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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낙엽(落葉)>

떠나야 할 때는
미련 없이 떠나야 한다.

무어라 아쉬움이야 없으랴마는
그 아쉬움마저도 욕심인 걸,
이제는 알아야 한다.

버리고
내려놓으며
바람처럼 몸을,
허공에 놓아두면 될 일이다.

그저
스러지고 스러져
무념(無念)의 고요함으로
겨울 언 땅 속으로
하염없이 스며들면 될 일이다.

다가올 봄조차도 기약하지 않는
텅 빈 허허로움으로
안으로 안으로만 침잠하며
한때는 푸르디푸른 나뭇잎이었다는 사실마저도
잊은 채로
흘러가면 될 일이다.

이제는,
몇 번의 계절이 지나는 동안에도
끝끝내 놓지 않았던
꼭 쥔 손을,
놓아야 한다.

툭~

낙하(落下)의 흔들림 속에서
바라본 하늘은,
적요(寂寥)의 청정(淸淨)한 가을빛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深淵)
떨어짐이 차라리 승천(昇天)이었음을
떠나고서야 깨닫는다.

이별의 비장함을 꿈꾸었던
세속(世俗)의 마음마저 우스워지는
찰나의 순간이었던 것을...

그저
떠나갈 뿐이다
그렇게 흘러갈 뿐이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훌쩍
스러지면 될 일이었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오래전 한때, 나 역시 수많은 문학소년이었던 그들처럼, 비슷한 꿈을 꾸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문학중년으로 배역이 바뀌고…. 그렇게 종종대다 지금은 그런 꿈을 꾸었는지조차 아슴아슴하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치기 어린 한여름 밤의 꿈에 지나지 않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제는 시(詩)라는 단어 자체도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 실감이 나질 않는다. 그러니 아서라, 문학중년은 무슨~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소슬한 바람이 옆구리를 간지럽히는 날에는 그 옛날의 감상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몇 줄이나마 끄적거리게도 되는데, 심히 능력 부족이 안타까울 뿐이다.

● 낙엽을 위한 헌사(獻辭)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하필이면 낙엽을 두고 이리도 궁상스럽게 주저리주저리 떠든다고 뭐라 할런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말 궁상스럽게도(?) 어느 날, 무심히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그들이 갖고 있는 순수함에 가슴이 먹먹해지더란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떠날 때를 아는 그들의 '순수한 긍정'에 느꺼운 마음이 일었던 것이다. 시간의 흐름에 순응하는, 갈 때를 알고 미련 없이 떠나는, 그렇게 '오고 가는' 순환의 질서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그들에게서 비장미 비슷한 무엇이 보였던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며 노래한 어느 시인의 탁견(卓見)처럼, 그들도 그 '때'를 알고, 소리 없이 스러지고 있었던 것이다. 떨어짐이 곧 사라짐을 의미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축제날의 꽃가루마냥 분분하였고, 왈츠 춤을 추는 그들처럼 가벼우면서도 장중했으며, 또 경쾌하였던 것이다.

낙엽들은 가야 할 그 '때', 그 마지막의 순간에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욕심내지 않음으로써 구차해지지도 않았으며, 가볍게 던짐으로써 차라리 아름다운 길을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떨어짐이 곧 승천(昇天)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사실, 살면서 '때를 안다'는 말만큼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말은 없었을 듯싶다. 때를 안다는 것은 자족(自足)할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만족' 말이다. 흔히들 욕심의 반대말이 다름 아닌 만족이라고들 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고민이 깊다.

만족은 깊은 성찰의 결과이며, 이해와 긍정이라는 반석 위에 서 있는 깨달음이면서, 진정한 자기애(自己愛)의 발현이다. 그렇게 만족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임에도 우리는 종종, 또 그렇게 자주 그 사실을 잊은 채로 살아간다. 어쩌면 모르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 스스로 그 '때'를 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으며, 그런 이유로 욕심이라는 미궁 안에서 헤매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하찮은(?) 낙엽이 던져준 교훈치고는 심오했고, 또 뜨거웠던 것이다. 그들은 그 떠나야 할 그 '때'에 부여잡은 손을 놓고, 낙하(落下)라는 위험하고도 화려한 순간을 지나, 그렇게 땅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을 여주 <여강길>에서 만났다.

사태라고 해도 좋을, 지천으로 널린 낙엽들을 헤치며 길을 걸었으니, 어쩌면 이 글은 낙엽에 대한 헌사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무지를 포장하려니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음에 이해를 구한다.

● 기대를 저버린 길과의 화해를 위하여…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늦가을의 햇살이 좋았던 어느 날, 여주 <여강길> 1코스를 걸었다.

여주터미널을 벗어난 길은 1km 남짓의 도심으로 이어지다 영월루(迎月樓)로 흘러가고 있었다. 달을 맞이하는 누각이라…. 영월루에 서면, 저 멀리 낙조의 붉음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그 순간, 뽀얀 빛깔의 달이 세상 밖으로 솟아오를 듯도 싶다. 그렇게 여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영월루가 자리하고 있었다.
영월루 전경
영월루에서 바라본 남한강. 강 오른편이 걸어야 할 길이다.
영월루를 벗어나면 길은 이내 남한강변으로 이어지고, 그 길은 다름 아닌 자전거길이다.

아! 자전거길이라~ 일전에 양평의 <물소리길>에서 겪은 아름답지 않은 기억이 되살아나는지라 일순 당황스러워진다. 또 자전거랑 동행해야 한단 말인가. 아니길 바랐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황포돛대. 밧줄에 묶인 배는 오도 가도 못한 채로 강 위에 떠 있었다.
자전거길을 따라 걷자니, 강 위에 떠 있는 황포돛대가 보인다. 밧줄에 묶인 배는 오도 가도 못 한 채로 멍하니 바람이 이끄는 대로 흔들흔들, 기우뚱대기만 할 뿐이었다. 나름 너른 강 위의 화룡점정이 되라고 예산을 들여 돛배를 재현해 놓았을 터인데, 배는 그다지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새삼스레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만, 그것이 배를 만든 이유는 아니다'라는 말처럼, 그래서 조금은 멋쩍고, 아쉬운 광경이었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차라리 강 건너의 신륵사가 보이는 나루터에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일을 하는 또 다른 돛배가 더 의미가 있어 보였다. 하지만 그 배도 주말에는 모르겠으나 평일 낮에는 할 일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루터로 내려가는 입구의 메마른 해바라기꽃 마냥 박제된 조형물 같아 보여 조금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실상 박제된 조형물 같은 풍경은 4대강 사업이라는 풍랑을 비껴가지 못한 이곳 남한강 주변에서는 흔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오가는 이 없는 자전거길이며, 드넓은 고수부지와 공원들, 캠핑장, 아직도 땅이 파헤쳐진 채로 방치되어 있는 곳곳….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그런데 문제는 지하철과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세 시간을 내처 달려온 이유가 강변의 아스팔트길이나 걷자고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 집 앞 안양천이나 한강변만 해도 충분한데 굳이 여주까지 와서 아스팔트길을 걸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새삼 어느 전직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내가 이럴려고…' 하는 자책과 자괴감만이 훅~ 밀려든다.

게다가 지나온 길이 벌써 수 km이고, 포기하려고 해도 돌아갈 방법이 없다는 사실 앞에서 망연자실이다. 걸어온 길을 다시 되짚어 갈 수야 없지 않은가. 일단은 인가나 큰길을 만나는 그 지점까지는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무대책과 조사 부족을 탓하면서 말이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매운 강바람에 제 몸 하나 가누기 힘들어 보이는 나무가 안쓰러울 따름이다.
휑한 강변공원에는 드문드문 나무가 보이고, 그나마 갈대라도 있어 카메라 셔터라도 누르게 된다.

그렇게 걷고 걸어 4대강 사업의 16개의 보(洑) 중 하나인 강천보를 지난다. 강천보 주변에는 한강문화관과 전망대가 있었으나, 굳이 전망대까지 올라가서 봐야 할 만큼의 풍경도 아니고, 갈 길마저도 바쁜 관계로, 패스. 답답한 마음에 자전거라도 빌려서 주변을 돌아봐야 하나 하는 유혹이 일기도 한다.

그래도 가보자!
강천보 전경
강천보를 지나자 마을이 보인다. 마을의 초입은 또 공사장이다. 기대와 너무 다른 길 앞에서 갑자기 맥이 탁 빠진다. 어느새 4~5km를 걸은 것 같은데, 후회막급,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턱대고 나선 스스로에게 화가 날 지경이다.

마을 이곳저곳을 기웃대며 길을 찾으니, 마을 삼거리 담벽에 여강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반신반의(半信半疑)…. 별다른 기대도 없이, 빨리 택시나 버스가 오가는 큰 길이 보이기를 기대하며 또 발걸음을 옮겼다. 이정표가 안내하는 길이란 게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의 폭이다.

● 반전의 미학, 그래도 계속 가야한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한숨을 쉬며, 그 틈을 비집고 지나자, 아스팔트길이 아니다. 강도 보이고, 갑자기 어디서 낙엽을 끌어모아 길 위에 뿌려놓은 것 마냥 발밑에서 바스락대는 낙엽 소리도 들린다. 이제껏 걸었던 길과는 판이한 모습의 길이었던 것이다. 다행이다. 이제야 그리던 그 길을 걷게 되나 보다.

아! 길이 산으로 이어진다. 나름 제대로 된, 기대했던 길이 나타난 것이다.

낙엽들이 발밑에서 바스락대며 스러진다. 가을날에 걷는 즐거움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낙엽더미인지 길인지조차도 헷갈리는 길을 더듬으며 걷는 즐거움을, 드디어 누리게 된 것이다.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노란빛의 사태가 났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길에는 오가는 이 하나 없어 온전히 내 차지라도 되는 양 뿌듯하다. 오목한 길에는 낙엽의 더미가 발목이 빠질 정도로 깊다. 눈 온 뒤의 길 마냥 더듬으며 걷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게 해주는 길이었던 것이다.

얼마 걷지 않아 만난 수백 년의 세월을 살아냈음직한 은행나무 한 그루는 제가 서 있는 사방을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그야말로 은행잎 사태다. 아직 미련을 못 버린 채로 나무에 매달려 있는 나뭇잎은 그들대로 빛살을 담아 하늘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던 것이다. 불과 30분 만에 이루어진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실로 극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다. 투덜대며 걸었던 지난 두어 시간이 도리어 아쉽고 미안해진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길은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이어지고 있었다. 역광의 먹빛 아래로 길이 보이고, 오래도록 강을 따라 흐르고 있었을 길은 행인의 발걸음에 기지개를 켜는 듯, 깨어나고 있었다.

무릇 이 길마저도 오래전 이곳을 터전으로 삼아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사람들이 길을 만들고, 어느 순간 길은 그들 삶의 중요한 동반자가 되었고, 이제는 이방인에게도 그 품을 열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길이 흠칫 놀란 표정으로 부스럭대는 행인을 맞는다.
부라우 나루터의 모습
● 부라우 나루터, 그들이 강을 건넌 이유

길모퉁이를 돌자, 여기가 '부라우 나루터'였음을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나루의 흔적은 온데간데없고 다만 이정표만 남아 여기가 나루터였음을 증언한다.

그런데 무엇보다 '부라우'라는 이름이 낯설다. 쉽사리 그 어원이 유추가 되질 않는다. 설명에 따르면, 나루터 주변의 바위들이 붉은색을 띠고 있어서 '붉은 바위'로 불리었고, 그 붉은 바위는 '붉바위'가 되고, 붉바위가 변해'부라우'가 되었다는데, 긴가민가…. 그렇지만 인정하지 않을 도리도 없다.
나룻배가 머물던 자리다.
부라우 나루는 원래 여주읍 단현리와 강 건너의 강천면 가야리 지역을 연결했다고 한다. 그 두 지역을 오가는 나룻배의 길이는 약 15m 내외, 거기에 40명 정도가 승선할 수 있었다고 하니, 생각보다는 큰 배가 오고간 나루였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루 흔적으로 봐서는 그 정도 크기의 배가 머무를 공간이 어디쯤인지 가늠이 서질 않는다. 아마도 당시에는 나루를 형성하는 부속 구조물들이 있지 않았나 싶다.

여주군청의 자료에 따르면, 나룻배는 마을 주민들이 공동으로 갹출하여 만들었다고 하는데, 1967년 배를 새로 건조할 당시 배를 건조하는 목수에게는 하루 세끼의 식사와 일당으로 쌀 한 말을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건조된 나룻배를 타고 강천면 주민들은 여주장엘 가고, 단현리 주민들은 땔나무를 구하기 위해 강을 건넜던 것이다. 이 강을 여주 사람들은 '여강'이라 불렀고, 그래서 지금 걷는 이 길의 이름마저도 '여강길'이 된 것이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강둑을 벗어난 길은 이내 돌계단을 따라 산을 오른다. 어딜 가나 낙엽이 지천이다.

길 위에서 밤을 송이째 주웠다. 밤이 떨어진 지는 꽤나 되었을 터인데도 오가는 이가 드문 산길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남아 있었나 보다. 막상 별것도 아닌 밤송이 하나가 길을 풍성하게 하는 느낌이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오후로 접어든 지도 꽤나 지난 시간인지라, 비스듬히 비치는 햇살에 평면의 길은 양각으로 입체감을 더한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비해 셔터를 누르는 횟수가 많아지고, 또 그만큼 가는 길은 더디기만 하다.

그러다 문득, 두어 시간 전 콘크리트길 위에서의 황망함은 온데간데없고, 높지도 낮지도 않은 굴곡 많은 여강길에 빠지고 있는 스스로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 그만두고 싶을 때, 딱 한 걸음만 더

새삼, "그래도 계속 가라(Keep Going)"던 조셉 M. 마셜의 충고가 혜안이었음을 깨닫는다. 책에서 마셜은 '계속해서 희망을 품고 있는 것이야말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고, '그만두고 싶을 때, 딱 한 걸음만 더' 걸으라고 충고했던 것이다.

책에서 인디언인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말한다.

'우리는 항상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해. 그것이 아무리 하찮고, 더디고, 고통스럽다 할지라도, 또 우리가 지닌 것이라고는 그 마지막 한 걸음밖에 남아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지라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여행과 우리 자신에게 그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할 빚을 지고 있단다. 마지막으로 한 걸음 더 내딛은 뒤에 무엇을 할지 결정하려무나.'
- <그래도 계속 가라>, 조셉 M. 마셜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계속 가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치도록 많았던 것이다. 어쩌면 삶의 비결은 끈기 있게 버티면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이 아닐까도 싶다. 가다 보면 회색의 콘크리트길 너머의 숲 향기 흐르는 길과의 감격스런 만남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비스듬히 번지는 오후의 햇살에 길이 눈을 뜬다. 길 위로 빛살이 머물고, 빛을 머금은 낙엽들은 꽃이라도 되는 양 피어난다. 단풍은 나무 위에만 있는 것 아니라 길 위에서도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낙엽이 땅 위에서 꽃이 되는 풍경 앞에서 쉬이 걸음을 옮기지 못한다. 주저앉아 가만히 들여다보고만 있어도 좋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만, 내 눈이 본 길과 낙엽을 카메라는 담아내질 못한다. 길도 훌륭한 풍경임을 새삼 깨닫는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우리는 가끔 걷는 일이 무슨 대단한 명상이나 성찰의 기회가 되는 양 말한다. 하지만 걷다보면, 사실 사유와 성찰이라는 이 거창한 말은 그저 말뿐임을 알게 된다.

애당초 걷든 뛰든 일정 이상의 거리를 걷는 일은 마음이 아닌 몸이 하는지라, 생각할 기회보다는 땀을 닦고 발바닥이 느끼는 땅의 변화에 대처하는 일이 훨씬 더 가깝고 현실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사유, 성찰? 그런 여유는 쉽사리 찾아오지도 않는다. 요즘같이 낙엽이 길을 가려버린 늦가을의 길은 더욱 그러하다. 순전히 걷기 위한 보행에는 낙엽은 거추장스런 방해꾼이기 때문이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그런데, 그런데…. 어느 순간 걷다보면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음이 환하게 열리는 어떤 경험을 하게 된다. 무슨 이유일까. 나 같은 초보 보행자야 그 정체를 제대로 알 리가 없지만, 불현듯 깨닫게 되는 그 무엇이 있더란 말이다. 무엇을 생각해서 생각이 나는 것이 아니라, 왠지 이유 없이 마음이 맑아지는 그 순간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렇게 의도하진 않았지만 부지불식간에 내 마음에 들어앉아버린 그 무엇을 깨닫는 순간은 오묘하다. 힘들게 올라간 산 정상에서 산 아래의 세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감정과 비슷할까? 그냥 조금은 아주 조금은 너그러워지는 느낌이 든다. 그 너그러움은 세상과 나를 향하고 있었을 것이다. 또 어쩌면 목적지상주의에 취해 살아가는 이들에게 삶은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음을 일깨워 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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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걷는 길이 깊으면 깊을수록 더욱 그러하다. 문제는 그러한 마음과 관조 내지 발견을 오래도록 지속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한계가 늘 아쉽지만, 어느 순간만큼은 문득, 그러하고 또 그러했다.
역광에 비친 길이 뽀얗게 빛나고 있다.
● 다리, 연결, 그리고 길이 되다

빛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현상 중 하나로, 역광(逆光)으로 인해 연무(煙霧)가 드리운 양 하얗게 번지는 빛의 산란(散亂)이라는 게 있다. 무심코 바라본 길 위로 무색의 빛이 뿌옇게 길을, 숲을 흩어놓고 있었다. 그 모양이 왠지 환상적이라 마치 무릉도원이나, 전설 속의 낙원이라는 쿤룬산맥의 샹그릴라를 찾아가는 기분이 든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산을 내려간 길은 강둑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작은 개울 위로 다리가 보인다. 사실 다리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난감할 정도의 작은 이음새일 뿐이지만, 이 편과 저 편을 이어주는 다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누군가의 작은 배려가 연결의 고리가 된 것이다. 그렇게 널빤지 몇 조각은 어엿한 길이 되어 연신 행인을 건네주고 있었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 낙엽은 길을 가리고, 보행자는 길 위에서 길을 찾는다.

가도 가도 낙엽 천지다.

낙엽이 가득한 길을 헤집으며 걷다 보니, 문득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란 시를 떠올리게 된다. '눈 내린 들판을 걸을 때에는, 지금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가 되리니, 어지러이 걷지 말라'는 충고 말이다. 새삼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진다.

그렇게 낙엽을 헤집으며 걷다 보면, 낙엽 아래의 땅이 길인지 허방인지 한눈에 알아보는 안목이 생긴다. 저절로 키워지는 안목에 무언가 큰일이라도 해낸 양 그저 뿌듯하다. 그 뿌듯함은 스스로를 더 자신 있고, 속도감 있게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앎의 힘'이 아닐까 싶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그래 봤자 원래부터 있던 길 위에서, 그 길을 잃지 않는 것이 무슨 대수라도 호들갑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걷다 보면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가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이자 힘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걸을 때 '이 길이 아닌가벼~'는 그야말로 힘 빠지게 하는 이유 중 최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겨우 몇 km의 길을 걸으면서 처녀지의 개척자인 양 호들갑을 떨어도 이해해 주시기를…^^

서산에 해는 지려 하는데,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헤매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①

<'여강길 1코스를 걷다' 2편에서 계속>   

▶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찾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②
▶ [라이프] 낙엽 속에서 길을 찾다…여주 여강길 1코스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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