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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사를 싣지 않은 기자의 변명 (종현 씨 사망 사건에 부쳐)

[취재파일] 기사를 싣지 않은 기자의 변명 (종현 씨 사망 사건에 부쳐)
▲ 지난해(2016년) 언론진흥재단에서 자살보도 관련 교육을 받는 수습기자들

어젯(19일)밤, 개인 페이스북에 올렸던 짧은 글입니다. 뉴미디어국의 선배로부터, 취재파일로도 공유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듣고 올립니다. 저는 어제 아침 SBS 메인뉴스에 들어갈 예정이었던 리포트 하나를 맡았다가, 결국 쓰지 않았습니다. 기자가 취재만 하고 기사를 쓰지 않고, SBS 보도국이 어떤 사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기로 결정한 과정을 함께 나눴으면 합니다. 제겐 다시 한 번 작은 다짐이 될 수 있고, 다 같이 생각해볼 만한 지점도 조금 있는 얘기이기 때문입니다. 사진이나 영상을 삽입하지 않는 점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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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SBS 8뉴스>에 유명인의 사망사건에 대한 리포트가 하나 발제됐다. 오후 편집회의에서 결국 보도하지 않기로 결정이 나오기까지, 보도국에서 이 기사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기자들은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했던 그 리포트를 오늘 내가 '할 뻔 했다.'

아침 8시에 관련 상황을 보고하고 계속 마음을 졸이고 취재는 취재대로 하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SBS 보도국은 국장이 주재하고 각 부의 부장들이 참여하는 편집회의 내용을 보도국 전 구성원이 공유한다. 오늘 이 보도를 메인뉴스에 싣지 않기로 최종결정한 오후 편집회의에서 치열하게 오고 간 토론을 나중에 읽고...기뻤다. 취재기자로서 보고한 내용과 논의됐으면 하고 바랐던 내용이 모두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말만 앞서지 않도록, 나머지 감정은 앞으로 일로써 얘기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보도국 메인뉴스 편집회의에서 이 리포트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기에 앞서서, SBS 뉴미디어국이 엄청난 트래픽이 발생한 관련 기사들을 메인화면에서 배제하고 더 이상의 파생 영상을 제작하지 않기로 결정한 데 대해 존경심을 표하고 싶다.

모든 자살에 대해 보도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볼 순 없다. 그러나 사회적, 구조적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측면이 있어 공공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게 공익에 더 부합한다는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사망사건에 대해, 필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하는 것이 옳다. 이 원칙을 모든 기자들이 공유하고 있지만, 정작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정교한 판단은 뒷전이 되기 쉬운 것도 사실이다.

중앙자살예방센터는 오늘 언론사들에 다시금 <아이돌 멤버 사망사건 보도 자제요청>을 보내왔다. 오늘 읽었던 한 온라인 연예매체의 기사는 이 사망사건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다 한 후에,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자제요청> 끝에 붙어 있던 안내문을 포함시켰다. "이 기사를 읽고 힘든 기분이 든다면, 129나 1577-0199 등 긴급구조라인을 활용할 수 있다"고 기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발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짜 발전은 저 <자제요청>이 강력하게 되풀이 말하고 있는 '자살보도 자제의 원칙'과 '자살보도 권고기준'에 입각해 생각하는 일이다. <자제요청>이 얘기하는 대로 '불가피하게 보도해야 하는 자살사건'인지 숙고하는 일이다. 기자들에게 '쓰지 않기로 결정하기'란... 다소 경망스런 비유일 수 있으나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치기'에 가깝다. 오늘 그 지나치기를 허락해 준 선배들이 고맙다.

이번 사망사건의 당사자는 언론이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는 유명인이자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우리는 어제(12월 18일) 1보를 다뤘다. 그러나 더 이상의 파생 기사는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제 1보 기사에서도 SBS가 자살 방법에 대한 언급을 아예 배제한 단 두 곳의 방송사 중 한 곳이었다는 것이 기쁘다. 영상이 빠질 수 없는 TV뉴스지만, 나는 개인적으론 오늘 관련 영상 촬영을 최소화하는 데 종일 주의를 기울였다. 감성을 자극하는 정도는 영상이 단순 텍스트보다 훨씬 더 강하기 때문에, 자살보도에 대해, 그리고 영상 촬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특히 방송기자들이 더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흔들려서는 안 되는 자살보도준칙과 더 이상의 관련 기사를 생산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오늘 상황에 대한 판단과는 별도로,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다. 오늘 마음 졸이며 알아보고 취재한 그 스타, 샤이니의 종현 씨를 솔직히 지금까지 나는 잘 알지 못했다. 오늘 아주 조금이나마 알게 된 종현 씨는 참 예민하고, 사회에 대해 늘 옳은 태도를 견지하고 싶어하고, 약자의 편에 서려고 노력했으며, 열심히 살았던 멋있는 청년이었다. 그 본인이 원한 대로, 불필요한 추측과 해석의 확산에 <SBS 8뉴스>가 참여하지 않는 것은 두번 세번 생각해도 맞는 일이다. 또, 그 누구도 정확한 정황을 알 수 없는 일에,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 수 있는 섣부른 결론을 내려서 제 3자에 대한 근거 부족한 공격이 이어지지 않도록 할 일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왜 그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오늘 하루 동안만으로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던 그 멋있는 청년을 사랑한 많은 사람들의 슬픔도 천천히, 부드럽게 가라앉기를 기도한다.

참고 1.

<자살보도 권고기준 2.0> (2013년 9월, 한국기자협회·보건복지부·중앙자살예방센터 공동 발표)

1 언론은 자살에 대한 보도를 최소화해야 합니다
2 자살이라는 단어는 자제하고 선정적 표현을 피해야 합니다
3 자살과 관련된 상세 내용은 최소화해야 합니다
4 자살 보도에서는 유가족 등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신중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5 자살과 자살자에 대한 어떠한 미화나 합리화도 피해야 합니다
6 사회적 문제 제기를 위한 수단으로 자살 보도를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7 자살로 인한 부정적 결과를 알려야 합니다
8 자살 예방에 관한 다양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9 인터넷에서의 자살 보도는 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참고 2.

<아이돌 그룹 멤버의 사망사건 보도 자제요청>
(2017년 12월, 중앙자살예방센터 배포)

....선략(자살보도 권고기준 2.0과 내용 중복).....

사망 원인이 자살이라는 사실이 중요한 경우에도 제목이 아니라 본문 내용을 통해 밝히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자살방법에 대한 구체적 묘사는 절대 피해야 합니다. 과거 탤런트 고 최진실 씨 사망(2008.10.) 후 유사 방법으로 자살한 수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선례를 미뤄보아, 자살수단에 대한 보도는 더욱 더 자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불가피하게 자살사건 보도를 해야 한다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살은 탈출구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사 내용 중에 포함하여 주시고, 도움이 필요할 때는 129나 1577-0199 등 긴급구조라인을 활용할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SBS '보이스 (VOICE)'로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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