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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 사는 30대 맞벌이…우리가 뭘 잘못한 거죠?"

8.2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한 달이 다 돼 갑니다. 부동산 대책 후 상황을 취재하며 많은 ‘한숨’을 목격했습니다. 의외로, 많은 언론들이 걱정(?)했던 강남권 주택 보유자, 다주택자보다 비(非)강남 지역에서 전월세를 사는 30대 맞벌이 부부의 한숨이 더 깊었다는 겁니다.

"내 집 마련의 꿈이 더 멀어졌다", 공통된 이야기였습니다. 1주택자도 있었습니다. 서울 변두리 지역에, 지어진지 20~30년 넘은 오래된 아파트를 갖고 있는 경우였습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좀 더 나은 집에서 살고 싶은 게 투기인가” 호소했습니다. 기사에는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당사자들의 관점으로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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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 더 어려워졌다. 

결혼한 지 1년이 된 30대 중반의 부부입니다. 둘 다 사회생활 5~6년차, 연봉을 합치면 약 1억 원 정도입니다. 적지 않은 수입입니다. 하지만 부모님 도움 없이 서울에서 집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직장과 가까운 지역에서 전셋집을 구하려다보니 가격도 문제지만 매물 자체가 없었습니다. 결국 보증금 1억2천만 원, 월세 60만원 인 주거용 오피스텔에 신혼집을 구했습니다.

5년 전 취업하며 만들어둔 청약통장 한 개. 무주택 기간은 만 30세가 된 시점으로 계산하면 3년. 자녀는 없습니다. 청약 가점을 계산해보니 고작 15점. 당첨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알아봤습니다. 1순위가 되려면 자녀는 필수. 주말 출근이 다반사에, 두 사람 모두 지방 출신이라 부모님께 육아를 부탁할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출산은 먼 이야기입니다. 결국 청약은 당분간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 인근 지역, 비슷한 크기의 아파트를 살펴봤습니다. 가격이 5억2천만 원입니다. 현재 기준으로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은 2억 원 정도. LTV 규제가 강화돼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대출액은 1억 원 가까이 줄었습니다. 이 집을 사기 위해선 현재 보증금 1억2천만 원을 제외하고도 2억 원이 필요합니다. 이 2억 원은 어디서 구해야 할까요.

결국 또다시 ‘월세’ 를 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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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낡은 동네"를 떠나기가 더 어려워졌다.

서울 변두리 지역에 살고 있는 30대 부부입니다. 결혼한 지 3년, 두 돌 된 딸이 있습니다. 결혼 당시 지어진지 30년 된 아파트를 구입해 2년 쯤 살다가 지금은 15년 된 아파트로 옮겼습니다.

청약도 되는대로 넣어봤지만 모두 떨어졌습니다. 8.2대책 발표 직후 막차를 탄단 심정으로 서대문의 한 아파트 청약을 넣었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전용면적 85제곱미터 이하는 모두 청약가점제로 분양한다는데, 이젠 더 어려워지겠죠. 아내가 자주하는 농담이 있습니다. 이른바 ‘서울 아파트 등급론’.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낡은 동네-낡은 아파트< 낡은 동네-괜찮은 아파트< 괜찮은 동네-낡은 아파트< 괜찮은 동네-괜찮은 아파트’<<< '청약'

우리 가족은 언제까지 낡은 아파트에 살아야 할까요. 꼭 강남에 있는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서울에 지어지는 새 아파트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은 마음, 이게 그렇게 큰 욕심인지 모르겠습니다. 경비원이 아파트 한 동당 한 명 씩은 있는 곳에서, 이왕이면 단지 안에 놀이터와 어린이집도 있는 곳에서 살고 싶은 욕심도 투기인가요.
갭투자, 다주택자, 부동산 정책
● "결국 '갭 투자'나 하라는 이야기 아닌가"

이런 불만도 있었습니다. “8.2대책은 결국 갭 투자나 하라는 이야기 아닌가.”

'갭 투자'는 전세를 끼고 부동산을 매입해 시세 차익을 노리는 부동산 거래를 의미합니다. 전세 3억 원, 매매 4억 원짜리 집을 사는데 1억 원만 있으면 된다는 뜻입니다.

주택구입 비용치고는 소액인데다가 대출을 받는다 하더라도 총부채상환비율(LTV) 같은 규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8.2대책은 다주택자가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면 양도세중과세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습니다. 재산세는 물론, 취득세도 신규주택일 경우 감면됩니다. 만약 현금 1억 원을 가진 직장인이 있다면 서울에서 대출 없이 아파트를 구입하긴 불가능하지만, 갭 투자는 할 수 있단 이야깁니다. 

“부모님이 발 빠르게 움직인 한 친구는 이미 강동구에 전세를 낀 재건축 예정 주택을 샀더라고요. 그게 반년도 안돼서 7천만 원이 올랐대요. 가만히 앉아서 7천만 원이 생긴 거죠. 그런 게 투기 아닌가요. 그런데 이번 대책으로 그 투기가 더 쉬워졌고 당장 안정되게 살 집을 구해야 하는 저 같은 사람은 방법이 사라졌어요. 이게 현실입니다.” (전세 만기 앞두고 있는 39세 기혼 남성)

● '부동산 안정'…국민과 정부의 '동상이몽'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취임사에서 “아파트는 돈이 아니라 집이다. 돈을 위해 서민들과 실수요자들이 집을 갖지 못하도록 주택 시장을 어지럽히는 일이 더 이상 생겨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8.2 대책발표 후 강남 재건축 시장을 중심으로 성행하던 투기꾼들은 잠잠해졌고, 부동산 가격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 가격이 이만큼이나 떨어졌다’, ‘서울 전체 아파트 평균 가격이 이만큼이나 내려갔다’는 설명으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됐다고 평가할 수 있을까요?

취재 중 만난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부동산 시장 안정은 실수요자들, 특히 새롭게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층들이 자기 집 마련이 쉬워지는 겁니다. 그런데 정부가 생각하는 부동산 시장 안정은 어느 정도 수준에서 가격이 더 뛰지 않거나, 청약 열풍이 어느 정도 수준까지 떨어지거나 하는 거죠. 국민이 생각하는 안정과 정부가 생각하는 안정에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 갭을 메우는 것이 정부 입장에선 쉽지 않을 겁니다.”

다음 달, 정부는 주거복지로드맵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6.19 대책, 8.2대책에 이어 문재인 정부가 내놓는 세 번째 부동산 대책이 될 걸로 보입니다. 고강도 규제와 더불어 실수요자를 위한 공급책도 포함시킨다고 예고했습니다. 이 로드맵이 8.2대책 후 의도치 않게 ‘피해자’라고 느낀 일부 실수요자들을 달랠 수 있을지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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