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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름만 전해온 고전소설 '서경충효지' 찾았다

책 이름만 전해온 고전소설 '서경충효지' 찾았다
▲ 서경충효지 표지(왼쪽)과 내지

프랑스 출신 동양학자 모리스 쿠랑(1865∼1935)이 조선의 도서 정보를 집대성해 1894∼1896년에 펴낸 '한국서지'에 수록됐으나, 그동안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던 책 '서경충효지'(徐卿忠孝誌)가 발견됐다.

유춘동 선문대 교수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의뢰를 받아 이대형 동국대 교수와 함께 이 도서관의 고전운영실 서고를 조사해 조선 후기 고전소설 '서경충효지'의 실물을 확인했다고 24일 밝혔다.

서경충효지는 114장으로 된 한 권짜리 한문 필사본이다.

첫 장에는 서문이 있고, 두 번째 장에는 내제(內題·속표지에 적은 책의 이름)와 목록이 기재돼 있다.

유 교수는 서경충효지를 조사해 이 책이 만와(晩窩) 이이순(1754∼1832)이 지은 것으로 전하는 19세기 한문 장편소설인 '일락정기'(一樂亭記)와 내용이 같은 이본(異本)이라는 사실을 규명했다고 설명했다.

가정소설인 일락정기는 한국 고전소설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서울대 규장각,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이본 4종이 남아 있다.

유 교수는 "누락과 오자가 적어 일락정기의 선본(善本)으로 간주하는 규장각본과 서경충효지를 비교하면, 서경충효지에 오·탈자가 많다"면서도 "서경충효지에는 규장각본에는 나타나지 않는 표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서경충효지는 일락정기의 또 다른 이본인 김동욱본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규장각본과 김동욱본 사이에 위치하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일락정기의 이본을 두루 살핀 유 교수는 이 소설의 명칭이 본래는 서경충효지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일락정기의 서문에 나오는 '만와옹'(晩窩翁)을 토대로 작자를 이이순으로 규정한 것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유 교수는 "일락정기는 소설에 나오는 정자의 이름인데, 특정 장소를 작품명으로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서씨 집안의 충과 효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의 서경충효지가 소설 이름으로는 더 적합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경충효지와 일락정기의 서문을 비교하면, 서경충효지에는 소설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가 삭제돼 있고 저자와 필사 시기에 대한 정보도 빠져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서경충효지는 누가, 언제 적은 책일까.

서경충효지에는 소설 외에도 일기, 서간문 등이 필사된 상태다.

일기의 작성 시점은 1852년 9월 28일부터 1854년 12월 30일까지다.

유 교수는 "일기를 쓴 사람은 1850년대 충남 공주에 거주한 사대부 문인으로, 논산을 자주 오갔음을 알 수 있다"며 "그는 중국 난징(南京)에서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났고, 소설 수호지를 빌려 읽었다는 등의 글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권변(1651∼1726)이 1690년에 보낸 편지와 강석규(1628∼1695)가 지은 문학 작품도 필사된 점으로 미뤄 "서경충효지의 작자는 이 사람들과 학문적 성향이 비슷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서경충효지의 작자는 필사 이유에 대해 "특별히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는데, 마음 붙일 곳이 있으면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다"고 적었다.

즉 한가로움을 잊고 교양을 쌓기 위해 책을 적었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서경충효지가 확인되면서 일락정기의 원본(原本)과 작자에 대한 추가 논의가 불가피하게 됐다"며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에 기록돼 있지만, 실물이 확인되지 않은 나머지 고전소설도 찾게 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사진=유춘동 교수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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