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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김해 봉황동 유적서 건물지·토기 다량 출토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김해 봉황동 유적서 건물지·토기 다량 출토
▲ 1번이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나온 화로형 토기 조각. 2, 3번은 대성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토기.

금관가야의 왕궁 추정지인 김해 봉황동 유적에서 가야 건물지와 토기가 다량 발굴됐습니다.

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오늘(21일) 지난 3월부터 김해 봉황동 유적의 북동쪽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4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대형 건물지 10여 기와 토기 수백 점을 발견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소는 이번 조사에서 지표면을 기준으로 4.5m 아래까지 파고들어 가 시대별 문화 양상을 보여주는 지층(문화층)을 처음으로 확인했습니다.

이를 통해 민무늬토기가 있는 원삼국시대(기원전 1세기∼기원후 4세기)부터 가야시대, 통일신라시대, 조선 시대의 문화층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모습이 드러났습니다.

가야 문화층에서는 지름 10m가 넘는 타원형 건물지들이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3호 건물지는 장축 15m, 단축 12m로 추정됩니다.

둥글게 벽을 두르고 내부에는 기둥을 세운 형태입니다.

이에 대해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1999년 봉황대 진입로 개설 구간에서 조사된 주거지와 2005년 창원 신방리유적 출토 주거지와 유사하다"며 "그동안 봉황동 유적 일대에서 확인된 생활유적과는 차별화된 공간으로 보인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와 함께 봉황동 유적에서는 의례에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 화로형 토기, 통형기대(긴 원통을 세운 그릇받침) 등 다양한 토기 조각들도 나왔습니다.

화로형 토기는 금관가야의 수장층이 묻힌 것으로 알려진 김해 대성동 고분군에서 나온 토기와 문양이 비슷했습니다.

통형기대는 동그란 무늬가 새겨진 기다란 띠를 붙이고, 몸체의 대각선 방향에 구멍을 뚫은 점이 특징입니다.

또 기마인물형토기에 달린 것과 흡사한 각배(뿔 모양 잔)와 토우도 출토됐습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수레바퀴 모양 토기, 장신구에 이어 올해 대형 건물지와 의례형 토기가 다수 발굴되면서 이곳이 가야 유력자의 생활 공간임이 확인됐다"며 "내년 3월쯤 발굴조사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해 봉황동 유적은 1899년 발행된 '김해군읍지' 고적(古蹟) 조의 "수로왕궁지는 지금의 (김해)부 내에 있다고 전해지며, 고궁지는 서문 밖 호현리에 있다"는 기록을 바탕으로 금관가야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입니다.

지금까지 70여 차례 발굴조사가 진행돼 주거지, 토성, 접안시설 등이 발견됐으나, 금관가야의 왕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유물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금관가야는 기원 전후부터 532년까지 경남 김해 지역을 중심으로 세력을 떨친 나라입니다.

(사진=문화재청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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