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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함몰지진 보고 받은 기상청 "단순한 메일인 줄 알았다"

[취재파일] 함몰지진 보고 받은 기상청 "단순한 메일인 줄 알았다"
북한이 핵실험을 자행한 뒤 우리의 눈과 귀는 기상청에 쏠렸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북한의 핵실험 정보를 직접 확인할 방법은 기상청의 지진파 분석이 거의 유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분석 초기부터 논란이 많았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핵실험 규모를 6.3이라고 발표했는데 우리 기상청은 왜 규모 5.7로 낮게 봤는지 의아하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함몰 지진' 분석능력까지 논란이 됐습니다. 함몰 지진은 동굴이나 광산, 갱도가 무너지거나 산사태가 발생하면서 일어나는 지진입니다. 핵실험 직후 중국은 2차로 함몰지진이 발생했다는 분석결과를 내놨는데, 우리 기상청은 한국에서 관측이 안 됐다고 밝혔습니다. 함몰 지진의 관측은 군사적인 목적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만약 핵실험 여파로 갱도나 산자락이 무너졌다면 그 사이로 방사능 물질이 새어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국민 안전과도 연결됩니다.

결국, 함몰 추정 지진파는 국내 지진계에서도 잡힌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기상청의 초기 분석 능력에 불신이 커져가는 대목입니다.

● 멀어서 관측이 안 된다? 입장 번복

기상청은 핵실험 당일 함몰지진이 일어난 게 맞냐는 질문에 한국 관측소는 멀어서 관측이 안 된다고 답변했습니다. 함몰지진은 가까운 위치의 지진계에서만 파악이 될 수 있는데, 기상청 관측기는 풍계리로부터 400~600km나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진파를 고주파와 저주파 대역으로 나눠서 분석해보니 우리 지진 관측기에도 함몰 추정 지진파가 잡혔습니다. 결국 기상청은 핵실험 이틀이 지나서야 규모 4.4의 지진파가 추가로 관측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관측이 어렵다는 설명은 사실이 아니었던 겁니다.

● 보고 받고도 '모르쇠'

SBS는 지질자원연구원이 핵실험 당일 기상청에 '붕괴에 의한 지진'이 있었다고 보고한 사실을 확인해 보도했습니다. 핵실험 당일 저녁 6시 35분 지질자원연구원은 메일을 통해 기상청에 보고합니다.

“붕괴지진으로 보이는 이벤트가 실험 후 약 8분경에 관측되기도 하였음” - 지질자원연구원

이런 사실을 보고 받고도 왜 하루가 넘도록 발표가 안 되는지 지적하자 기상청은 해명 자료를 내놓습니다.
함몰지진 관련 기상청 해명 보도
기상청은 해명자료에서 지질자원연구원의 보고 메일을 '단순한 메일', '이미 아는 사실' 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유관기관의 보고를 단순하다고 여기는 게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붕괴지진으로 추정되는 현상이 관측됐다는 게 이미 아는 사실이라면 왜 발표를 안 한 것인지 납득이 안갑니다.

심지어 핵실험 다음날 지질자원연구원이 함몰지진 위치와 규모를 기상청에 전달했는데, 과학적인 분석자료가 첨부되지 않았다며 이마저 판단을 미뤘습니다. 결국 중국보다는 이틀, 미국보다는 하루나 늦게 국민들은 정부의 분석을 전달받을 수 있었습니다.

● 질문 쏟아져도 9시간 뒤에야 분석 시작

핵실험 당일 낮 3시 기상청에서 기자들은 함몰지진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함몰지진이 발생했다는 중국의 관측결과가 이미 널리 퍼졌기 때문입니다. 갱도가 무너질 정도로 위력이 강했던 것인지, 방사능 누출 위험은 없는지 궁금증이 많았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한국에선 측정이 어렵다는 대답 뿐이었습니다. 결국 중국의 분석 결과만 국민들에게 전달됐습니다.

이렇게 궁금증이 많았는데도 기상청은 당일 밤 10시에야 함몰지진에 대해 분석을 시작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핵실험 이후 9시간 반이 지났고 기자들의 질의가 쏟아진 뒤 6시간이나 지난 시점입니다. 중국의 지진 관측기관의 과학적 분석 결과이고 그것이 의미가 있어 보인다면, 즉시 관련 데이터를 확인하고 결과를 국방부 등에 알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분석은 시작부터 늦어진 겁니다.
갱도 함몰
● 세컨더리 이펙트, 우리만 몰랐나?

핵실험 이후에 땅이 꺼지는 등의 현상은 구소련과 미국의 핵실험 때부터 여러차례 보고 됐던 내용입니다. 2차 영향(Secondary effect)라고 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함몰 지진입니다. 중국 같은 경우에는 함몰지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주파 분석이 필요한 것인데 지진이 일어나고 24분 만에 발표했습니다. 준비가 돼 있었다는 것입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함몰지진은 별다른 분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저주파 대역의 에너지만 보면 파악할 수 있고 시스템만 갖춰져 있다면 어렵지 않게 관측이 가능하다"고 설명했습니다. 학계에서는 잘 알려진 현상이고, 분석을 위한 사전 대비가 필요했는데 기상청은 준비가 안 됐던 것입니다.

● 음파까지 놓쳤다.

기상청은 함몰지진의 지진파 신호가 너무 미약해 관측이 어려웠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런데 기상청은 강원도 양구에서 2차 지진에 의한 음파 또한 관측했다고 밝혔습니다. 함몰 지진의 관측은 지진파 분석 말고도 음파 분석으로도 가능했던 것입니다. 결국 기상청은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강원도 양구에서 6차 핵실험의 음파가 도착하고 8분 30초 뒤에 또 한 번 음파가 탐지됐다고 밝혔습니다. 8분 30초 뒤의 지진파와 음파만 제대로 살펴봤다면 첫날부터 함몰지진을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지진파와 음파 모두 놓친 겁니다.

물론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함몰 지진 개념이 워낙 생소하고, 이번 함몰도 실제 함몰인지 아니면 다른 현상인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한국과 미국, 중국의 관측 결과도 차이가 나서 추가 분석은 필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기상청의 대응은 늦었고, 문제 지적에 대처하는 방법도 미숙했습니다. 기상청은 왜 분석을 못 했는지 구구절절히 해명에 나설 것이 아니라 앞으로는 유사한 사례에 어떻게 대처할지 대책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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