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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김혜수는 왜 눈물을 보였나…'아픈 손가락'을 깨물며

[스브수다] 김혜수는 왜 눈물을 보였나…'아픈 손가락'을 깨물며
배우 김혜수는 영화 '미옥'(감독 이안규)이 본인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 것 같냐는 질문에 답을 하며 눈물을 보였다. 영화를 향한 애정과 아쉬움이 공존한 답이었다.

"지금 그걸 정의하기는 힘들 것 같아요. 전 이번 영화의 인터뷰가 이제껏 해온 어떤 인터뷰보다도 힘들었어요. 기자분들도 질문하고 싶은 게 있는데 조심스러워 하고, 저도 솔직하게 답하고 싶은 것들이 있는 데 조금 힘든 지점이 있거든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끝끝내 아쉬움으로 남은 게 분명 있어요. (작품의 의미를) 억지로는 아니고 그래도 뭔가를 찾아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저로서도 이같은 상황은 처음이라...정말."

김혜수만의 아우라라는 게 있다. 말로써 자신의 주관을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태도와 표정 그리고 몸짓에서도 드러나는 당당함과 멋짐은 독보적이다. 배우의 아우라가 작품 내에서 충분히 발휘되지 않아 아쉬움을 안겼던 김혜수는 최근 몇 년간 다양한 영화에서 멋진 활약을 펼치며 그 균형을 맞춰나갔다.

상승세를 타던 김혜수가 내놓은 신작 '미옥'은 여러모로 당황스러웠다. 이 영화는 조직의 언더보스 나현정(김혜수)과 그녀를 위해 달려온 조직의 해결사 임상훈(이선균) 그리고 출세욕에 사로잡힌 검사 최대식(이희준)까지, 얽히고설킨 세 사람의 파국으로 치닫는 욕망과 물고 물리는 전쟁을 그렸다.
[스브수다] 김혜수는 왜 눈물을 보였나…'아픈 손가락'을 깨물며
그러나 설득력을 잃은 전개와 공감받기 어려운 캐릭터 설정으로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여자주인공 이름을 제목으로 내세우고 여성 중심의 느와르를 표방했지만, 남성 중심의 관점에서 여성을 다루다가 모성으로 점철되는 한계를 보여줬다. 연출은 스타일리시를 표방한 과잉이었다.

관객은 냉정했다. 개봉 첫날 2위에 오른 영화는 3일 만에 박스오피스 5위권으로 떨어졌고, 일주일 만에 10위권에서 사라졌다. 22일 현재까지 누적 관객 수는 23만 8,120명. 손익분기점 200만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다.

김혜수는 이 영화를 선택한 것에 대해 "얽히고설킨 세 인물의 관계 속에서 각자가 지키고자 하는 소중함의 가치가 충돌하는 점이 굉장히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느와르가 주는 정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일반적인 느와르는 관계가 있고, 그 관계가 밀도 있게 그려지고, 어떤 관계에서 어긋나는 지점이 생겨서 파국으로 이르지 않나. 비주얼적으로 여운이 남는 것도 있고, 다 보고 나서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완성된 영화는 의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작품에 대한 아쉬움은 주연 배우 역시 다를 바 없었다. 영화를 본 소감을 묻는 말에 "결국은 미옥이라는 인물을 어떤 관점으로 출발해서 어떻게 다루는지가 중요한 건데, 내밀한 감정에서 오는 엄청나게 팽팽한 긴장감과 퀘퀘하게 쌓여 폭발할 것 같은 에너지가 있어야 했다. 그 점에선 나 역시 아쉬움이 있다. 솔직히 (인물의 감정이나 이야기의 결들이) 쌓이지 않은 것 같다. 뭐가 더 보태거나 빠지고의 문제는 아니고 어떻게 담아내느냐의 문제였던 것 같다."고 어렵게 운을 뗐다. 스스로 아픈 손가락을 깨물어야 하는 심정이야 추측만 가능할 뿐이다.
[스브수다] 김혜수는 왜 눈물을 보였나…'아픈 손가락'을 깨물며
미옥은 꽤 복잡하고 흥미로운 과거를 가진 인물이고, 그 전사는 현정으로 사는 현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인물의 전사를 그리지 않고 말로써 설명하는데 그친다. 그러나 보니 관객들에겐 인물의 모성애가 갑작스럽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다.

"모성이라는 게 큰 장치로 대변된다고 많이들 지적하시지만, 나는 그렇게 접근하지 않았다. "내가 니 엄마야"라고 말하는 신의 경우 익숙하게 학습되어온 모성이 느껴졌다. 그걸 어떻게 다뤄야 하는 것에 대해 좀 더 고민했어야 했다. 거칠고 강하게 살아온 여자가 갑자기 아이가 나타났다고 모성으로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처럼 표현됐다. 나도 그렇게 해석하지 않았다. 이 여잔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좇았는데 핏줄인 주환이가 그 여자의 욕망 안에 들어온 거다. 모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게 아니다. 난 그런 이야기를 내밀하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였더라."

'소중한 여인'이었던 가제는 개봉 전 '미옥'이라는 이름으로 제목이 정해졌다. 포스터는 총을 든 김혜수를 전면에 내세운 강렬한 이미지로 채웠다. 김혜수의, 김혜수에 의한, 김혜수를 위한 영화처럼 마케팅이 집중된 것에 대한 부담도 적지 않았을 터.

"어쨌든 이야기의 중심에 여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전면적으로 여성 캐릭터를 내세운 게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너무나 많은 의도를 담아낸 게 아닌가 싶다. 포스터나 예고편이 중심이 아니라 영화가 중심이어야 하는데 너무 강요한 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도가 나빴다고 생각진 않은데 참여한 나나 영화를 관람한 관객도 아쉬움을 느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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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미옥'만의 문제는 아니라 그동안 한국의 여성 영화에서 여성의 문법으로 제대로 풀어낸 작품은 많지 않았다. 이 문제의식에 대해 김혜수 역시 공감하며 "여성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표피적으로 끝나고 만다. 느와르든 호러든, 큰 영화든 작은 영화든 모든 것을 떠나 만드는 사람의 의식 자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충무로를 이끄는 여성 배우의 한 명으로서 남성 중심의 영화계에 벽을 느낄 때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혜수는 체감적 벽보다는 의식의 벽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그건 늘 그랬기 때문에 어릴 때는 모르고 지나갔던 것 같다. 그런데 요즘 배우들이 굉장히 훌륭해졌다. 준비된 배우는 많은데 준비된 기획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생각을 한다. 이를테면 과거엔 주인공에만 집중하고, 그 외에 배우는 주인공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요즘 한국 영화는 굉장히 좋은 구성원들이 크기와 관계없이 가치를 쉐어하고 있다. 여성, 남성을 나누는 건 나도 불편하긴 한데 상황을 보면 정비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은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시도가 좀 더 깊이 있게 확장되길 바란다."

배우는 선택받는 입장이다. 감독이 만든 세계에 뛰어들어 가상의 인물을 형상화하고 이야기에 생생하게 숨결을 불어넣는 존재다. 단, 그 세계와 이야기가 잘 설계돼있고 배우 역시 잘 그려냈을 때 좋은 영화가 탄생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혜수는 현장에서 능동적이고, 창조적으로 일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까. 그녀만의 자세와 태도도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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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의 내,외면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의견과 아이디어를 많이 내는 편이다. 물론 연기는 프로덕션 기간에 다 끝나지만, 영화는 후반 작업이라는 게 있다. 재촬영을 할 수 없으니 ADR(Automated Dialogue Replacement:후시녹음) 단계에서도 내 의견을 얘기한다. 우리가 가진 콘텐츠에서 어쨌든 좀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끝까지 구성원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한 편의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닌 연대 책임이다. 이 영화의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데뷔작인 감독은 이 작품 하나로 전부를 평가받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배우와 감독을 믿고 제작비를 댄 투자사는 금전적으로 큰 손해를 입게 됐다. 주연 배우 김혜수도 아픈 손가락을 힘들게 깨물어야만 했다. 

아마도 배우는 상처를 작품으로 치유하지 않을까 싶다. 김혜수의 다음 작품은 1997년 외환위기 당시 IMF 협상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그린 '국가 부도의 날'(감독 최국희)이다. 이 작품에 대해 김혜수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영화예요. 그럴 가치가 충분한 시나리오였어요"라고 말했다.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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