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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50만 명 숨진 인도네시아 반공학살 알고도 묵인…비밀문서 공개

20세기 최악의 대량학살로 꼽히는 인도네시아 반공 대학살을 미국이 알고도 묵인했음을 보여주는 당시 외교문서가 공개됐습니다.

17일(현지시간)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이날 1963년에서 1966년 사이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에서 작성된 외교문서 수천 건의 기밀 지정을 해제했습니다.

이 문서들은 5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학살의 참상 속에서도 친미정권 수립이란 결과에 환호성을 올리는 미국 외교관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1965년 당시 인도네시아 공산당(PKI)의 당원은 수백만 명에 달해 중국, 구소련에 이어 세계 3위의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반미·반소련·비동맹 노선을 주창하던 수카르노 초대 대통령도 반미 성향이 강했기에 미국은 조만간 인도네시아가 소련의 영향권에 편입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조작 의혹이 제기되는 1965년 공산 쿠데타 시도(9·30 사건)를 계기로 친미 성향의 군부가 집권하면서 이런 상황은 180도 반전됐습니다.

군부는 쿠데타 배후 세력을 척결한다면서 무차별 살상을 저질렀고, 수카르노 체제는 그대로 붕괴했습니다.

군정을 거쳐 새롭게 대통령이 된 수하르토는 친미·반공주의를 내세우며 33년의 독재에 들어갔습니다.

1965년 12월 21일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은 이와 관련해 본국 국무부에 보낸 전문에서 "불과 10주만에 환상적인 전환이 있었다"고 평가했습니다.

당시는 이미 10만 명이 넘는 시민이 학살된 시점이었습니다.

전문은 "발리에서만 약 1만 명이 살해됐다"고 전했고, 두 달 뒤 발송된 전문에는 발리에서 일어난 학살로 인한 희생자의 수가 8만 명으로 늘었다는 내용이 담겼습니다.

기밀 해제된 문건들은 인도네시아 최대 이슬람 단체인 나들라툴 울라마(NU)와 산하 청년단체들이 학살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내용도 담고 있었습니다.

1965년 12월 메단 주재 미국 영사관은 현지 이슬람 사원에서 "공산당은 불신자 중에서도 최저의 부류로 그들의 피를 흘리는 것은 닭을 잡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내용의 설교가 이뤄졌다고 보고했습니다.

실제 인도네시아 상당수 지역에선 공산당 가담 혐의로 체포된 주민의 수가 급증해 수용시설 및 식량 배급이 힘들어지자 이슬람 청년단체가 이들을 무차별 살상한 정황이 남아 있습니다.

정작 이렇게 목숨을 잃은 민간인 중 상당수는 공산당과 무관한 이들이었습니다.

미국 외교관들은 이런 만행에 앞서 수하르토와 군부에 불리한 외신 보도를 억제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주인도네시아 미국대사관은 1965년 10월 중순 대사관을 찾은 부중 나수티온 인도네시아 법무장관 특별보좌관에게 "미 정부는 상황의 민감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언론의 자극적 추측보도가 나오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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