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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징계 직원에 높은 근무평정…국민연금 '제 식구 감싸기'

[취재파일] 징계 직원에 높은 근무평정…국민연금 '제 식구 감싸기'

전병남 기자 nam@sbs.co.kr

작성 2017.10.24 10:08 수정 2017.10.24 10:22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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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국민연금공단 직원 A씨는 동료 B씨를 성희롱한 혐의로 징계위원회에 넘겨졌습니다. 사실 관계는 이렇습니다. 2013년 5월, A씨는 회식을 마치고 B씨와 함께 근처 역에 도착했습니다. 기차를 타려는 B씨를 A씨가 막아섰습니다. "커피나 한잔 하자"는 게 이유였습니다. 결국 B씨는 기차를 놓쳤고, 다음 기차가 올 때까지 A씨와 함께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자"던 A씨가 B씨를 추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수 차례의 추행은 근처 CCTV에 고스란히 찍혔습니다.

B씨는 사건 직후 상사에게 관련 사실을 알리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습니다. 경찰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B씨 주장에 따르면, 당시 A씨는 자신의 상사에게 "빌었으나 반응이 없다. 어린 게(B씨를 지칭) 말하는 게 확 올라왔지만, 겨우 참았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말까지 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증거관계가 명확했기 때문에 징계위원회는 이 사건을 성희롱으로 결론지었습니다. A씨에겐 정직 3개월의 징계가 내려졌습니다.

그런데 그 해 근무평정에서 A씨는 만점, 그러니까 100점을 받았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은 법적으로 준정부기관으로 분류됩니다. 기획재정부의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인사운영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공기업과 준정부기관 기관장은 근무평정 같은 업무성과지표를 승진과 전보의 기준으로 사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객관적이고 공평해야 하겠죠.

하지만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성일종 의원(자유한국당)을 통해 SBS가 확보한 자료를 보면, 적어도 국민연금공단에선 근무평정이 제 기능을 못하는 걸로 보입니다. '근무평정 편법 운영' '제식구 감싸기'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일들이 수치로 드러났습니다.

지난 10년간 국민연금공단에서 음주운전과 성(性) 관련 비위로 징계를 받은 직원은 모두 18명으로 집계됐습니다(징계처분 미확정은 제외).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죄질이 나쁜 사안들입니다. 그런데도 이 중 절반 가량인 45%는 '견책' 처분을 받는데 그쳤습니다. 나머지도 대부분 '감봉 1~3개월' '정직 1~3개월'로 징계 수위가 낮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고 치죠.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앞서 언급한 음주운전·성 관련 비위 징계자 18명 중 근무평정 해당 사항이 없는 5명과 퇴사자 1명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의 당해 근무평정 점수는 평균 92점입니다. 국민연금공단 직원 전체 평균 점수인 80점을 훨씬 웃돕니다. 심지어 100점을 받은 직원도 2명이나 됩니다.

다른 비위로 징계를 받은 직원들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사내 폭행으로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받은 C씨도 근무 평정에서 100점을 받았고, 개인정보를 무단 열람해 감봉 처분을 받은 D씨는 그 해 근무평정 98.999점을 받았습니다. 모두 평균점수를 20점 가까이 뛰어넘었습니다. 사내 폭행으로 해임이 결정됐던 E씨도 인사 평가에서 90점에 육박하는 점수를 받았습니다. 징계를 받은 직원 거의 대부분이 평균 근무평정 이상의 점수를 받은 겁니다.

결론은 둘 중 하나겠죠. 일 잘하는 직원들만 유독 문제를 일으켜 징계를 받았든지, 아니면 징계를 받은 직원의 불이익이 우려돼 점수를 높여 줬든지. 굳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정답이 어느쪽인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징계자에 대한 온정주의가 부적절한 평가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성 의원은 "국민연금공단의 징계 정당성이 의심될 정도"라고 꼬집었습니다.

국민연금공단은 '세계 3대 연기금'이자 '자산 600조원'인 국민연금을 운영하는 거대 기관입니다. 국민연금공단 직원들은 우리의 노후자금을 직·간접 적으로 관리하는 사람들입니다. 덩치와 중요도에 걸맞는 근무평정 시스템 구축이 시급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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