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포트+] "비둘기 싫어요"…'평화의 상징'에서 '닭둘기' 된 사연은?

윤영현 기자 yoon@sbs.co.kr

작성 2017.10.24 15:1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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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리포트+] "비둘기 싫어요"…평화의 상징에서 닭둘기 된 사연은?
길을 걷다 갑자기 머리에 닿을 것처럼 낮게 날아오는 비둘기,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보이시나요? 길에서 마주할 수 있는 광경인데 시민 대부분은 질색하며 비둘기를 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가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쓰레기를 주워 먹어 잘 날지 못할 만큼 살이 쪘다는 의미의 '닭둘기', 배설물과 깃털로 각종 세균을 옮겨 '쥐둘기'라는 별명까지 얻은 비둘기. 오늘 리포트+에서는 비둘기가 기피 대상이자 유해 동물이 된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정말 사람에게 해로운 동물인지 따져봤습니다.

■ 유해 동물로 지정된 비둘기…전국에 100만 마리 살고 있다?

지난 2009년 환경부는 도시에 주로 서식하는 비둘기 종인 '집비둘기'를 유해동물로 지정했습니다. 당시 집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분류하는 '야생동식물보호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입법 예고된 이후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7,101명 중 83%에 달하는 5,894명이 환경부의 개정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유해 동물로 지정된 비둘기…전국에 100만 마리 살고 있다?집비둘기가 유해동물로 지정됐지만 관리는 허술한 실정입니다. 개체 수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은 가운데 대한조류협회 등은 현재 전국의 비둘기 개체 수를 대략 100만 마리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중 절반인 50만 마리는 수도권에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른 조류와 비교해 많은 수치는 아니지만, 문제는 비둘기들이 자연이 아닌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이나 도심에 집중돼 있다는 겁니다.

■ 과자와 쓰레기가 주된 먹이…도심이 '비둘기 천국' 된 이유는?

일반적으로 집비둘기는 1년에 1~2회 알을 낳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서식하기 좋은 환경에서는 1년에 4~5회까지 알을 낳기도 합니다. 성장도 빨라 갓 태어난 새끼는 4~6주가 지나면 독립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현재 도시 환경이 비둘기가 개체 수를 늘리는 데 적합하다고 지적합니다.

도시에는 비둘기의 천적인 매 등이 서식하지 않는 데다 먹이도 풍부합니다. 시민이 던져주는 음식이나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로 비둘기는 하루에 필요한 먹이의 양을 쉽게 채울 수 있습니다. 천적 없는 환경과 풍부한 먹이가 비둘기의 성장과 높은 번식률을 보장해 주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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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등 천적 없음&시민들이 던져주는 과자, 쓰레기로 하루에 필요한 먹이의 양(20~50g) 채우는 비둘기들
-> 안정된 성장과 높은 번식률 보장 //특히 비둘기들이 과자 부스러기나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 찌꺼기를 주워 먹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런 음식은 염분 함유량이 높고 지방이 많이 포함돼 있어 비둘기의 이상 번식을 가져온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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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순창 / 대한조류협회 회장]
"공원에 가면 노인이나 어린아이들이 비둘기에게 과자를 뿌려주죠. 이렇게 주변에 비둘기의 먹이가 많다는 점이 비둘기의 증식 효과를 높인다고 볼 수 있습니다." //
■ 비둘기는 사람에게 해롭다?…면역력 떨어지면 '뇌수막염'과 '폐 질환'까지

비둘기를 기피하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건강에 해로울 거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실제로 비둘기는 사람에게 해로운 동물일까요? 건양대 의대 세포생물학교실 지희윤 교수팀이 지난 2003년 비둘기 배설물의 유해성을 조사한 결과, 배설물에서 나온 '크립토코쿠스 네오포만스'라는 곰팡이가 사람에게 뇌수막염과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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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희윤 / 건양대 의대 교수]
"비둘기 배설물이 마르면 그 속의 크립토코쿠스 균 포자가 형성돼 공기 중에 떠다니다가 사람 호흡기로 들어가 뇌수막염이나 폐 질환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다만, 전문가들은 "크립토코쿠스가 건강한 일반인에게 문제 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질환을 앓고 있어 면역력이 떨어진 경우 감염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일각에서는 비둘기의 깃털이 아토피성 피부염을 일으키는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사실 산에 사는 비둘기들은 천적이 냄새를 맡지 못하도록 물에 여러 번 씻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도심 집비둘기들은 상황이 다릅니다. 도심에는 씻을 곳도 마땅치 않은 데다 자동차의 배기가스 등 유해물질에도 노출돼 있습니다. 게다가 비둘기들은 군집 생활을 하기 때문에 한 마리만 세균에 감염돼도 나머지에 옮겨갈 위험이 있습니다.

■ 가짜 알로 바꿔치기까지…비둘기와의 전쟁, 국내의 대책은?

비둘기의 배설물이 도시 미관에도 좋지 않고, 건물이나 유적지 등 기타 시설물 자재를 부식시킨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비둘기의 배설물이 물과 닿으면 곰팡이 등이 성장하고 대사 과정에서 산성 물질이 나옵니다. 이 산성 물질은 석회석을 녹여 구조물을 손상시키고 심할 경우에는 미세한 틈을 만들기도 합니다.

오래된 건물이 많은 유럽 등지에서는 이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 비둘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습니다. 영국은 비둘기에게 먹이 제공 시 50파운드(7만 2천 원)를 부과하고 먹이를 제공한 노점상은 영업 정지 처분을 받습니다. 프랑스는 공원에 비둘기집을 설치해 알을 낳게 한 뒤, 집을 흔들어 알을 부화 불능 상태로 만드는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둘기를 어떻게 관리할지 제대로 논의조차 안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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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선진국의 비둘기 퇴치법>
영국: 먹이 제공 시 벌금 부과
프랑스: 비둘기 알 부화 불능 상태로 만듦
스위스: 진짜 비둘기 알을 가짜 알로 바꿔치기
벨기에: 비둘기 포획과 중성화 수술
미국: 불임 성분이 섞인 약을 먹이에 섞어줌 //서울시는 과거 비둘기에게 먹이를 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하는 법안을 만들자고 환경부에 건의하기도 했지만,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 측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된 바 있습니다. 서울시는 궁여지책으로 비둘기 밀집 지역에 '먹이 제공 금지' 현수막을 설치하고 기피제를 뿌리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 비둘기를 기피하는 시민이 많아지고, 비둘기에 대한 인식도 변한 만큼 이를 어떻게 관리할지, 지금부터라도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획·구성: 윤영현, 장아람 / 디자인: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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