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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활짝 열리는 북극항로…'축복'이 누군가에게는 '재앙'이 된다면…

[취재파일] 활짝 열리는 북극항로…'축복'이 누군가에게는 '재앙'이 된다면…
▲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 (사진=대우조선해양 제공)

지난 8월 17일 충남 보령에 액화천연가스(LNG) 수송선인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Christophe de Margerie)가 도착했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는 지난달(7월) 29일 노르웨이를 출발했다. 출발 19일 만에 보령에 도착한 것이다.

유럽에서 한반도로 오는 선박은 보통 이집트 수에즈 운하를 지나온다. 거리는 2만km를 넘어서고 소요 시간도 보통 한 달 가까이 걸린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가 19일 만에 보령에 도착한 것은 전통적인 항로인 수에즈 운하를 통과한 것이 아니라 최단 거리인 러시아 북쪽 북극해, 북극 항로를 지나왔기에 가능했다. 북극 항로를 통과할 경우 거리는 1만 5천km 이하로 줄어들고 소요 시간도 30% 정도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연히 비용도 줄어든다. 특히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는 별도 쇄빙선의 도움을 받지 않고 자체적으로 갖춘 쇄빙 시설을 이용해 북극 항로를 통과한 첫 사례라고 한다.

대형 상선이 북극 항로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10년쯤부터다. 기후변화로 북극이 점점 따뜻해지면서 해빙(sea ice)이 빠르게 녹아내려 여름철과 가을철에 북극 항로가 활짝 열리는 것이다.

올해도 북극 항로는 이미 활짝 열려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이 관측한 북극해 해빙 분포를 보면 8월 27일 현재 그린란드나 캐나다 북쪽 해역은 육지와 녹지 않은 해빙이 붙어 있지만 러시아 북쪽 해역에는 해빙이 모두 녹은 것을 볼 수 있다(그림 참조). 배가 노르웨이나 덴마크, 영국에서 출발해 러시아 북쪽 해역을 통과해 동아시아 한반도까지 오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별도의 쇄빙선 없이 선박이 북극 항로를 지날 수 있는 것이다.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호도 해빙이 녹아 사라진 러시아 북쪽 해역을 지나 한반도까지 온 것이다.
북극 해빙 분포 (자료:NASA)
NASA 관측 자료에 따르면 8월 27일 현재 북극의 해빙 면적은 520만㎢다. 1981~2010년 같은 시기 평균 해빙 면적과 비교하면 80만 제곱킬로미터 정도 작다. 8월 27일 같은 날짜를 비교해도 해빙 면적이 가장 넓었던 지난 1996년(붉은색 굵은 실선)의 800만㎢와 비교하면 280만㎢나 작다. 관측 사상 해빙이 가장 많이 녹아내렸던 지난 2012년(주황색 가는 실선)의 380만㎢보다는 140만㎢가 넓은 상태다. 올해 북극 해빙이 관측 사상 가장 많이 녹은 것은 아니지만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올해 역시 북극 해빙이 빠르게 많이 녹아내린 것이다. 해빙이 빠르고 크게 녹아내리면서 지난 8월 17일 러시아 핵 쇄빙선(50 let pobedy)은 역사상 가장 짧은 시간인 79시간 만에 북극점에 도달했다고 한다. 북극점에 도달하기까지 그만큼 깰 얼음이 적었던 것이다.

문제는 지구온난화가 진행될수록 북극 해빙은 점점 더 빠르게 그리고 더 많이 녹아내린다는 것이다. 미국 워싱턴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극지과학센터(Polar Science Center)의 북극 해빙 부피를 보면 매년 북극 해빙 부피가 오르락내리락 하기는 하지만 평균적으로 10년에 3,100㎦씩 감소하고 있다(그림 참조). 그림은 지난 1979년부터 2016년까지의 평균에 대한 편차를 보인 것이다.
연도별 북극 해빙 부피 편차 (자료: Polar Science Center)
지금과 같은 추세로 북극 해빙이 녹아내린다면 북극 항로는 점점 더 일찍 열리고 점점 더 오랫동안 열려 있을 것이다. 별도의 쇄빙선 없이도 북극 항로를 통과하는 배가 점점 더 늘어난다는 뜻이다. 유럽에서 출발한 배가 북극 항로를 통과해 동아시아 지역으로 오거나 반대로 동아시아 지역을 출발한 배가 북극 항로를 지나 유럽으로 가는 것은 한편으로는 지구온난화의 축복임에 틀림없다. 운송 시간도 짧아지고 비용도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러시아는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2020년까지 북극해를 이용한 화물 수송이 지금보다 10배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자국의 화물 운송도 있겠지만 외국 선박이 러시아 영해나 내수 등 북극해를 통과할 때 통행료나 쇄빙선 서비스, 통과 선박에 대한 기술적 요건이나 운항 절차, 통과 선박 승무원의 얼음이 있는 바다 항해 경험 여부, 선박의 환경오염 가능성 등 각종 이유를 내세워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극 항로가 더 일찍 열리고 더 오랫동안 열려 있을수록, 북극해를 통과하는 선박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지구촌의 기후변화 몸살은 더 심해진다. 여름철 폭염은 더 지독해지고 겨울철 북극 한파 또한 더 강해진다. 기록적인 집중호우 또한 늘어나고 미국 휴스턴을 강타한 '하비(Harvey)'와 같은 괴물 태풍 또한 늘어난다.

북극 항로의 혜택을 보는 국가는 유럽과 러시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 국가지만 기후변화 재앙은 지구촌 전체에서 나타난다. 특히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운 저개발국과 어려운 사람에게 기후변화 재앙은 더 크게 다가온다. '축복'과 '재앙'의 뿌리는 같다. 모두 기후변화가 원인이다. 기후변화 축복이 커지면 커질수록 기후변화 재앙 또한 급격하게 커진다. 축복이 누군가에게는 재앙이 된다면 우리는 어느 쪽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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