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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②] '택시운전사' 37년 만에 밝혀진 진실…김사복 아들, 발로 뛴 32일

[인터뷰 ②] '택시운전사' 37년 만에 밝혀진 진실…김사복 아들, 발로 뛴 32일
영화 '택시운전사'의 개봉과 함께 아버지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기 위한 아들의 고군분투는 시작됐다. 대다수는 믿지 않았다. 누군가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등장의 의도를 의심하기도 했다.

김승필(59) 씨는 믿었다. '진실'은 밝혀지리라는 것을. 그리고 각고의 노력 끝에 세월의 뒤안길에 가려져 있던 아버지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숨은 공신으로 인정받는 기쁨을 누리게 됐다.

"(대중들의 시선이)섭섭하지 않았어요. 충분히 오해하실 수 있다고 여겼어요. 그럴 때마다 반드시 아버지의 존재를 제대로 밝힐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알려지게 돼 기쁘고 감격스럽습니다"

김승필 씨에게는 중학교 2학년인 늦둥이 아들이 있다. 지난 7월 말, 방학을 맞은 아들과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택시운전사'였다. 앞서 예고편을 보면서 '우리 아버지 시대의 이야기네'라고만 생각했다고 했다.

"영화가 시작되고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영화입니다'라는 문구가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여러 가지 상황과 사건들이 익숙하게 다가왔어요. 그리고 마지막에 위르겐 힌츠페터 씨가 등장해 '김사복 씨를 만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때 전율이 일었어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관객들이 빠져나가는데 전 꼼짝도 못했어요. 마치 제 안의 영혼이 밖으로 빠져나온 느낌이랄까요."
[인터뷰 ②] '택시운전사' 37년 만에 밝혀진 진실…김사복子, 발로 뛴 32일
김승필 씨는 영화를 본 후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지난달 5일, SNS를 개설하고 글을 올렸다. 대중의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그는 영화 제작사 '더 램프'에도 연락을 취했다. 힌츠페터의 아내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가 내한했을 당시에 만남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그는 당시 섭섭함을 표하기도 했다.

모든 정황은 맞아떨어졌지만, 영화 속 주인공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서는 결정적 증거가 필요했다. 그는 아버지가 택시 조합 소속의 택시운전사가 아닌 호텔 택시를 몰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아버지가 근무했던 팔레스 호텔을 찾았고, 당시 아버지의 일을 증언해줄 관계자를 만났다.

관계자는 "김사복 씨가 당시 우리 호텔에서 택시 영업을 했고, 독일 기자를 광주에 데려다준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김승필 씨는 SBS '궁금한 이야기 Y'를 통해 가족관계 증명서와 팔레스 호텔의 기록이 담긴 서류를 공개했다. 그 서류에는 김사복 씨가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택시를 운전했고, 영어와 일어에 능통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었다.     

언론과 여론의 분위기는 달라졌다. 김승필 씨의 아버지가 '택시운전사'의 김사복일지도 모른다는 심증은 굳어져 갔다. 그러나 여전히 확실한 물증이 없었다.
[인터뷰 ②] '택시운전사' 37년 만에 밝혀진 진실…김사복子, 발로 뛴 32일
김승필 씨는 며칠 전 집에서 아내가 따로 관리하고 있던 앨범을 발견했다. 쉽게 볼 수 있었던 가족 앨범과 달리 책 형태로 된 앨범이 책장에 끼워져 있었다. 그곳에서 1980년 당시 아버지와 힌츠페터 씨가 함께 찍은 흑백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김사복 씨와 힌츠페터 씨가 5.18 이전에 이미 인연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사진이었다. 사진은 언론을 통해 공개됐고, 마침내 진실은 인정받았다.

김승필 씨는 아버지의 존재가 알려진 데는 언론의 공이 크다고 했다. 군부 독재 시대에 청춘을 보내며 언론 불신의 벽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던 그였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졌고, 언론의 힘과 기자들의 역동성을 봤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왜 진작에 아버지의 일을 세상에 알리지 않았느냐고 물어요. 전 그동안 언론에 대한 불신이 컸어요. 아버지가 1980년 광주의 일을 저에게 자세하게 이야기했지만, 당시 TV와 신문에선 아버지의 이야기와는 다른 가짜뉴스만 난무했어요. 그런 시대를 거쳐온 제가 어떻게 아버지의 일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겠어요? 그런데 세상이 바뀌고 언론에 의해, 기자들에 의해 아버지의 일이 세상에 알려지게 됐네요. 놀라울 뿐이죠"

영화를 본 관객들이 우려했듯 김사복 씨가 살아생전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한 적이 없었느냐는 질문도 던졌다. 그는 "아버지의 성격상 있었다 하더라도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설령 조사를 받았다 하더라도 가족들이 걱정하실까 봐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러나 조사를 받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은 독일TV 방송 ARD-NDR의 일본 특파원이었던 페터 크레입스가 자신은 중앙정보부에 잘 알려진 인물이라는 것을 고려해 힌츠페터와 루머(음향기사) 씨를 선교사로 위장해 서울에 입국시켰고, 광주에도 보냈거든요. 아버지 역시 그 일행으로 광주에 내려갔기 때문에 감시망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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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필 씨는 아버지의 일이 세상이 알려지는데 일조한 영화 제작진과 감독, 배우에게도 고마움을 전했다.

"'더 램프'의 박은경 대표님이 김사복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고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송강호 씨, 이념이나 정치색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마땅히 한 저의 아버지의 모습을 너무나 사실적으로 연기해주셔서 큰 감명을 받았어요. 또한 영화를 통해 저희 아버지와 힌츠페터 씨의 소명와 소신을 감동적으로 전달해주신 장훈 감독님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김승필 씨는 아버지의 존재가 알려진 만큼 고인이 생전에 하신 일을 기리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지난 5일 광주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을 만나 오는 10월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리는 위르겐 힌츠페터 추모전에 김사복 씨의 기록물을 함께 게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리고 가장 큰 염원인 5.18 옛 묘역으로 아버지의 유해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도 관계자와 논의를 했다. 김승필 씨는 "아버지의 유해는 현재 성당 묘에 안치돼있어요. 가능하다면 위르겐 힌츠페터 씨의 추모비가 있는 광주 망월동 5.18 옛 묘역으로 옮기고 싶습니다"라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광주 광역시청 인권평화협력관실 5.18 시설팀은 "김사복 씨가 위르겐 힌츠페터를 광주로 모셔왔고, 5.18의 진실을 알리는데 기여한 분이라면 5.18 옛 묘역에 안장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는 견해를 전했다.

5.18 옛 묘역 안장 여부는 인권평화협력관, 5.18 민주유공자유족회,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 구속부상자회, 5.18 기념재단, 추모연대, 진보연대, 광주여성단체연합회, 광주시민사회단체협의회장 9명의 심의 절차를 걸쳐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일련의 절차가 남아있다고 전하자 그는 "즐거운 고생입니다"라고 기쁜 목소리로 말했다.  
   

(SBS funE 김지혜 기자/사진=김승필 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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