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술 마셨다고 봐 준다? '음주 감형 논란' 8년째 제자리

박하정 기자 parkhj@sbs.co.kr

작성 2017.12.11 15:18 수정 2017.12.11 16:29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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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술 마셨다고 봐 준다? 음주 감형 논란 8년째 제자리
이른바 '음주 감형'을 취재하기 위해 이것저것 자료를 검색해 보던 중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법 조항과 그것이 적용된 결과인 판결문, 국회에서 이제껏 관련법에 대해 논의하던 회의록, 법학자가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해 놓은 논문들을 찾아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조두순 사건 피해 아동 아버지의 목소리가 담긴 인터뷰를 보게 됐기 때문입니다. 짧은 한마디였지만, 우리가 왜 이 문제를 그냥 손 놓고 두고 볼 수만은 없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 조두순 사건 피해 아동 아버지 (2009년 인터뷰)
"(조두순 판결문에서) 제일 화났던 부분은 '술에 취해서 변별력이 없고' 하는 부분이, 다른 것에 비해서 제일 화가 나요."


술에 취해 변별력이 없었다, 즉 심신미약의 상태에 있었다는 이유로 조두순은 형이 줄었습니다. 그 결과는 징역 12년이었고 조두순은 2020년이면 출소합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범행을 저지른 만큼 징역 12년은 너무 가벼운 처벌 아니냐는 여론이 당시에 이어 다시 한번 일었고, 이 여론은 조두순 재심과 '음주 감형' 관련 법 규정을 폐지해달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으로 이어졌습니다.음주 폭행, 음주감형● '음주 감형' 막는 개정안 발의… 통과는 0건

이른바 '음주 감형', '주취 감형', '음주 감경'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내용의 법조문은 사실 형법에서 심신장애인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조항입니다(이 글에서는 이 조항에 따라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심신미약을 인정받고 감형된 경우를 '음주 감형'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①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 심신장애로 인하여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
③ 위험의 발생을 예견하고 자의로 심신장애를 야기한 자의 행위에는 전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술을 많이 마셔서 위 법률 조항에 해당되는 심신상실이나 심신미약 상태가 되면, 그 행위를 처벌하지 않거나 처벌하더라도 형을 줄여준다는 게 이 법의 내용입니다. 물론 '단순히 술을 마셨다'는 것만으로 이 조항을 적용받진 않습니다. 술에 취해서 사물 변별 능력 혹은 의사 결정 능력이 없거나 약하다는 걸 인정받아야 합니다.

이게 인정되면 판사는 '반드시' 처벌을 하지 않거나 형을 줄여줘야 합니다. 우리 형법의 기본 원칙인 '책임주의'가 이 법의 근간입니다. 책임주의는 책임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는 원칙을 말하는데, 사물 분별 능력이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하는 행동이 불법적인 것인지에 대한 인식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겁니다.

조두순 사건 이후 논란이 거세지자 일부 법이 개정됐습니다.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음주 감형' 제한 조항이 생긴 겁니다. 두 법에 만들어진 특례 조항에 따라, 성폭력 범죄의 경우에는 판사가 '음주 감형'을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형법 제10조 2항을 적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문구가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음주 감형'을 안 할 수 있다"는 건 "'음주 감형'을 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음주 감형'의 가능성 자체는 열려 있는 겁니다. 또 성폭력 범죄가 아닌 다른 범죄의 경우엔 여전히 사물 변별 능력이 부족했다는 게 인정되면 반드시 감형을 해 줘야 합니다. 그래서 성폭력이 아닌 다른 범죄의 경우에도 '음주 감형'을 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으로 서영교 의원은 형법 제10조에, 지금은 없는 4항을 새로 만들자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형법 일부개정법률안 (서영교 의원 2012년 9월 5일 발의)>
형법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제10조에 제4항을 다음과 같이 신설한다.
④ 음주나 약물(「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제2조에 해당하는 약물)에 의한 심신장애자의 행위는 제2항의 규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술이나 약물 때문에 심신장애가 생겼을 경우엔 감형을 할 수 없게 하는 내용입니다. 2년 뒤엔 이상민 의원이 또 다른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상민 의원 2014년 5월 12일 발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를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
(중략) 
제5조의 6(음주·약물로 인한 상습범죄의 가중처벌) ① 상습적으로 음주 또는 약물의 영향을 받아 만취·착란·혼미의 정신상태에 빠진 후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범죄를 범한 사람은 각 범죄에 규정된 형의 2배까지 가중한다.


2명 이상이 함께 폭행이나 상해죄를 저질렀을 때 등 몇 가지 범죄에서 술을 마신 상태였다면, 원래 받아야 할 형량을 2배로 늘리겠다는 내용의 법안입니다. 이런 법안들을 포함해 '음주 감형'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지만 아직 통과된 법안은 없습니다. 뜨거운 여론에다, 법안이 한두 건 발의된 것도 아닌데 왜 아직 국회 문턱을 넘은 법안은 없는 걸까요?
음주감형, 국회, 법안
● "책임주의 원칙 흔들려"…대안은 없나?  

지난 19대 국회 때 관련 법안을 두고 이뤄진 논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2015년 11월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음주 감형' 관련 법안 7건을 상정하고 그 내용을 논의했습니다. 

○ 수석전문위원 남궁석
(전략) 이상 대부분이 법률안은 심신장애하의 감경을 배제하기 위해서 예견가능성을 요건에서 제외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데 이는 근대 형법의 책임주의와 마찰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현행 형법에서도 감경을 배제하는 제10조제3항을 두고 있는 것을 고려하면 이러한 입법취지는 법률의 개정보다는 법원이 재판과정에서 제10조제3항의 취지를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법무부 차관 김주현
심신장애 감면규정 적용을 필요적으로 배제하는 경우에는 우리 형법의 책임주의 원칙에 반할 우려가 있어서 신중하게 봐야 한다는 의견이고요. (중략) 일반 형법을 고치는 것보다는 필요한 경우에 해당 특별법을 개정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것이 형법의 책임주의 체계를 유지하는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 소위원장 이한성
수고하셨습니다. 대법원에서 의견 말씀해 주십시오.

○ 법원행정처 차장 임종헌
법무부하고 동일한 의견입니다.


앞서 설명했던, 형법 제10조의 존재 이유와 유사한 논리입니다. 사람에게 분별 능력이 없을 때는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하는 게 우리 형법의 대원칙인데, 술을 마셨다고 해서 분별 능력이 없는 데에도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하면 형법의 대원칙이 흔들리게 된다는 겁니다.

이번 20대 국회 들어서도 '음주 감형' 법안이 여러 건 발의됐습니다. 19대 때와 마찬가지로 형법에 10조 4항을 신설하는 법안, 성폭력 범죄에서 '음주 감형'을 하지 않을 수 있게 했는데 아예 못하도록 못 박는 법안,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범죄의 경우에도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음주 감형'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자는 법안 등입니다.
음주 흡연과 체내 중금속아래에 설명하겠지만 여전히 형사정책연구원이나 법무부, 법원행정처는 법 개정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책임주의 원칙에 위배될 우려가 있고, 강권을 당했다든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속아서 술이나 약물을 하게 됐다든가 하는 이유로 비자발적인 음주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을 때도 일괄적으로 '음주 감형'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수년 동안 반복되는 비슷한 논의 속에 여전히 법안은 국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2016년 서영교 의원 발의 개정안에 대한 검토 요청 회신 중 발췌)
○ 형사정책연구원
음주 또는 약물로 초래된 심신미약의 정도와 행위자 특성과 관계 없이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경우를 일괄적으로 배제하고 있으며 약물의 범위가 의료용으로 쓰이는 항정신성의약품을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법형식 및 내용에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함.

○ 법무부 
▷ 신중 검토 필요
- 근대 형법의 기본 원리인 책임주의 원칙 위배 우려
- 심신장애 감경에 대한 임의적 배제 특례를 이미 규정하고 있는 다른 법률(「성폭법」, 「아청법」)과 함께 체계 전반에 대한 검토 필요
- 사안의 특성을 반영한 구체적 타당성 도모 필요. 음주, 약물로 인한 범죄도 행위태양과 심신장애 원인, 정도가 매우 다양

○ 법원행정처
▷ 신중검토/보완의견
-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만취상태에서 범죄를 범한 경우에는 심신미약 감경 제도가 남용되지 않도록 법원실무를 매우 엄격하게 운영하고 있고,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개정 법률안이 의도하는 바는 상당 부분 반영할 수 있다고 보이며, 앞으로도 이러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임.
- 가사 음주 또는 약물로 인한 만취상태의 경우를 심신미약 감경 규정 적용 대상에서 배제하는 것으로 입법이 이루어지더라도 최소한 피고인 본의의 의사에 기하지 않은 비자발적 음주 또는 약물 복용으로 인한 만취 상태의 범죄마저 심신미약 감경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은 부당하므로 적절한 보완책 마련이 선행되어야 할 것임.


8년 동안 문제의식만 그대로…활발한 대안 제시 필요해

조두순 사건이 알려진 해 겨울,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한 보고서를 내놓았습니다. 연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한상훈 교수는 이「명정상태 범죄자의 형사책임과 개선방안」이라는 이 보고서에서, 만취 상태 범죄에 대해 역사적으로 어떤 처벌을 해 왔는지, 현재 외국의 입법은 어떻게 돼 있는지, 그리고 만취 상태 범죄와 관련한 법률을 어떻게 개정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법원, 재판, 생중계그러면서 형법 제10조 제2항을 바꾸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 변별 능력이 약한 사람의 행위는 형을 '감경한다'고 되어 있는 형법 제10조 제2항을, '감경할 수 있다'로 바꾸자는 겁니다. 이 경우 술을 마셔서 사물 변별 능력이 부족하다는 게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형을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판사가 "구체적인 경위와 사정, 동기, 의사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그가 저지른 잘못에 부합할 정도의 형벌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위에서 법원행정처가 설명한, 법원 실무상 심신미약 감경 제도가 남용되지 않도록 한다는 취지와도 일면 맥을 같이 합니다. 강권을 당하거나 누군가에게 속아서 술을 마셨을 경우라도 그 사정을 고려한 판결을 내릴 여지를 남겨뒀습니다. 또 술을 마셨다는 이유로 특정 범죄의 경우에만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법적 근거도 찾기 어렵다고 한 교수는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독일의 '완전명정(만취)죄'를 소개합니다. 

술을 마시고 범죄를 저질렀을 때 사물 변별 능력이 없다는 게 인정되면 그 범죄에 대한 처벌은 할 수 없더라도, 술을 마셔서 만취 상태에 이르게 된 행위 자체를 처벌하자는 내용이 바로 '완전명정죄'입니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에도 독일과 같은 이런 형태의 규정이 있어야 판사가 술에 만취한 사람에 대해서도 과감하게 사물 변별 능력이 없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먼저 사회문화적으로 술을 마셔서 만취 상태에 빠지는 것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우리 사회에 전제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 서로 편한 사이가 되거나 친근감을 가질 수는 있더라도 그 때문에 이성을 잃고 폭행이나 상해 등의 범죄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보고서는 조두순 사건이 처음 언론을 통해 불거졌던 지난 2009년에 나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입니다. 8년이 지나는 동안 음주와 만취에 관대하던, 그리고 그 상태에서 일어나는 사건사고에까지도 관대하던 사회 분위기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2010년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과 2013년 「아동·청소년의 성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에 따라 일부 범죄에서만 '음주 감형'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법 개정이 이뤄졌을 뿐 다른 변화는 없었습니다. 여전히 일선 법원에서는 음주로 인한 심신미약 판단과 그로 인한 감형이 이뤄집니다.

예를 들면 지난해 7월, 같은 노숙인 쉼터에서 알게 된 남성과 술을 마시다 시비가 붙어 그 남성을 벽돌로 여러 차례 폭행해 숨지게 한 피고인에게 법원은 심신미약을 인정하고 감형해 징역 10년을 선고했습니다. "왜 술 때문에 자신의 자제력을 잃어 저지른 범죄도 감형의 대상에 포함시켜줘야 하느냐"는 사람들의 문제 의식과 질문은 몇 년째 그대로지만 그에 대한 대답인 개정안은 국회에 머물고 있습니다.

개정안이 바로 통과되기에 문제가 있다면 어떤 부분을 더 개선해야 하는지, 이제는 활발한 논의와 그에 따른 대안 제시가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