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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강변 고가 아파트 쥐와의 동거

[취재파일] 한강변 고가 아파트 쥐와의 동거
한강변에서 재건축을 하지 않은 오래된 아파트의 주민들 일부는 겨울만 되면 전에 없던 고민을 해야 한다. 가장 비싼 아파트에 산다는 자부심에 걸맞지 않는 고민의 원인은 천장에서 들려오는 작은 소음 때문이다.

중장년층에게는 어찌 보면 아련하면서도 불편한 '추억의 소리'일수도 있다. 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장비를 손 봐야 한다. 처박아 두었던 쥐덫을 꺼내 작동상태를 점검하는 일이다. 그동안 쥐가 가장 잘 걸려들었던 먹이를 기억해 덫 안에 매단 뒤, 에어컨 설치용 천장구멍을 열어 적당한 곳에 쥐덫을 놓는다.

이런 작업은 여기서 오래 살던 주민들에겐 불편하지만 익숙한 일인 반면,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주민들에겐 소름끼치는 작업이다. 또한 이런 사실은 이곳에서 살기를 꿈꾸는 수많은 외부 사람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충격적인 일이기도 하다. 밖에 알려지면 동네 이미지가 안 좋아질뿐더러 집값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주민들이나 부동산에서 입 밖에 내는 걸 꺼리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아이들 학교 때문에 한강변 오래된 아파트에 전세로 이사했던 김모씨는 이사 첫날의 기억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삿짐을 다 정리하고 지친 상태에서 잠을 청하는데, 천장에서 '다다다다' 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놀란 아내가 뭔 소리냐고 물었는데, 직감적으로 어릴 적 시골집에서 들었던 바로 그 소리라는 느낌이 드는 겁니다. 설마 했는데 그 소리가 맞았어요."

다음날 이 집은 난리가 났다. 충격에 빠진 가족들이 경비실에 확인해 보니 경비아저씨가 불편한 기색으로 쥐가 뛰어 다니는 소리가 맞다고 털어놨다. 어이없는 심정으로 물어본 옆집 할머니의 답변은 더 가관이었다.

"여기는 원래 쥐가 돌아다녀요. 모르고 오셨어요?"

어떻게 쥐가 산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은 채 전셋집을 내 줄 수 있단 말인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주인집에 연락을 취하고 부동산에 항의도 했지만, 이사 온 지 3년이 지난 지금 그는 쥐와의 동거를 수용하고 때때로 쥐덫을 설치하면서 살고 있다.

● 한강둔치에서 번식, 겨울에 먹이 찾아 아파트 이동

한강변에 쥐들이 많아진 건, 아이러니컬하게도 서울시가 주변 둔치공원을 아름답게 조성하면서부터다. 쥐라는 동물은 원래 사람 주변에 사는 동물이라 그 전부터 한강변에 살았을 테다. 하지만 한강변이 편리하게 다듬어지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고, 그들이 버리는 음식물 찌꺼기 덕분에 먹이가 풍성해지자 크게 번식을 한 것이다.

그렇게 한강둔치에서 세력을 늘린 쥐들은 겨울에 사람들 왕래가 뜸해지면서 먹을 게 부족해지면 바로 옆 아파트 단지로 먹이를 찾아 몰려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하실에서 배수관을 타고 주로 아파트 저층의 천장까지 침투해 주민들을 기겁하게 만들고 있다.

쥐들의 왕성한 활동은 이 주변 고양이 개체수의 감소와도 관련이 있다. 발정기에 고양이가 내는 역겨운 소리 때문에 길고양이들을 몰아낸 탓에 쥐를 막아줄 천적이 사라진 것이다. 이와 함께 오래된 아파트의 특성상 천장 내 기밀성이 취약한 것도 문제다. 그러기에 한 집에서 소탕작전을 벌여도 며칠 지나면 옆집에서 이사 오는 녀석들이 있기에 어느 순간 쥐잡기를 체념하게 된다.

어쨌든 이런 아파트에서 오래 살았던 주민들은 익숙한 상태로, 새로 이사와 충격을 받았던 주민들은 좋은 곳에 산다는 만족감으로 그 충격을 상쇄시키며, 불편한 짐승과의 동거에 적응해간다. 사람은 사람대로 쥐들은 쥐들대로 환경에 적응해가는 셈이다.

어떻게 보면 쥐들은 인간이 만든 환경 때문에 개체수가 크게 늘었고, 생존을 위해 아파트로 이동한 거다. 그렇게 쥐들이 환경에 적응한 반면, 인간은 편리를 위해 스스로 만든 환경에게 역습을 당한 셈이다. 편리는 대가가 필요하다는 걸 쥐와의 동거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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