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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룸] 북적북적 107 : 아주 가냘프게 들려온다…하루키 '먼 북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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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들어보니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아주 가냘프게. 그리고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가져온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유럽 여행 에세이인 <먼 북소리>입니다. 제가 갖고 있는 책은 2004년 초판본, 이것도 13년 전입니다만 하루키가 이 책에 실린 여행을 다닌 건 1980년대 후반입니다. 30년쯤 전이네요. 

이 책에는 80년대 후반, 제목처럼 '먼 북소리'를 들은 하루키가 일본을 떠나 해외에서 살았던 3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이탈리아 로마와 그리스 아테네, 그리고 그리스의 몇몇 섬들, 시실리와 헬싱키, 잘츠부르크까지 긴 여행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먼저 머리말을 좀 읽겠습니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작가로서 하루키는 대단히 성실한 사람입니다. 그가 여러 에세이에 토막토막 적었듯이 달리기를 통해 글을 쓰기 위한 체력을 키우고 마라톤도 주기적으로 하고 해외에 나가서도 놀러 다니기만 하는 게 아니라 출근하듯 매일매일 글을 씁니다. 이런 성실한 일상은, 저에게는, 호감을 주는 큰 요소이기도합니다. 그런 성실성도 부럽습니다. 그리스의 스펫체스 섬이라는 곳에서 보낸 하루를 짧게 읽어보겠습니다.

"내 원고를 한참 쓰다가 싫증이 나면 번역을 한다. 그러다가 번역 작업에 싫증이 나면 이번에는 다시 내 원고를 쓴다. 비 오는 날에 노천에서 하는 온천욕과 같다. 현기증이 나면 탕에서 나오고 몸이 식으면 다시 탕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이런 반복 작업이 언제까지나 계속된다."

"추운 밤에는 난로에 불을 지핀다. 난롯불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면 시간은 조용히, 그리고 기분 좋게 지나간다. 전화도 걸려오지 않고 마감 날도 없고 텔레비전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 눈앞에서 타닥타닥하고 불꽃이 튈 뿐이다. 기분 좋은 침묵이 사방에 가득하다."


더 어려서 읽었을 때는, '이명 현상인지도 모를 북소리를 좀 들었다고 외국 나가 살 수 있다니! 부럽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조금 더 나이를 먹고 보니, 마흔 살을 인생의 한 고비, 전환점으로 여기면서 자신이 달라지기 전에 뭔가 보람 있는 일을 남기고 싶었다는 대목이 더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때의 하루키와 비슷한 연배가 돼서 그런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하루키는 그 시절을 건너 예순이 넘었습니다. 긴 여행을 마치고 난 뒤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돌아보면 '이때가 그 순간이었나' 싶을 때가 누구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에게는 지금이 그런 때일까요, 아직 얼마가 더 남았을까요, 아니면 이미 지났을까요.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내게는 지금도 간혹 먼 북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오후에 귀를 기울이면 그 울림이 귀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 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출판사 문학사상사로부터 낭독 허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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