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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법원 "법으로 보장하는 5년 지나도 임차인 권리 보호해야"

[취재파일] 법원 "법으로 보장하는 5년 지나도 임차인 권리 보호해야"
김 모 씨는 2011년부터 서울 종로구에서 치킨집을 운영해 왔습니다. 2012년 건물주가 바뀌었지만, 바뀐 건물주 이 모 씨와도 두 차례 계약을 체결해 총 5년 동안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중 김 씨는 건물주 이 씨로부터 계약 만료 3달 전, 더 이상은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단 통보를 들었습니다.

권리금이라도 건져야겠다는 생각에 김 씨는 자신에 뒤이어 가게를 운영할 사람과 4천8백만 원에 권리금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건물주 이 씨에게 새로운 사람과 임대차 계약을 맺어 달라고 연락을 했지만 이 씨는 묵묵부답이었고, 급기야 2016년 12월 13일에는 '상가에서 나가게 해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새로운 사람과 체결한 권리금 계약도 당연히 무산됐습니다. 그러자 김 씨도 이 씨 때문에 권리금을 받지 못했다며, 권리금 만큼을 배상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사건은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99단독 정일예 판사가 맡았습니다. 정 판사는 사건이 개시된지 10달 만인 지난달 12일 1심 결론을 내놓았습니다. 일단 김 씨와 이 씨가 체결한 임대차 계약의 기간이 끝난 것은 맞으니 김 씨는 보증금을 돌려받고, 이 씨에게 상가를 돌려주라고 판단했습니다. 김 씨의 권리금에 대해 건물주 이 씨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가 복잡한 문제였습니다.

재판을 진행하면서 건물주 이 씨는 크게 두 가지를 주장했습니다.

우선은 계약을 체결한지 5년이 지났기 때문(전 주인과 1년, 본인과 4년)에 임대인, 즉 건물주인 자신이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에서 계약갱신요구권은 전체 임대차 기간이 5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행사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는 것을 그 근거로 들었습니다. 물론 권리금에 대해서는 같은 법 제10조의4를 통해 따로 규정하고 있지만,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할 수 없을 땐 권리금 회수기회를 보장해 줄 필요도 없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씨는 또, 증축과 수선을 위해 문제가 된 건물을 리모델링하려는 계획이 있기 때문에 임대차 계약을 거절하는 데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씨의 두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일단 권리금 회수기회 보호와 관련된 조항이 엄연히 따로 존재하는 가운데, 계약갱신요구권 관련 조항과 연계해서 해석할 만한 실마리가 법문상 전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설령 이를 연계해서 해석한다고 할지라도 "임대차 기간이 5년이 경과 했다는 이유로 임차인의 권리금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위 권리금 조항의 입법취지가 온전히 달성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리모델링을 한다는 것이 임대차 계약 갱신을 거절할 합당한 이유가 되려면 ① 처음 계약을 체결할 때 그 계획을 구체적으로 고지했거나, ②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을 정도이거나 ③ 다른 법령에 따라 철거나 재건축이 이뤄지는 경우에 해당해야 하는데, 문제가 된 건물은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로 정 판사는 건물주 이 씨가 "정당한 사유 없이 임대차 계약의 체결을 거절하는 행위"를 함으로 써 김 씨가 "권리금을 지급받는 것을 방해하였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정 판사는 법원에서 감정한 권리금 4천124만 원 가운데 김 씨가 수거해 갈 수 있는 영업시설 1백42만 원어치를 제외한 3천982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사건 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명경의 정하연 변호사는 "그동안 임대인들이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이유로 임차인의 권리금 회수기회를 무조건적으로 보호해 주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이 판결로 상생 방안을 모색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법이 보장하는 5년이 지난 뒤에도 권리금 회수 청구가 가능한지'를 두고는 아직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사실, 이번 판결과는 정 반대인 회수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 주를 이루고 있는 지경입니다.

하지만 5년 이후에는 권리금 회수권을 상실하게 된다고 하면, 갱신요구권이 보장하는 5년을 다 채우지 않은 채 3년이나 4년 정도 영업하고 권리금 회수에 나서는 관행이 정착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들에 대한 대법원 판례가 확정돼야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이 정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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