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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20년…'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대기업들, 남은 과제는?

외환위기 20년…'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대기업들, 남은 과제는?
'IMF(국제통화기금) 사태'로 불리는 외환위기는 한국 재계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외환위기가 터졌던 1997년 30대 대규모 기업집단 목록에 올랐던 이름의 절반이 지금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대우가 가장 대표적입니다.

1997년 당시 대우는 계열사 32개에 자산 규모 34조2천억원에 달하는, 재계 순위 4위의 재벌이었습니다.

1993년 '세계 경영'을 선언한 뒤 글로벌 무대에서 공격적 확장을 거듭하던 대우는 부도 직전인 1998년 말 무려 396개의 해외법인을 거느린 초국적 기업이었습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그룹은 그야말로 산산조각 났고, 이제는 '대우' 이름을 이어오고 있는 몇몇 기업에서 옛 영화의 흔적만 짐작할 수 있을 뿐입니다.

대우그룹으로 대표되는 한국 기업들의 몰락 이면에는 차입 경영이 있었습니다.

외환위기 직전, 대우그룹은 겉으로는 잘 나가는 듯 보였지만 재계에서는 '멈추면 쓰러지는 자전거'라는 말이 나돌았습니다.

빚을 내 다른 회사나 공장, 자산을 사들여 몸집을 키우는 공격적 확장 경영이었던 만큼, 어느 한 곳에 제동이 걸리면 연쇄적으로 넘어질 수 있다는 점을 당시에도 우려했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무리한 차입 경영으로 쌓아올린 모래탑은 외환위기로 급제동이 걸리면서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말았습니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그때 가장 큰 문제는 차입에 의한 과잉투자였다"며 "그 이전에는 '대마불사(大馬不死)'란 개념 아래 차입으로 사업을 키운 다음 돈을 벌면 기업의 몫이고, 돈 못 벌고 흔들리면 사회적 책임이 되는 시스템이었다"라고 진단했습니다.

1997년 1월 한보그룹의 부도는 대기업 부도 사태의 시발점이었습니다.

쌍용, 기아, 동아, 진로, 고합, 해태, 뉴코아, 아남, 한일, 거평 등 재벌그룹들이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습니다.

이창선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어떤 기업은 살아남고, 어떤 기업은 사라졌다"며 "그 차이를 가른 것은 기본적으로 재무 건전성이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부채 비율이 높으면서 수익을 못 낸 기업들이 외환위기의 원인이 됐고, 또 외환위기의 결과로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무리한 차입 경영은 기업 몰락의 첩경'이란 외환위기의 교훈은 기업들 뇌리에 깊은 트라우마로 새겨졌습니다.

현 원장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모든 기업들이 공히 과도한 차입에 의한 과잉투자를 억제하게 됐다"며 "다만 그게 또 너무 지나쳐서 이제는 내부유보금이 너무 많아지면서 기업의 적극성이 사라진 측면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외환위기 삭풍을 견딘 기업들 중 일부는 생존하는 데 머물지 않고 말 그대로 비상(飛上)했습니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입니다.

대한민국 간판 기업이 된 삼성전자는 올해 2분기 글로벌 제조업체 가운데 가장 영업이익을 많이 낸다는 애플을 제치고 영업이익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대한민국 1등이 세계 1위 자리에 선 겁니다.

현대자동차, SK하이닉스, LG전자 등은 전 세계 고객을 상대로 제품을 파는 글로벌 기업이 됐습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글로벌 기업이 된 업체들은 업종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국제적인 독점력을 확보한 시장에 들어 있었고, 이는 그 회사의 기술적인 투자에 의해 확보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은 "논란의 소지는 있지만 삼성이나 현대차 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데는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특정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점찍어 계열사의 역량을 집중했고, 여기에 전문 경영인들의 시장 판단·분석 같은 인적 자원이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낸 결과라는 겁니다.

현 원장은 "전통 제조업에 IT(정보기술)를 접목하는 등 제품의 부가가치를 높여 국제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원동력"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그는 "또 다른 하나는 글로벌 밸류체인을 잘 활용했다는 점"이라며 "국제적으로 외환위기 후 생산거점, 소비거점을 전 세계적으로 다양화시키는 흐름이 일어났는데 그런 것에 잘 적응한 기업들은 살아남았다"고 부연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 기업들의 앞길이 장밋빛인 것만은 아닙니다.

김동원 고려대 경제학과 초빙교수는 "2000년대 초에는 글로벌라이제이션(지구화)의 흐름에 적응하느냐가 생존을 갈랐는데 지금은 디지털 경쟁력이 있느냐가 생존의 척도"라고 말했습니다.

일례로 2000년대 초만 해도 중국이 한국산 제품들을 대거 수입하면서 국내에 대형 기업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돈을 버는 기업이 반도체·전자업체 몇 곳 정도로 쪼그라들었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디지털 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이제는 우리 기업들이 더 좁은 외길에 들어선 셈"이라며 "글로벌 경쟁의 양상의 불확실해지면서 승자독식의 현상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성태윤 교수는 "과거에는 반도체 외에 조선업, 자동차 등도 있었는데 점점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다"며 "반도체조차 중국에 의해 추월 당하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습니다.

성 교수는 "앞으로도 국제적인 독점력,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업을 만들어낼 수 있느냐가 한국 기업들의 생존에 관건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 원장은 "우리 기업들의 지배구조나 거버넌스는 국제적인 기준에 비춰볼 때 많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한국적인 오너십이 장점이라고도 하지만 국제적 투명성 기준으로 보면 모든 기업이 다 고쳐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현 원장은 또 4차 산업혁명기를 맞아 기업이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규제 환경의 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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