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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고등학교 때 수능 공부하면 '바보'라고요?

이미 초등학교 때 입시가 결판난다는 강남 엄마들

[취재파일] 고등학교 때 수능 공부하면 '바보'라고요?
"단 한 번의 학력고사나 수학능력시험으로 대입을 결정하는 이른바 '진검 승부'가 차라리 공정하다."

아직도 많은 분이 이런 주장을 하면서 대입 학생부 종합전형과 수시 모집의 공정성에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상당수 부모는 모의 평가에서 전교 10등 하는 우리 자녀가 떨어진 학교에 모의평가 전교 20등 학생이 합격하면 수긍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교 20등 학생에게 합격할 만한 뭔가 특별한 '다른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꼼수'가 있었다고 믿고 싶고,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 학생부 종합전형이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육부에서도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고 내년 8월이면 현재 중2 학생들에게 적용될 새로운 대입 전형의 윤곽이 드러날 전망입니다. 현재의 시스템 안에서 불신의 요소를 제거하고 사교육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게 변화의 골자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사교육 부담이 줄어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사실 학생부 종합전형을 도입한 이유 중의 하나가 사교육 폐해를 줄이겠다는 거였습니다. 강남 대치동으로 대표되는 입시 수업 중심의 사교육 열풍을 막고, 성적만이 아닌 동아리, 봉사 활동, 경시 대회, 수상 경력 등 다양한 요소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게 학종의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입시 중심의 사교육은 그대로 활황이고, 여기에 더해 학생부 종합전형을 위한 대입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사교육 시스템까지 생겼습니다. 오히려 사교육 업계에 '블루오션'을 하나 더 만들어준 꼴이 된 겁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학종형 입시에서는 성적도 좋고, 다른 것도 잘해야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적이 좀 덜 해도 다른 장점이 있는 학생, 전공에 맞는 특기를 갖고 있는 학생을 뽑겠다는 애초 학종의 취지가 완전히 왜곡된 겁니다.

서울대에 한 해 백 명 이상의 학생을 보내는 한 특목고의 동아리 활동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완벽한 발음과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는 영어 연극 동아리, 전문 댄스 팀도 울고 갈 춤 동아리의 '웨이브', 기립 박수가 절로 나오는 오케스트라 공연까지! 어떻게 공부할 시간도 모자라는 고등학생들이 이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 물었더니 답은 "공부 별로 안 한다."였습니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공부는 이미 중3 때 다 "끝냈다"는 겁니다. 유명 외고, 자사고에 진학할 정도의 학생들은 이미 중3 때 고교 과정을 거의 끝내고, 수능 준비까지 마친 상태에서 입학한다는 겁니다. 이런 탄탄한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고교 3년 동안은 학종 스펙 만들기에 전념한다는 겁니다. 수능을 위한 공부와 내신 관리는 그때그때 적당히 '유지 보수' 정도만 하면 되는 겁니다.

결국 중학교 때는 고교 과정,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 과정의 선행 학습이 아예 굳어진 겁니다. 교과목 사교육은 사교육대로 받고, 학종 스펙을 쌓기 위한 컨설팅과 비용 지출도 이중으로 하는 구조입니다.

강남에서는 이미 초등학교 때 입시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자녀를 국외로 보내거나 국제학교에 보낼지, 국내 입시 시스템에 맞춰 키울지 결정해야 한다는 겁니다. 한 학부모는 한 번 국제학교에 다닌 학생은 '거센' 한국형 입시 시스템으로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고도 말합니다. 그만큼 한국형 입시 시스템이 '비정상적'으로 왜곡됐다는 얘기입니다.

교육부가 내년 8월까지 10개월 동안 더 많은 고민을 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준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모두가 비정상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망국적' 입시 시스템의 변화 없이는 국가의 미래도 찾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나친 사교육 투자가 '헛돈' 쓰는 일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서 4살, 1살인 저의 두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그 때는 '한국형 입시'도 정상화돼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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