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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국민은 달걀 먹어도 된다더니…공무원 밥상에는?

[취재파일] 국민은 달걀 먹어도 된다더니…공무원 밥상에는?

현재진행형인 '살충제 달걀 파동'…공직사회 솔선수범해야

강청완 기자 blue@sbs.co.kr

작성 2017.09.25 09:41 수정 2017.09.25 10:03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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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취재파일] 국민은 달걀 먹어도 된다더니…공무원 밥상에는?
직업상 정부청사나 국회를 비롯한 공공기관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을 일이 자주 있습니다. 이곳저곳 다니다 보니 어느 구내식당이 더 맛있나, 어떤 메뉴가 나오나 비교해보기도 합니다.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메뉴판을 유심히 들여다볼 때도 종종 있습니다.

지난달 SBS 8뉴스에서 보도한 <달걀 괜찮다더니…‘공무원 밥상’엔 없다> 기사도 이런 과정에서 나왔습니다. 

-해당 기사
▶ '먹어도 괜찮다더니'…공무원 밥상서 자취 감춘 달걀

살충제 달걀 사태가 터진 뒤 국회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관련 부처 담당자들이 불려 나왔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등 관련 부처 수장들이 관련 실태조사와 대책 등을 보고했습니다.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고 나서는, “먹어도 된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달 21일, 식품의약안전처에서 “성인 기준으로 하루에 2개 반 정도는 평생 먹어도 된다”는 유해성 평가 결과가 나온 뒤부텁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국회 구내식당에는 ‘정부의 최종 적합성 확인 때까지 달걀 메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한참동안 붙어 있었습니다. 바로 위층에서는 정부 관계자들이 “먹어도 된다”고 말하고, 아래층 식당에선 “아직 못 먹는다”고 말하는 상황, 아이러니를 넘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무원 식당 안내문 ● "먹어도 된다" 했는데…공공기관 식단표에는 없는 달걀

정부종합청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식단표를 조회해봤습니다. 역시 달걀 메뉴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정부 기관이 밀집해 있는 정부 세종청사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몇 군데 제한적으로 급식을 재개한 곳도 있었지만, 정작 소관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가 위치한 세종청사 5동에서는 달걀 메뉴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이곳저곳 다녀보며 직접 물어도 봤습니다. 민원이 들어오거나, 달걀을 먹어도 되느냐는 질문이 자꾸 들어와 중단했다는 곳이 여러 군데, 한 구내식당에선 “정부에서 먹지 말라고 했다”는 담당 직원에게 “먹어도 된다고 하지 않았냐”고 반문했지만, “아직은 아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다만 청와대 구내식당에서는 달걀 반찬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공무원 식당 식단표그러나 식약처 설명은 달랐습니다. 8월 21일 유해 평가 결과 발표를 마지막으로 달걀에 대한 추가 적합성 조사는 하고 있지도 않고, 할 계획도 없다는 겁니다. 정부 입장에선 ‘이 정도까지는 안전하다’고 발표했으니, 급식에 넣을지 말지는 개별 기관에서 판단할 문제라고도 했습니다. 이 설명대로라면 8월 21일 이후 ‘정부의 최종 적합성 확인 때까지 달걀 메뉴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안내와 설명은 잘못된 셈입니다. 보도 하루 전날인 지난달 29일만 해도 류영진 식약처장은 “달걀 믿고 먹어도 되느냐”는 국회의원 질의에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민간에서는 대부분의 식당에서 달걀 적합성 검사 문서를 붙여놓고 달걀 메뉴를 제공하기 시작하는 시점이었습니다. 정작 정부 내에서만 한쪽에선 먹으라, 한쪽에선 못 먹는다, 상반된 신호를 내고 있던 셈입니다.

● "애꿎은 공무원만…?"…메뉴판도 메시지다. 

물론 이런 사태가 공무원들의 잘못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국회를 제외한 대부분의 정부 청사 구내식당은 청사 관리소 측의 용역을 받은 외주업체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외주업체들의 경우 ‘갑’인 정부 측의 지시나 권고 없이 독자적인 의사 결정을 하기 어렵습니다. 직접 관리하는 곳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살충제 달걀 파동’의 여파가 워낙 컸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겠죠.

실제로 보도가 나간 뒤 어느 한 공공기관의 구내식당 관리 책임자에게선 “달걀 급식을 하고 싶어도 민원이 들어올까봐 결정을 못 하고 있었는데 보도가 나간 덕분에 바로 그 다음날부터 달걀 급식을 재개했다”며 오히려 “고맙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지적하고 싶었던 건 일부 책임자들의 ‘무신경함’과 ‘소통 부족’입니다. 공직 사회가 우리 사회에서 갖는 파급력과 영향을 생각하면 ‘고작’ 구내식당 메뉴판 하나라 하더라도 책임자들의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으리라는 지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부가 법을 가지고 나라를 운영하는 법치 국가, 국가 시스템 안에서 공직자와 공직 사회는 그 자체로 다른 모든 사회 구성원과 기관의 준거가 된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공직자의 뇌물 수수를 엄격히 금지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다른 기관에서도 그렇게 합니다. 공직자 인사 채용 기준이 바뀌면 다른 기관도 곧 따라합니다. 공직 사회에서 벌어지는 하나하나가, 사회 전체를 향하는 메시지가 됩니다. 심지어 구내식당 메뉴판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공무원도 소비자이고, 시민이라는 점, 잘 알고 있습니다. 몸에 안 좋을 것 같고, 불안하면 안 먹을 권리, 당연히 있습니다. “애꿎은 공무원만 뭐라고 한다”며 억울해하실 분들도 충분히 있을 겁니다. 그러나 살충제 달걀로 인한 국민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정부가 “먹어도 된다”고 공식 발표까지 한 상황이었습니다. 소비 장려까지는 아니더라도 민간에 ‘먹어도 된다‘고 발표한 상황에서 정작 정부 식당에선 달걀을 찾아볼 수 없다면 민간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당연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최소한의 공적 책임감이나 의식이 있는 책임자라면, 적어도 이런 상황에서 구내식당 메뉴판 정도는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기자의 생각입니다. ‘모범을 보인다’든지,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표현까지 쓸 것도 없습니다. 구성원들이 불안할 것 같으면, 민간 식당처럼 ’적합성 검사 결과 안전하다‘는 안내문 써 붙이면 됩니다. 심지어 청와대에서는 달걀 반찬 계속 내는데, 왜 정작 정부 청사에선 안 냈는지 궁금합니다. 담당자들의 ‘세심한 조치’가, 아쉬운 대목입니다. 

●  '미국산 소고기'의 추억…세심한 배려 필요

사실 이런 기사, 몇 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온 나라를 시끌벅적하게 했던 미국산 소고기 파동이 있고 나서였습니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의혹 등으로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자 정운천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정부 구내식당에 1년 동안 미국산 소고기를 올리겠다”고 국회 청문회에서 말했습니다.
미국산 소고기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서울신문에서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취재한 결과 청와대와 정부청사 등 70개 공공기관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쓰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다시 그 이듬해인 2010년, 조선일보가 취재했더니 당시 청와대에서만 47% 정도 미국산 소고기를 썼고 나머지 기관에선 여전히 미국산 소고기를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불안해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지금 다시 돌아봐도 씁쓸함을 자아내는 장면입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은 다릅니다. 그때처럼 장관이 “구내식당에 올리겠다”고 말하지도 않았고 청와대도 계속 달걀 반찬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처럼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엇갈리는 문제도 아닙니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국민의 먹거리 문제라는 것, 그리고 정부 당국자들의 여전한 ‘무신경’과 ‘소통 부족’이 또 반복됐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누가 말하지 않아도 발 빠르고 세심하게 대처했더라면 국민에게는 더없이 좋은 메시지가 됐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살충제 달걀 파동’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잠잠해진 것 같지만 회복되지 않는 달걀 수요에 양계 농가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습니다. 달걀 산지 가격은 파동 이전보다 약 20% 이상 폭락했는데도 불구하고 창고에는 팔리지 않는 달걀이 남아돌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고, 개선되어야 할 것도 많습니다.

대대적인 지원 대책을 내놓고 거창한 캠페인을 마련하는 것만이 정부의 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사회 전체에 닥친 큰일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신뢰를 회복하고, 함께 극복해나가자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나아가 사소한 것으로 말미암아 생기는 정부에 대한 불신을 방지하고, 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것도 공직 사회의 할 일입니다. 겨우 식단표 하나 들여다보는 사소한 일이라 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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