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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공범자들' 최승호가 밝힌 비화 "권력의 부역자, 기록해야…"

[인터뷰] '공범자들' 최승호가 밝힌 비화 "권력의 부역자, 기록해야…"
영화 '공범자들'은 공영방송 흑역사를 담은 영화다. 국내 3대 방송사로 불리며 역사와 권위를 자랑해온 MBC와 KBS에게 '이명박근혜'로 이어진 지난 정권 10년은 그야말로 악화일로(惡化一路)였다. 

MBC,KBS 구성원에게 이 영화는 '애증의 역사'로 다가올 것이다. 자부심과 열정을 가지고 몸담았던 일터가 부당 권력에 점령당하고 종속된 모습을 봐야 했다. 그리고 회사를 상대로 투쟁했고,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대항했다. 그렇게 10년을 싸웠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MBC PD 출신인 최승호 감독은 '공범자들'을 만들어 그들의 싸움을 우리의 싸움으로 공론화했다. 영화는 공영방송이 어떻게 감시와 비판의 기능을 잃었고, 기자들은 왜 질문하지 못하는지를 전한다. '그들은 스스로 몰락했다'고 생각한 대다수의 관객은 영화를 보며 분노하고 울었다.  

'공범자들'은 개봉 15일 만에 전국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다큐멘터리 사상 최고 흥행작 '님아, 그강을 건너지 마오'(누적 관객 수 480만 명)와 같은 흥행세다.

최승호 감독과의 인터뷰는 서울 세종대로 골목에 자리한 뉴스타파 본사에서 이뤄졌다. 인터뷰 시작 전까지도 최 감독은 후배와 당일 저녁 진행될 GV와 관련된 이야기로 여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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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전작 '자백'(2016)보다 흥행세가 좋다.

A. 스코어라는 것에 만족은 없다. 전작 '자백'에 비해 서둘러서 만든 영화였고 홍보 기간도 충분치 않았다. 그런데 개봉 전 출연자(MBC 전·현직 임원 5명)들이 상영금지 가처분 소송으로 홍보를 해준 덕분에 생각보다 (스코어가)잘 나온 것 같다. 그러나 이 정도에 만족할 수는 없다. 더 좋아질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Q. '자백'을 만든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차기작을 준비한 시간으로는 짧지 않았나 싶다. 다소 급박하게 영화를 준비한 이유는?

A. '자백' 개봉 10일 후 JTBC의 '태블릿 PC' 보도가 나왔다. 그리고 최순실 게이트, 탄핵국면, 조기 대선이 이어졌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세상은 바뀔 텐데 (경영진이 그대로 남아있는) MBC와 KBS만 '동터의 왕국'으로 남겠다 싶더라. 정부가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거면 모르겠는데 공영방송은 임기제라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 않나. 시민들은 공영방송이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다가 정권 바꾸니 도와달라고 하는 줄 알고 계실 것 같아서 그간의 진실을 알리는 차원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다.

Q. 약 10년 전부터 현재까지 MBC와 KBS의 몰락의 역사를 연대기별로 볼 수 있는 영상이 풍성하게 담겼다. 이 자료들은 각사의 노조를 통해 받은 것인가?

A. KBS, MBC 노조를 통해서 받은 것도 있고, '미디어 몽구'처럼 독자적으로 취재했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필름을 받은 것도 있다. 나머지는 두 방송사의 영상 자료를 받아서 사용했다. 뉴스 영상의 경우 KBS는 팔았는데, MBC는 안 팔더라. 이 영화는 공적인 것이고 MBC가 당시 이런 뉴스를 했다고 인용한 것이기에 문제가 안 될 것 같아 홈페이지 영상을 받아다 썼다. 나머지는 공범자들을 찾아다니면서 현재를 기록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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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PD수첩' 총회 모습을 찍은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내부용으로 찍은 그 영상을 영화에 쓰게 될 줄은 몰랐을 텐데. 

A. 'PD 수첩'이 속한 시사 교양국은 당시만 하더라도 민주적인 분위기였다. 회사의 결정에 PD들이 정당한 이유를 알려주기를 요구하면 PD 총회에서 설명해야 했다. 윤길용 시사교양 국장이 나를 포함한 6명의 PD를 방출했다. 그 직후 PD 총회가 열린 상황을 찍은 것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국장이 '찍지 마라'하는 말을 하기 어려운 민주적인 분위기였다. 물론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이후에는 그런 자리가 거의 없었을 것이다. 

Q. 짧은 기간 안에 영화를 준비하는 게 여간 촉박한 일이 아니었을 것 같다. 제작 기간은 어느 정도 걸렸고 어떤 과정을 거쳤나? 

A. 지난해 12월부터 시작해서 대략 6개월 정도 걸린 것 같다. 모든 일을 순차적으로 한 게 아니라 자료를 모으고, 당시 발생한 일들을 찍고,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를 구성해나갔다. 영화 제작 기간으로 치면 짧은 기간인데 방송 다큐멘터리로 치면 그렇게 짧은 기간은 아니다. 몇십 년간 해오던 일이니 익숙하다. 다만 방송 다큐는 길어봐야 50분 내외인데 영화는 1시간 40분가량이다. 스토리텔링 방식도 구성도 다를 수밖에 없다. 다행인 건 윤석민이라는 훌륭한 편집자가 있었다. 머리를 맞대 구성하고 편집하면서 완성된 파트를 확인해나갔다. 

Q. '자백'과 마찬가지로 챕터식(점령-반격-기레기) 구성을 택했다.

A. 너무 긴 시간이고,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구분을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시기별 특징을 관객들이 받아들이기 편한 상태로 나누되 쉬어가면서 볼 수 있도록 챕터를 나눴다. 각 장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 사건의 성격에 따라 나눴다.

Q. 웃으면 안되는 상황인데 계속해서 웃음이 나온다. '공범자들'엔 역설의 웃음이 주는 묘미가 있다.

A. 일단 웃음이 나오는 것은 질문을 받는 대상자들이 너무 웃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상식적으로 판단하는데 그분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행동을 하지 않나. 게다가 공영방송 사장 출신이라는 사람들이... 어쩌구니가 없다. 그런데 MBC 사람들은 영화를 봐도 잘 웃지 못한다. 우리가 저렇게 웃긴 사람들한테 당했다는 생각에... 괴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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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오프닝에서 나온 "잘들 사네. 잘들 살아"라는 말도 그런 심리에서 나온 말일 것 같다.

A. 그 장면은 쓰려고 했던 것 아닌데 편집을 맡은 후배(윤석민)가 그 영상을 발견했고, 프롤로그에 넣자고 제안을 했다.

Q. 그렇다면 애초에 오프닝은 어떻게 구성하려고 계획했나?

A. 이명박 전 대통령의 취임식 장면부터 시작하려고 했다. 여러 장면을 짜깁기해서 몽타쥬처럼 만드는 시도도 해봤다. 그러다가 지금 버전을 가장 마지막에 시도했는데 그 의미가 관객들에게 잘 통한 것 같다.

Q. 의혹 제기부터 취재, 새로운 사실 보도 등으로 이어진 '자백'의 완결된 구성과 달리 '공범자들'은 의혹에 대한 취재는 약하다.

A.'MB가 김재철을 불러서 조인트를 깠다'는 이야기는 파다했지만, 우리가 그걸 찍지는 못했다. 우리가 본건 그 이후 김재철 사장의 모습이었다. 지시를 한 권력만큼이나 언론 내부에서 부역자 역할을 한 사람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부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역사에 기록되고, 단죄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공범자들'의 교훈이다.

Q. 그런 목적과 의도가 확고했기 때문에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을 만나러 다녔으리라고 본다. 공범자들의 침묵과 회피, 동문서답이 주는 영화적 효과도 확실하다.  

A. 대답하지 않을 거란 건 알았다. 똑같이 말을 안 해도 어떤 식으로 침묵하고 회피하느냐의 차이는 영상만 봐도 느낄 수 있다. 그 인터뷰를 두고 그들은 초상권 침해라고 주장했고,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는데 법원이 합당한 판결을 내렸다. '공영방송을 이끈 사람이기에 공인이고, 답변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결정문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지금쯤이면 그들도(MBC 전·현직 임원들)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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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인터뷰에 반응하는 모습이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취재 현장의 후기를 전한다면?

A. 부정의 태도와 말도 수준이 달랐다. KBS 길환영 전 사장의 경우 도망을 가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진실을 왜곡하는 말을 하는지 기가 막힐 정도였다. 비상구 추격신을 만들어준 안광한 MBC 전 사장은 처참하더라. 도망가는 그도, 따라가는 나도 비참함을 느꼈으리라 본다. 그들이 조금이라도 도덕적인 자신감과 자존감이 있었다면 그렇게 행동했을까 싶다.

Q. 영화의 신스틸러는 단연 MB다. 취재 후기가 궁금하다.

A. 다른 건 다 찍어놓고 가장 마지막으로 남겨둔 만남이었다. 반드시 해야 하는 취재라고 생각했다. 일정을 파악하고 일주일 정도 잠복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찾아간 첫날 바로 만났다. 부드러우신 분이다. 조금이라도 거리낌이 있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텐데...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하지 않나. 그게 본성과 일치하는 경지에 오른 분이다.

Q. MB와 남다른 인연이 있는 걸로 안다. 'PD수첩-4대강 수심 6m의 비밀' 편을 방송한 이후 해고됐는데?

A. 2010년의 일이다. 방송 전 국토해양부에서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했는데 기각됐다. 법원도 허락한 걸 김재철 사장이 불방시켰다. 시민들이 항의하고 난리가 났다. 회사에서도 겁이 났는지 일주일 후 방송을 했다. 그리고 몇달 후 'PD수첩'에서 쫓겨나 프로그램 관리 부서로 옮겨졌다. 해고 이유는 파업에 참여했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들의 주장은 내가 노조의 배후조정자라는 거였다. 증거가 없는데도 해고를 당했다. 내가 전직 노조 위원장이긴 하지만 그 당시로부터도 무려 7년 전 일이었다. 그때 난 간부여서 노조도 탈퇴된 상황이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4대강 수심 6미터의 비밀', '공정사회와 낙하산', '검사와 스폰서'같은 불편한 방송을 했으니 나를 손보는 거 자체를 상징적으로 여겼던 것 같다. 청와대에 '우리(경영진)가 이 정도로 노력한다'는 걸 보여주려 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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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자백' 이후 차기작으로 '4대강'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 생각이 있다고 했는데 그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는 건가?

A. '4대강'을 다시 하려면 MBC에 들어가야 한다. 2009년부터 2010년 'PD수첩'에서 취재했던 테이프가 다 거기에 있다. 물론 '뉴스타파'에서도 관련 취재를 할 수 있지만 영화를 만들 거면 관련 자료와 취재를 제대로 준비해서 만들고 싶다.

Q. 만약 MBC에서 해고되지 않았더라면 계속 남았을 것 같은가?

A. 내가 스스로 관뒀을 것이다.

Q. '뉴스타파'로 온 지 4년째다. 독립언론에서 일해보니 어떤가?

A. 탐사 보도를 전문적으로 하는 매체다 보니 특정한 주제를 정해 집중적으로 취재를 할 수 있다. 우리가 보도했던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이나, 조세 피난처 등은 다른 데서 하기 어렵다. 시민의 후원으로 운영을 하지만 후원자들의 정치적 성향과 부딪히는 취재를 할 때도 있다. 이를테면 지난 대선 때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는 보도를 한 것이다. 예민해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Q. '공범자들'의 개봉과 더불어 MBC, KBS 내 파업 움직임이 다시 본격화되고 있다. 영화 속에서도 묘사되지만 동료들과 뜻을 함께하지 않는 배신자들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한때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선배로서 그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A. 여러 가지 명분을 내세우지만, 결국엔 자기 잘 살려고 그러는 거 아닌가. 배현진 아나운서의 경우 파업 철회를 하면서 그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SNS에 쓰지 않았나. 파업을 철회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 동료들에게 오물을 끼얹는 사람들은 언론인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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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영화에 대한 관객의 반응을 통해 공영방송 정상화에 대한 바람을 실감할 것 같다.

A. 희망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매주 금요일마다 MBC, KBS 돌아가면서 '공영방송 회복'을 위한 시민 집회('돌아와요 마봉춘, 고봉순')를 하고 있다. 많은 분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다. 여론이라는 게 중요하다.

Q. PD에서 영화감독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것 같다. '자백', '공범자들' 두 편을 만들며 영화라는 매체의 힘을 체감했을 것 같다. TV와 영화 모두를 경험해본 결과 어떤 장단점이 있는 것 같나?

A. TV는 좀 더 설명적이다. 짧은 시간에 작은 화면을 통해 사람들에게 각인을 시켜야 하니 음악이나 자막 등 많은 장치를 쓴다. 영화는 그런 식으로 하면 관객이 피곤해한다. 영화는 큰 스크린을 통해 관객과 차분하게 호흡한다. 조미료를 많이 가미하지 않고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해나갈 수 있다.  

Q. 영화만의 매력을 꼽자면?

A. 영화는 강하다. 관객들이 직접 영화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것이기 때문에 내용을 깊이 느끼고 이해하려고 한다. 안방에서 TV로 보는 것보다 훨씬 강렬한 체험이다. 'PD수첩'을 만들 때의 목표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파급력 면에서는 TV가 훨씬 크다. 지금은 공영방송이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지만, 정상화 되면 'PD수첩'과 같은 프로그램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사진 = 김현철 기자>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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