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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치 이슈'가 된 사드, 그리고 창조적 외교

[취재파일] '정치 이슈'가 된 사드, 그리고 창조적 외교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이하 사드)’는 군사 무기입니다. 뭐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고 하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언젠가부터 군사 무기 사드에 대한 군사적 논의가 사라졌습니다. 국내에선 북한이 미사일을 더 멀리 보내면 보낼수록 사드 배치 촉구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사드는 북한이 남한으로 쏜 미사일을 막기 위해서라는데, 남한으로 보내기엔 필요 이상으로 멀리 가는 미사일을 발사할 수록 사드 배치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져온 셈입니다.

물론, 안보는 1%의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 됩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일부러 고각 발사해 남한으로 쏠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미국 본토까지 갈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 이후에 사드를 배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건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드가 단순히 군사적 무기로서 뿐만 아니라 심리적 진정제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는 겁니다. 안보 불안감이 고조된 상태에서 ‘사드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생각이 커지면서, 군사적 논의가 사라졌을 수도 있다는 거죠.
한미 사드 발사대 추가 배치 합의
● 한미 동맹의 가늠자가 된 ‘사드’

사드에 대한 ‘군사적’ 논의가 사라진 이유에는 사드가 ‘정치적 이슈’가 됐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 사드 배치 주장 근거 중 하나로 ‘한미 동맹을 위해서’가 거론되는 게 그 방증입니다. 누군가는 ‘군사 무기’ 사드 배치를 국가 간 관계를 규정하는 정치적 가늠자로 보고 있는 겁니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 외교 전문가는 사드 임시 배치 이후 SBS와의 통화에서 “현재 미국에서 사드 배치는 한미 동맹에 대한 한국의 생각을 확인하는 바로미터 역할을 하고 있다”며,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사드 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한미동맹이 파탄 났을 수도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발사와 핵 실험으로 미국인들의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는데, 동맹국인 한국은 뭐 하느냐, 미국을 정말 동맹국으로 생각한다면 ‘사드 배치’로 이를 입증해 보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렇게 ‘사드’가 ‘정치적 이슈’가 된 건 박근혜 정부의 사드 배치 논의 과정 등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한 외교 전문가는 이를 ‘박근혜 정부가 이번 정부에 남긴 불행한 유산’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사드 배치와 관련한 박근혜 정부의 모호한 입장과 전격적인 결정, “(사드와 관련해) 미중 양쪽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는 외교장관의 설화 등으로 사드의 정치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사드 포대를 전격 들여 왔는데, 만약 문재인 정부가 이를 배치하지 않는다면 한국에 대한 미국의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사드, 중국, 한국, 한중수교 25주년

● 미국이 주도한 사드 배치…강타당한 한중 관계

사드가 ‘정치적 이슈’가 된 건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주최한 한중 언론교류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중국을 방문해 만난 정부 당국자, 중국 정부 싱크탱크 관계자, 중국 언론인 등과의 대화는 ‘기-승-전-사드’였습니다.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에 대한 논의는 으레 ‘한국은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로 귀결됐고, ‘한중 무역’과 관련된 이야기는 ‘중국을 돈벌이 대상으로만 생각하지 말라’는 사드 관련 논의로 끝났습니다. ‘북핵’ 문제를 이야기 하다 가도 이야기는 ‘사드’로 이어지는 게 다반사였습니다. 중국 외교의 모든 이슈를 ‘사드’가 빨아들이고 있는 듯 했습니다.

중국이 사드에 대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1차적으로는 사드의 ‘X-밴드 레이더’에 대한 우려였습니다. ‘X-밴드 레이더’를 통해 미국이 중국의 동북 3성 지역을 감시할 수 있다는 불안감, 나아가 사드가 미국의 對 중국 포위·봉쇄 전략의 일환이라는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드가 군사 무기 이상의 정치적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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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방문 기간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곳곳에 내 걸린 ‘중국의 꿈(中國夢)’이란 현수막과 안내 표지였습니다. 과거 중화 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재현하자는 ‘중국몽’. 이 안내 표지는 중국이 세력전이론이 상정하는 패권적 지위를 노리는 신흥국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국가적으로 중화 민족의 부흥을 추진하고 있는데, 현 패권국인 미국은 ‘사드’를 통해서 '중국의 꿈‘을 견제하려 하고 있고, 한국이 미국의 대(對) 중국 견제와 봉쇄에 앞장서고 있다는 게 중국에서 만난 정부 당국자 등의 생각이었습니다. 

● 정치 이슈가 된 사드가 북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면?

우리로서는 답답한 상황입니다. 미국과 중국에서 모두 ‘사드’가 정치적 문제가 됐으니, 사드에 대한 군사적 설명과 배치 관련 국내 절차에 대한 설명으로는 ‘사드’로 인한 미국의 의심, 꼬여버린 중국과의 관계를 풀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북한 핵실험으로 인한 안보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를 풀 ‘키 플레이어’인 중국이 ‘최우선 외교 현안은 사드 배치 철회’라며 뒷짐 지고 있는 듯 한 것도 답답한 상황이죠.

그런데 어쩌면 '사드'가 북핵 문제를 풀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중국의 최우선 외교 현안이 ’사드 배치‘ 철회이고, 미국의 최우선 외교 현안이 ’북핵 문제 해결‘인데 이를 위해선 중국의 협조가 필수라고 생각한다면, 미국과 중국이 서로 주고받기를 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미-중의 주고받기가 가능하다면 한국의 역할은 ’미-중‘이 서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역할에 그쳐야 할 겁니다. 중재자 역할을 하겠다거나 뭔가 결정적 역할을 하겠다는 욕심을 냈다가는 양쪽으로부터 오해와 공격을 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철저하게 미국과 중국이 대화를 하게끔 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할 겁니다.

사드 배치 논의 과정에서 미국이 직접 중국을 설득하도록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한중 관계, 그리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외교의 활동 공간은 지금과는 달랐을 겁니다. 물론, 물은 엎질러졌습니다. 하지만, 북핵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미국과 중국의 외교·안보 현안 우선순위가 다르다면, 엎질러진 물인 ‘사드 배치’가 오히려 얽힌 문제들을 풀어낼 돌파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꿈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세계사는 꿈 같은 일이 현실이 되어온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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