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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럭비 '귀화 선수 1호' 김진이 꿈꾸는 한국 럭비의 미래

[취재파일] 럭비 '귀화 선수 1호' 김진이 꿈꾸는 한국 럭비의 미래
럭비 대표팀 귀화 선수 1호 안드레, 우리 이름 김진 선수에게 어제(30일)는 뜻 깊은 날이었습니다. 7인제 럭비 아시아시리즈에 참가하기 위해 홍콩으로 가는 길, 김진은 생애 처음으로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나섰습니다. 이달 초 법무부의 특별 귀화 허가가 떨어진 뒤 막 나온 따끈따끈한 여권이었습니다. 김진 선수는 "정말 오랫동안 기다린 날이다. 이제 진짜 한국인이 된 기분이다"며 웃었습니다.
30일 홍콩으로 출국한 럭비 국가대표 김진이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웃고 있다.
● 안드레 진 코퀴야드, 김진이 되기까지

196cm에 105kg, 건장한 체격에 갈색 머리칼과 푸른 눈동자.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김진은 우리 대표팀에서 한눈에 띄는 선수입니다.

1991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과 중국, 미국과 캐나다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어린 시절 꿈은 대한민국 축구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때 2002 월드컵이 열렸거든요. 그때 한국 축구와 문화에 완전히 빠졌어요. 그때부터 제 꿈은 한국 국가대표 선수가 되는 것이었어요."

태극전사 꿈을 좇던 고교 시절 캐나다에서 처음 럭비를 접했습니다. 워낙 신체조건이 좋아 금세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2008년 17세 이하 미국 대표팀에 뽑혀 활약했습니다. 미국 명문 캘리포니아주립대(UC버클리)에 입학해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며 럭비는 취미가 됐습니다.

그렇게 멀어지는 듯 했던 꿈은 의외의 장소에서 다시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2014년 대학 졸업 뒤 중국 상하이의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안드레가 동호인들과 럭비하는 모습을 본 홍콩 클럽 관계자들이 귀화 제의를 한 겁니다.

"홍콩에서 일자리와 집 등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3년을 지내면 홍콩 국적을 얻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홍콩 대표 선수가 될 수 있다면 한국 대표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됐죠."

1991년 서울에서 태어난 안드레(김진)는 고교 시절 럭비를 접한 뒤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어린 시절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부푼 마음에 김진은 바로 대한럭비협회를 찾아 직접 귀화 가능성을 물었다고 합니다. 결국 안드레는 잘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어쩌면 무모한 결정이었습니다. 안정된 일자리와 넉넉한 보수를 포기해야 했으니까요. 당시 국가대표팀을 지도하던 서천오 상무 감독의 배려로 국군체육부대, 상무에 플레잉 코치로 입단할 수 있었지만 팀 특성상 보수는 받을 수 없었습니다.

"조금도 고민은 되지 않았어요. 돈은 나중에도 벌 수 있지만 한국 대표 럭비 선수는 그때 결심하지 않으면 될 수 없었으니까요."

이 과정에서 일본팀의 영입 제안과 귀화 요청도 있었습니다. 일본은 현재 아시아 최강국으로 2019 럭비 월드컵(15인제)을 유치하며 전력 강화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일본이나 홍콩은 생각해 본적도 없어요. 저는 태어났을 때부터 한국 사람이었는데요. 당연히 문화적으로 일본 귀화는 절대 생각도 안 했죠."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지 2년 만에 우수 선수로서 특별 귀화 허가를 받은 겁니다. 
지난 18일 전국 대회가 끝난 뒤 어머니 김동수씨에게 귀화 허가 통지서를 받고 기뻐하는 모자

● '한국'과 '럭비'가 좋아서…그리고 '한국 럭비'를 위해서

김진 선수와 대화를 하다보면 이 선수가 불과 지난달까지 외국인이었다는 사실을 금방 잊게 됩니다. 어머니 김동수씨의 영향으로 우리말을 조금도 막힘없이 구사하고, 칼국수와 순댓국을 즐겨 먹는 진짜 한국인입니다.
김진 식사 모습
탁월한 신체 조건도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겁니다. 1980년대 세계적인 모델이었던 김동수씨는 지금도 한국모델학회장으로서 국내외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귀화 결정을 가장 자랑스러워한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진이가 운동을 하기 전까지는 럭비가 어떤 스포츠인지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중국에서 회사를 잘 다니던 아이가 대한민국 럭비 국가대표 선수가 된다며 귀화한다고 하니, 처음엔 놀랍기만 했죠. 이렇게 특별귀화가 되고 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기쁩니다."

한국인 모델로는 처음으로 유럽 무대에 서며 '국가대표 모델'이 되었던 때와 럭비 국가대표 선수의 어머니가 된 지금, 언제가 더 기쁜지 물었습니다.

"진이 엄마이기도 하지만 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모델로서 그동안 무척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아들이 국가대표라는 것, 말 그대로 모국(母國)을 위해서 뛴다는 것은 엄청난 영광이잖아요. 굉장히 커다란 의미가 있습니다."

1980년대 세계적인 모델이었던 김동수씨가 아들 김진을 응원하고 있다.
김진 선수가 태극전사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어릴적 꿈을 이루기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누구보다 한국 럭비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인 목표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한국 럭비의 발전입니다. 이렇게 재미있는 럭비가 한국에서 인기 스포츠로 성장하는 게 저의 가장 큰 목표입니다."

- 럭비 매력이 뭔가요?

"럭비 해 본 사람들은 다 알겁니다. 제 친구들은 모두 선수로 또는 취미로 럭비를 합니다. 무엇보다 럭비 정신이 좋습니다. 럭비 경기에선 심판이나 상대에게 항의하는 모습을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격렬히 싸워도 경기가 끝난 뒤엔 하나가 되는 '노 사이드(no side) 정신'도 있죠."

- 그렇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동안 김진 선수가 경험했던 환경과 비교하면 많이 열악할 텐데요.

"지금은 그렇지만 중요한 건 미래죠. 저는 럭비에 한국 사람이 좋아할 요소는 다 있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터프하고 빠르죠. 그 안에 축구의 재미, 또 씨름의 재미가 녹아있어요. 홍보만 잘 되면 큰 인기를 끌 거라고 믿습니다."

- 어떻게 알려야 할까요.

"일단은 저와 같은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 좋은 경기를 보여주는 게 먼저겠죠. 하지만 당장 시작할 수 노력도 있습니다.“

- 그게 뭐죠?

"소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해야 해요. 한국 럭비 선수 중에 정말 몸도 멋지고, 얼굴도 매력적인 선수가 많아요. 또 박진감이 넘치는 경기 모습들을 보기좋게 편집해서 소셜 미디어에 끊임없이 노출을 시켜야죠."

- 왜 소셜미디어죠?

"일단 스마트폰에 익숙한 10대~20대를 사로잡는 게 중요해요. 그들에게 '럭비는 정말 멋진 운동이구나'라는 생각을 심어줘야 합니다. 청소년이 많이 하다보면  지금 저를 취재하시는 SBS같은 전통 미디어가 관심을 가질 겁니다. 학부모님들도 설득해야죠. 한국 부모님들은 아무래도 대학 진학 문제에 민감하잖아요. 럭비를 잘하면 고려대와 연세대 같은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당장 실업팀 수도 적고, 선수로서 미래가 불투명한 부분도 있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일본 럭비가 요즘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어서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일본 프로 리그에서 뛰는 한국 선수 중엔 2억 5000만 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선수도 있어요. 국내 대학 진학에 실패하더라도 일본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고, 일본 대학에서 럭비를 하면 취업하기도 무척 유리해요."

● 9월 1일 홍콩에서 아시아시리즈 개막
럭비 대표팀은 13년 만에 7인제 월드컵 본선 진출을 노린다.
김진 선수는 전술과 전략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15인제보다는 7인제 럭비가 한국 선수들에 더 적합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체격이 작고, 전술 수행능력이 떨어져도 스피드로 단점을 보완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아시안게임에선 2006년 도하 대회 이후 7인제 경기만 열립니다. 올림픽에서도 지난해 리우 대회에서 92년 만에 정식종목으로 부활했는데 15인제가 아닌 7인제입니다.

김진이 포함된 7인제 럭비 대표팀은 세대교체 중입니다. 홍콩(9월 1~2일), 한국(9월 23~24일), 스리랑카(10월 13~14일)로 이어지는 아시아시리즈는 내년 미국에서 열리는 7인제 럭비 월드컵 예선전입니다.

1993년부터 4차례 연속 본선 무대를 밟았던 대표팀은 2009년에 이어 2013년에도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습니다. 13년 만에 본선 무대를 밟기 위해서는 이번 아시아 시리즈 참가국 8개 팀 가운데 2위 안에 들어야 합니다. 럭비 대표팀의 귀화 선수 1호, 김진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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