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려줘서 고마워요" 74년 만에 전한 98세 노병의 감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군에게 포로로 붙잡혔다 탈출했던 영국의 한 노병이 생명의 은인에게 74년 만에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현지 시간으로 21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 데일리메일 등은 영국 참전 용사 렌 할리가 이탈리아 내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해 도피 중이던 자신을 숨겨준 당시 10대 소녀와 74년 만에 다시 만났다고 보도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북아프리카 사막에서 독일군에게 붙잡혀 이탈리아의 독일군 포로수용소에서 2년간 죽을 고생을 한 할리는 목숨을 걸고 탈출했습니다.

수용소 친구 닉과 이탈리아 중부 아브루초 산악지대의 한 작은 마을로 숨어든 할리는 당시 19살 소녀였던 로지나 스피노자의 농가에 문을 두드렸습니다.

연합군 포로를 숨겨줬다가 독일군에게 발각되면 사형을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당시 스피노자의 아버지는 이들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아버지와 가족을 설득해 그로부터 무려 5개월간이나 할리 일행을 그들의 집에 숨겨줬습니다.

독일군에게 발각돼 스피노자의 아버지와 남자 형제가 붙잡혀가는 고초를 겪기도 했지만 스피노자는 끝내 할리 일행을 독일군에게 내어주지 않았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5개월 뒤 할리는 당시 독일군 점령지였던 아펜니노 산맥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해발 2천793ｍ의 몬테 아마로 봉우리를 넘어 연합군 점령지역으로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고 1944년 비로소 고향 영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할리는 스피노자 일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려고 이탈리아를 2차례 찾아갔지만 이들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쟁 이후 소녀의 가족이 모두 미국에 이민을 갔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은인을 생전에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며 포기했던 할리는 최근 영국 공영방송 채널4의 '2차 세계대전 위대한 탈출' 시리즈 제작팀이 스피노자 가족을 찾았다고 했을 때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신문은 전했습니다.

할리는 현재 이탈리아에 거주 중인 스피노자를 만나러 직접 이탈리아로 가려 했지만, 건강상의 이유로 74년 만의 재회는 스카이프 영상통화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영국 에식스주 빌러리키 자택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올해 95세가 된 스피노자와 마주한 할리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당신은 너무나 멋진 사람입니다. 잘 지내고 있나요?"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가족에 둘러싸인 채 할리와 영상통화를 한 로지나에게 할리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 생존자"라며 "당신을 다시 만나게 돼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고 로지나도 "나도 아주 기쁘다"고 답했습니다.

(사진=더타임스 인터텟판 캡처/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