. 오프닝을 공개하고 발언 요지를 말하고는 비공개로 회의가 진행됐습니다. 기자들 입장에서는 아쉽기는 했지만 공개된 부분을 통해서 한국당 의원들의 주장하는 바가 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습니다. 김성태 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런 인민재판식 언론 탄압은 군사 정권 때도 있지 않았다"며 "방통위가 언론을 탄압하고 장악하는 현실을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과방위 간사를 맡고 있는 박대출 의원도 "공영방송 이사에 대한 찍어내기를 불법적으로 하고 있다"며 "연말 시한을 정해서 진행되는 해임 절차를 즉각 중단하라"고 말했습니다. 곧바로 비공개로 전환됐는데, 고성은 간간이 들려왔습니다. 김 원내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하는 것이냐, 왜 본인이 결정을 못 하냐"고 호통치는 목소리가 문밖까지 들리기도 했습니다. 강 이사에 대한 해임 절차를 철회하라고 다그치고 있다는 건 쉽게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할 말을 쏟아내고는 이번에는 미련 없이 떠났습니다. 지난 10월 27일 정우택 원내대표가 한국당 의원들과 항의방문 했을 때는 자신들이 추천한 사람을 방문진 이사로 임명하라며 농성하듯 버티기도 했지만, 이번에는 그리 오랜 시간을 끌지 않고는 국회로 돌아갔습니다. 이효성 위원장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돌아가는 의원들을 직접 배웅하면서 항의 방문은 마무리됐습니다. 이 위원장은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우리가 즉답을 할 수는 없다"며 "위원들과 심사숙고하겠다"고만 답했습니다. 

● 한국당 항의 방문 뒤 드러난 방통위원들의 이견
방송통신위원회
곧바로 이어진 전체회의에서 방통위원들은 이번 사안을 어떻게 보는지 다양한 의견을 쏟아냈습니다. 한국당 추천의 김석진 위원은 신중한 처리를 주문하면서 "한국당이 항의한 내용을 숙고해서 현명한 결정을 해야 한다"며 "무리하게 강행 처리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민의당 추천 표철수 위원도 "연내 시간에 쫓겨서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여유를 갖고 처리를 해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민주당 추천의 허욱 부위원장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허 부위원장은 "제1야당 의원들이 공식적으로 우려를 한 만큼 정무적으로 판단해서 일정을 조정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나 싶다"고 밝혔습니다.

대통령이 추천한 고삼석 위원의 생각은 달라보였지만 소수 의견에 그쳤습니다. 고 위원은 "결정이 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처리 방향이나 일정을 얘기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행정부의 권한과 절차 또한 존중돼야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강규형 이사 청문 일정에 대해서 위원들 사이 큰 이견이 존재한다는 것이 확인된 순간이었습니다.

이효성 위원장은 "제1야당이 와서 신중하게 일을 처리해달라고 한 만큼 심사숙고해서 처리하는 게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앞서는 자세"라며 "여러분들의 의견을 받아서 신중하게 처리 하겠다"고 마무리했습니다. 회의를 마친 뒤 청문 일정을 확인해보니 27일로 연기됐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닷새 일정이 뒤로 밀린 겁니다. 27일 날 청문을 해서 정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강 이사에 대한 해임 건의가 같은 날 진행될 수도 있지만, 강 이사 해명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되면 일정은 더 뒤로 밀릴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 외부 압력에 의한 심사숙고?…신뢰 땅에 떨어진 방통위

방통위 설치법에는 방통위원들의 신분을 보장하면서 "위원은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외부의 부당한 지시나 간섭을 받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한국당 의원들이 부당한 지시나 간섭을 한 것이냐는 건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정치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 위해 위력 시위를 벌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것도 세 차례 시도 끝에 그들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점에서 정치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공개적인 항의 방문에 방통위는 공개적으로 일정을 조정하면서 김성태 원내대표의 면을 세워줬습니다. 하지만 한국당이 성과를 가져간 만큼 방통위는 기관의 신뢰가 땅에 떨어졌습니다. 강도의 문제이지 정치권력이 세게 압박하면 결국 방통위의 행정 절차를 번복시킬 수 있다는 나쁜 선례를 남겼기 때문입니다. 22일로 청문을 한다고 이미 당사자에게 못 박아 통보했는데 슬그머니 미룬 것은 기관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린 셈입니다. 오히려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강규형 이사가 청문을 미뤄달라고 요청한 만큼 이를 수용해 날짜를 조정했다고 하면 그건 이해되는 측면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의사 결정이 나온다면 당사자의 의견을 작게 듣고 외부인의 목소리는 크게 듣는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방통위와 의견이 다른 모든 세력이 물리적으로 압박하려 총력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이번 사안은 감사원에서 방통위에 KBS 이사들의 법인카드 부정 사용 감사결과를 통보하면서 한 달 이내에 인사조치를 하고 그로부터 15일 이내 최종 결과를 회신하라고 기한을 못 박았습니다. 인사 문제와 관련한 감사 결과는 통상적으로 이런 단서조항이 달려 나오고 해당 기관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감사원의 요청을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감사원 관계자는 "인사와 관련해 한 달이라는 시간은 판단하기 충분한 시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감사원의 통보가 11월 24일 날 나왔으니 예정대로 22일 날 청문을 했다고 하면 감사원의 요구를 수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당 의원들의 항의 방문 이후 청문 일정을 조정하면서 방통위는 감사원의 요구사항을 지키지 못하게 됐습니다. 입법부의 요구사항을 들어주느라 행정부의 행정 절차를 스스로 어긴 셈이 됩니다. 물론 감사원의 인사조치 시한이 의무조항은 아니지만, 정치권에 휘둘려 의사 결정을 못 할 정도로 방통위는 지난 한 달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난 10월 27일, 자유한국당 원내지도부 방통위 항의방문
이번 사태에서 이효성 위원장의 소극적인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영방송 파업 사태는 방송정책 주무 기관으로서는 가장 시급한 현안입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해법을 내놔야 합니다. 하지만 한국당 의원들의 정치적인 요구에 별 논리적인 근거 없이 제1야당의 요구가 있어서 심사숙고한다는 식의 태도는 곤란합니다. 여당의 요구가 있거나 제2, 제3 야당이 비슷한 요구를 공개적으로 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지 스스로 설명하기 곤란합니다. 명확하지 않은 위원장의 입장을 묻기 위한 기자들의 질문을 일부 사무처 직원이 사전에 막는 태도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한국당 의원들과 면담 직후 위원장의 입장을 물으려 하자 사무처에서는 "사전에 허락을 맡고 인터뷰하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요구를 하기도 했습니다. 아무리 실무자의 발언이라고는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는 부처가 군사 정권에서나 가능할 법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어떤 이슈보다 엄중한 공영방송 KBS 파업 사태를 처리하면서 터져 나온 일구이언은 방통위에 앞으로도 큰 짐으로 남을 건 분명해 보입니다.

(사진=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