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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찾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③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찾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③
● 걷기에 대한 단상
 
나무와 나무 사이로 길이 이어진다.
 
가끔 길을 걷다 보면 스스로 감상적이 되거나 관념적일 때도 많다. 불현듯 밀려오는 감정의 변화가 그것인데, 어쩌면 이런 변화들이 걷기의 묘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일상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다양한 현상들을 보며 마음의 변화나 시각의 변화를 경험하는 것인데, 특히나 잊고 살았던 자연이라는 대상과 가까워진다는 느낌이 든다. 일상에 지쳐 시야가 늘 도시의 어느 지점에만 머물러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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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 data-captionyn="N" id="i201123240"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40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그렇게 각박하게 스스로를 옥죄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연과 교감함으로써 조금은 더 여유로워지고, 또 느긋해지는 것이다.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우친다고나 할까. 느리게 살다보면 멀리는 못가지만, 깊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던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다질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걸어가야 할 길을 계획하며, 그 속에 담긴 꿈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하더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런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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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data-captionyn="N" id="i201123241"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41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베르나르 올리비에는 그의 책, <나는 걷는다>에서 왜 걷느냐는 질문에, ’걷는다는 것은 교류이며 자유‘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걸음으로써 부지불식간에 변하는 풍경들을 보며, 흘러가는 구름을 깨닫고, 변덕스러운 바람과 소통하며, 그렇게 길 위로 낙엽이 구르고, 강 위로 번져나는 잔물결에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경험을 하는 일은 그 자체로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론 <걷기 예찬>이란 책을 쓴 브르통은 ’걷기는 세계를 느끼는 관능에로의 초대‘라는 어려운(?) 말로 걷기를 설명한다. 속도에 매몰돼 살아가는 우리는 느림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고, 걷기가 그 잃어버린 것들을 되찾아 준다는 말이다. 그렇게 ’걷기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시간의 주인이 된다‘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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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data-captionyn="N" id="i201123242"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42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사실 걷기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잠언이나 교훈, 깨달음을 쏟아냈다. 루소며, 니체며, 사르트르며, 최근의 코엘료까지...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그들의 충고나 조언이 아니라 내 스스로 그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 우선이 아닐까 싶다.
 
산사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전하는 ’교리 없는 수행은 위험하고, 수행 없는 교리는 공허하다.’는 말처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행동으로써 실천해야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그것이 성찰의 시간이 되었든, 자연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든, 또 한편으로는 운동의 수단이 되었건 간에 걷기의 유효한 가치를 발견하고, 길 위에서 두 발을 움직이고 있는 스스로와 만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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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data-captionyn="N" id="i201123243"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43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숲의 장막 저 편에서 노을이 붉다.
 
두 그루의 소나무 틈 사이로 오르막의 계단이 보이고, 그 계단 너머에 짐승처럼 웅크린 바위가 보인다. 어라~ 바위 생김새가 이상하다. 짐승의 얼굴을 닮았다. 돼지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살찐 개를 닮은 것 같기도 하고, 또 어쩌면 애니메이션 주인공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다행인 것은 표정이 친근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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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data-captionyn="N" id="i201123244"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44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바위 얼굴의 표정에서 길을 걷는 행인에게 무언가 말을 거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아는 체를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새삼 홀로 걷는 와중에도 길 위에는 길동무도, 이러저러한 추억들도 널려 있었으며, 이러한 것들을 발견하고 의미로 가꾸는 것은 결국 내 몫이라는 사실을 더불어 깨닫는다.
 
● 아! 길이 끊기다
 
얼마를 더 걸었을까. 저 멀리 공사장이 나타난다 싶더니, 이런~ 길이 끊기고 말았다. 무슨 이유로 땅을 파놓았는지는 모르나, 그들이 파버린 땅에는 길까지 포함되었던 것이다. 어스름이 깔리는 산길에서, 그 가느다랗게 이어져 온 길이 싹둑 잘려나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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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data-captionyn="N" id="i201123245"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45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더욱 아쉬운 것은 길을 중간에 잘라먹었으면 표지판이라도 세워 길을 알려주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은데, 언감생심이다. 걷다가 이렇게 길이 사라져버리면 여간 당혹스러운 게 아니다. 길을 안내하는 리본이나 이정표만 없어도 불안한데, 이렇듯 길이 통째로 사라져버렸으니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내가 서 있는 자리의 앞은 계곡이 가로막고 있어 가파른 급경사를 타고 넘어야 한다. 잡목까지 우거진 경사의 언덕을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가야 할 이유가 있으니 네 발로 기어서라도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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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data-captionyn="N" id="i201123246"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46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해는 서산에 지고, 길은 끊어지고... 그 와중에도 이리저리 뛰다 보니 길의 흔적이 어슴푸레 보인다. 다행이다. 달리 이정표도 없으니 무작정 가보는 수밖에 없다. 길을 알지 못하는 공사업자의 무분별한 터 닦기에 희생된 길이겠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 흔암리 선사유적지와 흔암리 나루터
 
다행히 길은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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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 data-captionyn="N" id="i201123247"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47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얼마를 걸었을까. 흔암리 선사유적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이정표와 함께 세워져 있다. 가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하지만 휑뎅그렁하니 아무런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다만 안내문이 이곳이 청동기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지 가운데 하나로, 16기에 달하는 집터가 발견된 곳임을 알려 준다. 바로 이곳에서 화덕자리와 토기 안에 탄화된 쌀을 비롯하여 조. 수수. 보리. 콩 등이 출토되었으며, 이를 근거로 이곳이 농경시대의 서막을 증언하는 중요한 유적지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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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data-captionyn="N" id="i201123248"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48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다시 강가로 나서자, 마치 개선문이라도 되는 양 한 그루의 나무가 비스듬히 누운 채 행인을 맞는다. 늦은 오후의 거무스름한 미명 아래에서 남한강은 검은 벨벳을 깔아 놓은 양 그렇게 고요하고, 광활하다.
 
갈대밭을 서걱대며 걷자, 이방인의 출현에 놀란 청둥오리 떼들이 푸드득 날개를 휘저으며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휴식을 방해 받은 것이 몹시 억울한 듯 꽤애액~ 소리조차 요란하다. 오래지 않아 오리떼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차례로 강 위에 내려앉고, 그렇게 강 위에서 그들은 또다시 평화로워진다.
 
오리나 사람이나 해가 지고 밤이 오면 그렇게 보금자리를 찾게 되는 것인데, 그 돈독한 시간을 방해하였으니,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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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data-captionyn="N" id="i201123249"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49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길의 끝은 아직도 아득한데, 어둠은 남아 있는 나의 여정일랑은 관심사가 아닌 듯 산을 넘어 거세게 밀려든다.
 
잡풀과 갈대가 뒤섞여있는 풀숲을 헤치고 나아가자, 흔암리 나루터가 보인다.
 
이곳 역시 나루터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강가로 튀어나온 모래톱에 서서 이곳이 나루터 맞아? 허공에 대고 물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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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data-captionyn="N" id="i201123250"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50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흔암리 나루는 점동면 흔암리의 흔바위 마을에서 남한강 건너편의 강천면 굴암리를 연결하던 나루였다고 한다. <흔암리>라는 나루의 이름은 나루가 위치한 마을이 흔바위 마을이기 때문이다. ‘흔바위’는 ‘흰 바위’의 변형으로, 마을에 위치한 커다란 바위가 흰빛이라 그렇게 불리었다고 한다.
 
과거에는 이곳 흔바위나루에 사공들이 묵기도 했던 주막이 두 곳이나 있었을 정도로 번성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아무런 흔적조차 없다. 특히 선착 및 하역이 편리해서, 한창 때에는 벼와 쌀의 물동량이 수천 석에 이를 정도였으며, 이곳에서 실려간 쌀을 비롯한 물산들은 220리 길의 서울이며, 충주, 장호원 등지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하지만 1972년의 큰 홍수는 이곳 흔바위 나루까지 삼켜버렸으니, 어즈버~ 태평연월은 한 시절의 꿈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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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data-captionyn="N" id="i201123252"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52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 어둠이 길을 삼키다.
 
오늘의 여정 중에는 아홉사리 과거길만 남았다. 하지만 더 이상은 나아갈 수가 없다. 시나브로 스며든 어둠 속에서 길은 자취를 감추고 말았던 것이다.
 
<여강길> 중 1코스(옛나루터길)의 백미인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과거시험을 보기위해 넘었다던 ‘아홉사리 과거길’은 숙제로만 남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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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data-captionyn="N" id="i201123253"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53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길을 벗어나기에 앞서 눈을 들어 강을 돌아본다. 더불어 오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15km에 이르는 전 구간을 다 답사하지 못한 아쉬움이 깊지만, 그래도 좋은 길을 만난 즐거움이 크다. 가다 보면 이런 저런 길을 만나게 되고, 길은 어느 길이건 모두다 의미가 있음을 어렴풋이 느끼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욕심 내지 않으면 된다.
 
‘무엇이든 귀한 것일수록 움켜쥐지 말고, 그것을 든 손을 감사함으로 펴라. 그럴 때 삶은 훨씬 순탄해진다.’고 하질 않던가. (*<느긋하게 걸어라>, 조이스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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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data-captionyn="N" id="i201123254" src="https://static.sbsdlab.co.kr/image/thumb_default.png" class="lazy" data-src="//img.sbs.co.kr/newimg/news/20171208/201123254_1280.jpg" style="display:block; margin:20px auto">
● 여주 <여강길> 가는 길
 
자가용
- 강천보 주차장 이용
 
시외(고속)버스
- 서울고속터미널(06:30~22:00),
동서울터미널(06:20~22:30, 대체로 매 시간 30분 단위로 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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