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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브수다] 최민식이 밝힌 악역의 굴레 "후배들아, 날 넘어줘"

[스브수다] 최민식이 밝힌 악역의 굴레 "후배들아, 날 넘어줘"
"그게 다 '악마를 보았다' 때문이야. 괜히 했나봐."

배우 최민식은 자타공인 '연기 장인'이다. 그 폭과 넓이에 관한 한 경계 없는 역량으로 충무로 최고의 연기파 배우의 자리를 수십년째 지키고 있다.

영화 '침묵'으로 '해피엔드' 이후 18년 만에 최민식과 재회한 정지우 감독은 "많은 분이 18년 전 최민식과 지금의 최민식이 어떻게 달라졌냐고 묻는다. 그 질문에 재밌는 답이 되려면 1999년엔 영글지 않은 배우였는데 지금은 완숙미가 절정에 다다른 배우가 됐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최민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의 경지에 있는 배우다."라고 말했다. 

최민식 하면 누구나 떠오르는 영화와 캐릭터가 있다. '쉬리'의 박무영, '파이란'의 강재, '올드보이' 오대수, '범죄와의 전쟁' 최익현, '명량'의 이순신 등 액션, 멜로, 스릴러, 사극까지 장르 불문한 영화 속에서 바이블에 가까운 연기로 후배들의 귀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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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본인은 떨쳐내고 싶지만, 계속 회자되는 명연기가 있다. 바로 '악마를 보았다'의 악역 연기다. 최민식은 국정원 경호요원 수현(이병헌)의 약혼녀를 살해한 연쇄살인마 장경철로 분했다. '정육점 스릴러'라고 불릴 정도로 잔인하게 범죄를 묘사한 이 영화에서 최민식은 악의 화신 그 자체였다. 반인륜적 살인마 연기는 보이는 이의 살을 떨리게 했고, 영화가 끝난 뒤에도 잊히지 않는 끔찍한 잔상을 남겼다. 

놀랍게도 최민식은 '악마를 보았다' 속 연기가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단순하고 쉬운 연기라고 말한다. 인물이 공감하거나 이해할 여지가 없기 때문에 다층적으로 분석하고 고뇌한 끝에 나오는 연기가 아니라는 의미다. 인물과 거리 두기를 전제한 연기는 배우 입장에서도 매력적이지 않다고도 말해왔다.

최민식은 '악마를 보았다' 이후 부작용(?)에 시달렸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영화 촬영을 하면서 엘리베이터에서 친근감을 표시하던 아저씨가 내게 반말하자 '이 XX, 왜 반말을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내 자신에게 섬뜩함을 느꼈다"며 살인마 연기에 따른 후유증을 전했다. 이 작품 이후 '다시는 살인마 연기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고 누누이 밝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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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최민식은 "관객들이 최민식 하면 강하고 야비하면서 악하기까지한 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향이 큰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악마를 보았다' 때문인 것 같다"면서 "2010년 개봉한 영화다. 벌써 8년이 지났다. 이제 좀 잊어 달라."고 하소연 했다.

지난 6월 개봉했던 'V.I.P'의 이종석을 비롯한 수많은 후배가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을 악역 연기의 교본으로 삼고 있다고 하자 "후배들이 나를 뛰어넘는 더 잔인한 캐릭터를 연기해야 한다. 그래야 나도 그 이미지를 벗을 수 있을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침묵'에서 최민식은 부와 권력을 가진 재벌 임태산으로 분했다. 약혼녀가 살해된 사건에 딸이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를 연기했다. 전작 '특별시민'에서 보여줬던 서울 시장 변종구를 떠오르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영화 중반부까지 자신의 욕망과 이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캐릭터만 놓고 보면 '특별시민'과 마찬가지로 성공한 중장년이지만 유사성에 대한 우려는 없었다. 임태산이나 변종구 둘 다 초반에 푹 썩은 모습이지만 그것 또한 자연스러운 거고 드라마가 다르다. 결과적으로 '침묵'의 드라마가 풍기는 냄새와 맛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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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대로 '침묵'은 전반부가 부성애 드라마라면 후반부는 멜로 드라마다. 50대 중반인 배우 최민식이 30대 중반의 배우 이하늬와 멜로 연기를 펼치는 것은 언뜻 생각하기에는 무리수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진실되게 교감하며 강렬하고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특히 후반부 임태산과 유나가 거울을 앞에 두고 진심을 이야기하는 판타지신은 최민식의 품격있는 연기와 이하늬의 깊어진 감성이 만나 완성된 아름다움의 극치다.  

"임태산이 유나에게서 가장 듣고 싶은 말이었을 것 같다. "괜찮아"라는 말. 임태산의 무의식의 세계, 환영이라고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유나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말하는 건 그의 진심이다. 임태산이 처음으로 죄책감과 참회의 마음을 보여주는 신이고 인간성의 회복이 이뤄지는 신이다. 이하늬가 참 연기를 잘해줬다. 깊어졌더라. 카메라 무빙도 복잡하지 않고, 한 번에 가야하는 장면이었다. 그 상태에서 감정을 끌어올리기가 싶지 않은데 하늬의 연기에 놀랐다. 나는 그저 리액션만 한 것이다." 

최민식은 '침묵'이 부성애나 멜로라는 감정을 넘어 '회복'의 이야기라고 강조했다.  

"종전까지는 장르적이고 자극적인 영화, 따뜻한 포용과 슬픔 그런 것과는 동떨어진 각이 잡히고 그런 작품을 많이 하다 보니 좀 지쳤다. 따뜻한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멜로라기 보다는 인간 내면의 교감을 다룬 드라마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작품이 그런 것이었다. 단편 소설 하나 읽은 것 같은 느낌이랄까. 자극적이진 않지만. 자꾸 생각나는 영화. 그리고 그 영화 안에서의 인간들의 관계에서 오는 파장 그게 오래 맴돌고, 그런 영화가 요즘 없지 않았나. 과거에 내가 했던 '파이란'같은 인간의 본성을 건드리는 영화를 더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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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더욱더 그런 작품을 찾고 기다리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편식은 안 하려고 한다. 내 의식이나 감성이 뭐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이런 건 없다. 일단은 다 좋아한다. 다만 나를 떠오르면 강하다, 잔인하다를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다. '악마를 보았다'의 영향인 것 같은데, 좀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연기로 일가를 이룬 그에게도 목표라는 게 있을까 싶다. 최민식은 "배우의 연기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 않나. 계속에서 공부하는 것 같다. 또 다른 세상, 또 다른 인물과 만났을때 오는 긴장감은 항상 있고, 그것에 대해 두려움도 늘 있다. 물론 설렘과 신남이 더 크다. '야, 새로운 세상이다!'하면서 여행가는 기분이랄까. 다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이어야만 한다. 여태까지도 그러려고 노력해왔지만 앞으로는 좀 더 이기적으로 내가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 영화라는 여행의 짐을 싸고 싶다."

이번 영화를 보면 최민식의 내공으로 완성한 중년의 멜로의 맛과 깊이가 상당하다. 40대 초반의 '파이란'과는 또 다른 정통 멜로 연기도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관계자들과 배우에게) 많이 좀 얘기해달라. 그렇지만 (이)하늬니까 해준 거지. 누가 나랑 멜로 연기를 하려고 하겠냐. 가끔 술 마시고 정지우 감독에게 "나 35금 격정 멜로 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알았어요. 조금만 기다려봐요"라고 답한다. 좋은 소식을 기다려봐도 될까.(웃음)"

<사진 = 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제공, '악마를 보았다', '침묵' 스틸컷>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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