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착하기만을 원한다면
달려가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걸어서 가야 한다.'
장 자크 루소, <에밀> 중에서
달려가면 된다.
그러나 여행을 하고 싶을 때는
걸어서 가야 한다.'
장 자크 루소, <에밀> 중에서
'걷는다'는 의미는 포괄적이다. 걷는다는 행위는, 실상 모든 동물들의 생태적 특성이면서, 이동수단으로써 생존의 본질일 뿐임에도 우리는 걷는다는 단어 너머에 겹쳐져 있는 다양한 영상을 보게 된다.
쓸쓸함, 외로움도 보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아플 수도 있는 고행(苦行)이라는 영상도 겹쳐져 보인다. 한편으론 이동수단으로서 ‘다리’라는 신체기관의 본래적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는 누군가의 씩씩한 발걸음이 보이기도 한다.
그렇게 단지 이동수단이었던 걷기가, 이제는 사색이니, 깨달음이니, 자아 탐구니 하는 목적과 더불어 운동 등의 이유로 행해지고 있으며, 실제 많은 이들은 그러한 목적으로 걷고 또 걷고 있는 중이다. 또 그런 이유로, 장거리 도보 여행은 누군가의 로망이 되기도, 또 생애 이루고픈 소망인 버킷리스트에 오르기도 한다.
그는, 그렇게 주체적이고 능동적 행위인 걷기를 통해, "이러한 일상의 노력, 멀고 먼 목표를 향한 알 수 없는, 그러나 강렬한 부추김, 그리고 유익한 땀방울을 통해 하늘로 날아오르고, 두려움과 고정관념의 사슬에서 해방된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사회가 옭아맨 줄을 끊고, 안락의자와 편안한 침대를 외면하며, 행동하고, 꿈꾸고 걷기 때문"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동차 차창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아닌, 그래서 눈으로만 보는 관광이 아닌,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여행을 위한 적확한 수단이 걷기라고 그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걷기는 이동수단을 넘어 '땀'과 '꿈', 그리고 '사색'의 영역으로 진보하고 있는 중이다. 그만큼 걸어야 할 이유가 다양해진 것이고, 또 그런 이유로 더 자주, 더 멀리 걸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잠자고 있는 능동성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더위와 바쁨을 핑계 삼아 게으름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 스스로를 다잡아야 하는 것이다.
고맙게도 이번 도보 여행에는 은인이 나타났다. 직장 동료인 김세경 기자가 기꺼이 동행을 자처하고, 게다가 풍성한 콘텐츠를 위해 자신의 장기인 드론 촬영까지도 책임져 주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이러니 없던 뭐라도 끄집어내야 할 판이다. 고마운 일이고, 새로운 협업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커지는 계기가 될 것만 같다.
멀리서 바라보면 섬이 아니라 언덕처럼 보인다 해서 '큰 언덕'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대부도(大阜島)는 시화방조제로 연결돼 육지가 된, 섬이 아닌 섬이다.
재미있는 것은 시화방조제로 육지와 연결된 후 대부도의 행정구역이 바뀌었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대부도가 인천시 옹진군의 부속 도서였는데, 육지로 연결 된 후 경기도로 편입되었고, 기초자치단체는 주민투표를 통해, 시흥시, 안산시, 화성군 중에서 안산시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래서 안산시 대부동(洞)이 된 것이다.
우리가 걸은 코스는 대부 해솔길 1코스.
1코스는 방아머리에서 돈지섬 안길까지 이어지는 11.3㎞의 여정으로, 길은 '대부도 관광 안내소'에서부터 시작된다. 해물칼국수와 조개구이집들이 늘어선 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길은 이내 바다로 이어진다. 나루설미 해변이다.
다행인 것은 해안을 따라 아기자기한 풍경들이 이어지는지라, 모래밭을 걷는 수고스러움은 금방 위로가 된다. 게다가 산과 잇닿아 있는 쪽의 해변은 돌들이 많았던지라, 발목이 모래에 빠지는 고생길은 아니었다.
얼마를 걸었을까? 빈객들이 우리를 맞는다.
멀리 해송 숲이 보인다. 숲에는 더러 행락객들의 텐트가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고 있고, 불판에서는 고기가 익어가고 있었다. 여유가 부러워진다.
길옆의 저수지에는 강태공들이 한 가득이다. 한가로이 파라솔 아래에서 세월과 물고기를 동시에 낚고 있는, 그들도 부럽다.
얼마간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길이 고역이다. 햇살을 피할 수 있는 한줌의 그늘이 아쉬운 길이다. 길도, 풍경도, 햇살도 가혹할 따름이다.
그녀가 깨달은 바는 다음과 같다.
"과거에 그것이 성스러웠든 아니든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짓이 너무 혐오스럽다. 그것은 내 영혼을 파괴하고, 나 자신과의 접촉을 방해하고, 아픔이 하나의 보상이라고, 돈이면 무엇이든 살 수 있고 정당화 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중략)
나는 더 이상 이 모든 것을 정상적인 일로, 내 인생의 한 단계에 불과한 것으로 여길 수가 없다. 나는 그것을 잊고 싶다.(중략) 잘 살지 못하는 사치를 누리기에는 삶은 너무 짧거나 너무 길다."
- 파울로 코엘료, <11분>중에서
● 대부도 하늘을 드론이 날다
낙섬 해변에 드론이 난다. 갑작스런 드론의 출현에 적의 영역 침범이라 생각한 것인지 갈매기들이 드론 주위를 유영하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낸다. 위협으로 느꼈나 보다. 조종기를 쥔 김세경 기자도 긴장을 한다. 공존은 당연한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던 것이다.
▲ 대부도 해솔길 드론 영상 <낙섬 해변> (드론 촬영 : 김세경 기자)
눈높이를 벗어난 영상은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한다. 높은 곳에서의 항공 촬영을 통해 만나는 세상은 먼저 광활하고 일목요연하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는 느낌이다. 나무와 숲은 결국 같은 대상일 수 있지만, 대상을 안에서 바라보는 것과 대상을 밖에서 바라보는 것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대상에 대한 상상이 아닌 실체로서의 대상과 바로 대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살면서 모든 것의 크기를 실증적으로 확인하면서 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상상이 주는 여백은 불확실하지만, 생각의 틀을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여행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드론을 통해 만나는 세상은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고, 많은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술적 개가라 할 것이다. 한 컷 안에서 다 보여줄 수 있는 섬인데,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단 말인가. 그냥 즐겁게 감상하시라.
길은 구봉도를 향해 나아간다.
구봉도는 대부도 북단에 위치한 섬이다. 아니 섬이었다. 지금은 구봉도가 별도의 섬이라는 사실을 알만한 그 어떤 꼬투리도 발견할 수가 없다. 하지만 아직도 이름은 구봉도다. 구봉도라는 이름은 봉우리가 아홉 개 있는 섬이라 구봉도(九峰島)로 불리게 되었단다.
구봉도 초입의 해변가에는 해송 한 그루가 서 있다. 미인송이다. 홀로 바다와 맞서는 기상만큼은 장군감인데, 그 자태는 심히 아름다운지라 이름하야, 미인송이다.
산을 오르자, 행인을 맞는 건 사슴벌레다. 길에도 나무에도 사슴벌레가 있다. 나름 생김새가 멋지고 양 갈래 뿔처럼 길고 강하게 발달된 큰 턱을 들어 자못 위협적인 태도로 행인을 노려본다. 길에서 만난 딱 동네 건달의 행색이다. 주머니를 털어 동전 몇 닢이라도 통행세로 건네야 하는 걸까?
길은 구봉산으로 뻗어 있다. 해솔길을 걷는 이들의 걸음이 한가롭다. 아이와 함께 걷는 가족도 있고, 친구 모임처럼 보이는 분들도 보인다. 여성분들의 모임은 걸으면서도 시끌벅적 요란하다. 웃음소리에 끝이 없다. 무에그리 즐거운지 연신 웃음꽃이다. 친구는 나이를 먹어도 그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가게 만드는 마법사다. 그래서 친구는 어느 대상보다도 반갑고 또 귀한 존재일 것이다. 나이가 들면 어떤 면에서는 가족보다도 친구가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던가.
얼마를 걸었을까. 이정표는 구봉 약수터가 머지않음을 일러준다.
거북이의 입을 통해 쏟아지는 구봉 약수터의 물줄기가 시원하다.
▲ 대부도 해솔길 드론 영상(구봉산, 구봉약수터) (드론 촬영 : 김세경 기자)
정해진 코스를 따라가는 도보 여행자들에게 어디로 가는 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속도의 문제일 뿐, 길은 이미 '그곳'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차이는 그 길을 걷는 이의 마음뿐이다.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 그 꽃'의 놀람 내지 탄식처럼, 또 어쩌면 보고자 하는 눈과 마음의 크기가 같은 길을 다르게 보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와중에 문명의 이기(利器)는 그동안 볼 수 있으리라 생각지도 못했던 꽃과 섬과 길을 보여준다. 그 속을 사람들이 걸어간다.
● 대부도 <해솔길>가는 방법
- 대중교통 : 서울지하철 4호선 안산역, 초지역, 중앙역, 오이도역 하차 후, 123번 버스(오전 5시 40분부터 오후 10시까지 운행) 이용.
- 자가용을 이용하는 경우 : 대부도 방아머리 공영주차장(동춘서커스 공연장 옆), 대부도 바다향기 테마파크 주차장, 구봉도 공영주차장 등을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