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듣기와 만들기>
▷ (박진원 논설위원) 여태까지 본인의 음악 여정을 설명해 주셨는데 남이 만든 음악은 많이 들으십니까?
▶ (김수철) 약간 광범위하게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들어요. 예전부터 그랬어요. 트로트도 듣고 다 들었어요. 요즘은 우리 가요계 후배들 아이유, 자이언티 그리고 도끼, 비와이 이런 음악들을 주로 많이 들어요. 내가 좋아하는 동생들이에요. 그 외로는 이적, 김동률 이런 친구들 것 듣고. 그 다음에 제가 주로 듣는 게 클래식과 전통음악이에요.
▷ 같이 어울리시는 후배들은?
▶ 제 바로 밑에 친한 애들은 피아니스트 김광민, 정원영,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의 김종진. 이 친구와는 밥도 같이 먹고 오래도록 만나고 있어요. 그리고 그 밑으로는 유재하가 너무 친한 동생이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1987) 그리고 신해철을 예뻐했는데 이 친구도 아깝게 세상을 일찍 떠났죠(2014).
▶ 스승님은 굉장히 많습니다. 국악을 가르쳐주신 모든 스승님들. 서양 음악은 제가 독학했거든요. 클래식의 베토벤 선생님, 차이코프스키 선생님, 모차르트 선생님, 바흐 선생님 모두 제가 공부한 음악들이고요. 그리고 대중음악 쪽에서는 지금까지 존경하는 분들이 제프 벡(Jeff Beck)과 데이비드 길모어(David Gilmour,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기타리스트)에요. 이 분들은 이제 연세가 칠십이 넘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연주를 하시고. 돌아가신 분들 가운데는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를 굉장히 존경해요. 제프 벡, 데이비드 길모어 두 분은 기타리스트로써 너무너무 존경하는 분들입니다. 기타 연주는 이게 하루 이틀이라도 연습을 하지 않으면 녹슬거든요. 유지를 위해 매일 쳐야 돼요. 국악을 하든 뭘 하든지 기타를 안 놓는데 제프 벡 선생님이나 데이비드 길모어 선생님처럼 저도 계속 연주해야 선생님들 뒤를 따라 가죠.
▷ 요즘엔 MP3 같은 디지털 음원으로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방식으로 음악을 들으세요? LP나 CD로 들으시나요?
▶ CD는 컴퓨터가 0과 1 하는 거 아닙니까? 사실 전문가끼리 얘기할 때는 이 0과 1으로 재현된 소리가 완벽하지 않거든요. 지금 CD 플레이어는 우리가 듣지 못하는 저음역대와 고음역대가 깎여서 나오거든요. LP처럼 풍요롭고 따뜻한 이런 걸 느끼지는 못해요. 그래서 오래 들을수록 건조해지는데, 그러니까 LP 시절이 그립긴 하죠. 그러나 불편함 때문에 요즘은 LP가 잘 안 나오고 CD 플레이어도 MP3 때문에 잘 안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감상하는데 다소 어려움은 있어요. 집에서는 옛날 CD 플레이어로 들어요
▶ 작곡할 때 메인 악기는 피아노입니다. 피아노로, 건반으로 하지만 꼭 기타로 작곡해야 될 게 있어요. 그러면 기타로 작곡하고. 나눠서 합니다.
<전성기 때 버신 많은 돈 다 뭐 하셨습니까?>
▷ 이번에 내신 책을 보면서 좀 의아했던 게 주로 예술 작업 위주로 기술돼 있고 개인적 얘기는 많지 않은 점이었어요. 일반적인 자서전과는 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사적으로는 어떻게 사시는지도 궁금한데 시대를 풍미한 인기 가수로서, 작곡가로서 돈 많이 버셨죠?
▶ 돈 많이 벌었어요.
▷ 그 돈 다 뭐하셨습니까?
▶ 그 때는 제가 생각할 수 없는 금액의 돈이 막 들어오더라고요. 그런데 저는 그 돈 갖고 계속 국악 녹음하고. 아시다시피 국악은 제작해봐야 거의 안 팔려요. 그러니까 계속 공부하고 국악 녹음하고, 돈 벌어서 국악 녹음하고 돈 벌어서 국악 녹음 이렇게 했어요.
▷ 대스타로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실 걸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요즘 어떻게 사십니까?
▶ 제가 공부할 때는 수입이 제로에요. 제가 <서편제> 때도 막 잘나가다가 공부해야겠다고 해서 1년 쉴 때 수입이 제로에요. 업다운, 기복이 심해요. 기복이 심해서 국악 할 때는, 제가 여유롭지 못할 때는 집을 잡히고 대출받아서 녹음한 적도 있어요. 그렇지만 국악 녹음하면서 배운 게 되게 많거든요. 작업하면서 시련에서 배우는 게 많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거죠). 제가 어려울 때 안성기 형이 적지 않은 큰 돈을 빌려주셔서 그 돈으로 국악 녹음하고 노래해서 갚고 이런 거를 여러 번 했죠.
▷ 매니저나 소속 회사도 없으신가요?
▶ 없어요. 혼자 하죠. 밥은 먹고 사는데 제가 구상하는 작업을 잘 하기는 힘들어요. 국악, 현대 악기 편성도 저는 보통 100인조 이렇게 대규모로 편성을 하다 보니 이게 좀 어렵고, 가요 음반도 10년전부터 준비는 다 해놨는데 요즘 기획사 분들이 아이돌 위주로 하다 보니 새 음반 내기가 힘들어요.
▷ 선생님 정도의 음악가면 외국의 대가들처럼 음악 작업을 뒷받침하는 스튜디오나 스태프가 있을 것 같은데 아닙니까?
▶ 녹음실, 작업실이 작년까지는 집 밖에 따로 있었는데 이제 나이도 들고 힘이 들다 보니 그냥 집으로 들어왔어요. 제가 회사가 없거든요. 그리고 음반을 내면 그게 다가 아니라 홍보, 유통 그런 걸 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걸 몰라요. 회사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회사가 없는 상황이에요. 작곡은 계속하지만 사실 음악 활동하기에는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에요. 이는 우리뿐 아니라 요즘 전 세계적으로 그래요. 아이돌들 빼놓고는 음악을 계속하는 분들이 어려우리라 봅니다. 저는 작곡을 계속하니까 그나마 밥은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런데 뭔가 이런걸 저지르지 못해요. 록 음반도 내고 싶고 가요 음반도 내고 싶은데...
배철수(송골매) 형이 2~3년 전부터 '넌 히트곡이 많으니까 후배들이랑 '콜라보' 해보라'고 해서 그런 걸 추진했었어요. 형이 어느 기획사를 소개시켜줬었는데 그 회사 사장님 전화 안 오더라고요. 전화가 안 와. 이해는 해요. '쟤 음반 내서 뭐 팔리겠나?' 해서 안 팔린다는 결론이 났을 거 아니에요. 그게 현실이에요, 현실.
▷ 살아오시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셨어요? 책에서는 부모님 돌아가셨을 때를 각별하게 언급하셨고 2002년엔 배우자와 헤어지시는 일도 있으셨고.
▶ 이번 책은 자서전이 아니라 음악 이야기에요. 그래서 개인적인 일보다는 음악 위주로 썼는데 저는 부모님에 대한 깊은 사랑을 나이가 들수록 느껴요. 살아계실 때 음악을 워낙 반대하시다 보니 저도 힘들고 부모님도 힘 드셨죠. 그러나 이제 돌아가셔서 제가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음악 공부를 더욱 열심하겠습니다'하고 다짐했어요. 지금까지 항상 부모님께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책에도 맨 처음에 '하늘에 계신 아버님, 어머님께 바친다'고 썼어요. 저 말고도 누구나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잖아요. 연예인이 밖에서 보면 화려한 것 같지만 사람은,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다 똑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사랑하고 소리를 추구하고 공부하고 연구해서 제가 하고자 하는, 우리나라의 소리를 활성화해서 세계에 나아가려는 작은 꿈을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 지금까지 40년 음악생활에서 37장의 음반을 냈는데 그 중 25장이 국악 관련이었습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음반이 2002년의 <기타 산조>고 그걸 생각하면 사실상 25년 동안 37장의 음반을 내신 건데요. 미국의 빌리 조엘(Billy Joel)같은 뮤지션도 93년 이후 팝, 록 음반은 내지 않고 클래식 작품만 내겠다고 하더니 이제 클래식 음반도 내지 않고 공연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이제 음반은 안내실 건가요? 앞으로 정말 하시고 싶은 게 뭔지 궁금합니다.
▶ 그 둘 다(공연과 음반)에요. 사실 록 음반은 10년 훨씬 전부터 준비를 했는데 기획사를 만나기 어려워요. 음반을 내고 나면 홍보나 여러 가지 일들을 해야 하는데 그걸 할 회사를 만나지 못했어요. 국악 음반도 다음 걸 해야 하는 데 그럴 상황이 안됐고 가요 음반은 아까 얘기한 대로 배철수 형님 권유로 후배들과의 '콜라보' 음반을 추진했었는데 기획사 사장님이 연락을 안주셨어요.
그 동안 저는 공부와 작곡에 충실했습니다. 지금부터는 그 동안 제가 공부하고 작곡한 것을 공연을 해서 우리나라 공연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싶습니다. 이렇다 할 우리나라 공연 문화 콘텐츠가 없거든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연은 많지만 우리 문화 콘텐츠가 없어요. 저는 그걸 만들고 싶어요.
▷ 그런 공연을 하시고 싶다는 선생님의 역량과 능력에 의심을 품는 사람은 많지 않겠지만, 선생님이 구상하는 수준의 공연을 하려면 상당한 자금이 필요할 텐데요
▶ 역시 예리해. 지금 제가 못하고 있는 게 그 부분이에요. 제가 실내악으로 이렇게 저렇게 몇 개 하려고 벌써 했었죠. 이걸 하려면 제가 구성하는 100인조 오케스트라가 필요해요. 그래야 그 동안 준비했던 음악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수 있어요. 제가 그 유명한 <서편제>도 공연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이런 걸 할 수 있는 파트너를 만나야 됩니다. 이것 보시고 우리문화에 관심을 갖고 후원하실 만한 분 꼭 연락을 주세요.
[뮤지션 김수철의 40년 여정④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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