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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란 건 명예회복뿐…모든 걸 주고 떠난 김군자 할머니

<앵커>

"죽기 전에 일본의 사과를 받아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미국까지 오게 됐다." 10년 전 미국 하원에서 열린 일본군 위안부 청문회에서 김군자 할머니가 증언했던 내용입니다. 일본의 공식 사과와 정당한 배상을 받는 게 소원이었던 김군자 할머니는 어제(23일) 향년 9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형우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김군자 할머니가 중국 지린성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간 건 17살 때였습니다. 탈출을 시도했지만, 매번 붙잡혀 구타를 당했습니다.

[김군자 할머니 (2007년 미국 기자회견 당시) : 너무나 힘이 들고 해서 죽으려고 했죠. 죽으려고 목을 맸는데 죽지 못하고, 들키는 날에는 죽는 것 보다도 더 맞아요.]

전쟁이 끝나고 38일을 걸어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72세 때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나눔의 집에 들어와 참상을 알리는 데 앞장섰습니다.

2007년에는 미 의회 위안부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습니다.

[이용수/위안부 피해자 (2007년 미국 청문회 동행) : 이번에도 제가 (김군자 할머니한테) 왔다간 지가 얼마 안 돼요.한을 못 풀고 가니까 마음이 안됐죠.]

김 할머니의 방에는 고인이 좋아하던 초상화가 남아 있습니다.

정부 배상금 등 재산 2억 5천만 원은 모두 기부해 학생 250명에게 장학금으로 돌아갔습니다.

[원종선/나눔의집 간호사 (18년간 김군자 할머니 간호) : 옷 사입으시라고 하면 돈 없어서 못 사입는다고 하면서요. 장학금이나 좋은 일을 하는데 기부하는 건 선뜻 몇천만 원이고 일억이고 아낌없이 내주시는 분이세요.]

지난 2015년 한일 합의는 인정할 수 없다던 할머니가 눈을 감을 때까지 기다렸던 건, 일본의 공식 사과와 명예회복이었습니다.

[김군자 할머니 (지난 10일) : 저희는 이렇게 있으면서도 아직 명예회복을 못 했어요. 꼭 좀 명예회복 해주세요.]

(영상취재 : 김승태, 영상편집 : 박춘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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