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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홈 이점 극대화' 아이스메이커 구성 놓고 줄다리기

평창올림픽 썰매 종목 '아이스메이커' 구성은 어떻게?

[취재파일] '홈 이점 극대화' 아이스메이커 구성 놓고 줄다리기
▲ 지난 3월 평창 봅슬레이-스켈레톤 월드컵 경기 전 분주히 얼음 다지는 아이스메이커

동계 올림픽에서 홈 이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는 종목으로는 단연 봅슬레이, 스켈레톤, 루지 등 썰매 종목이 꼽힙니다. 썰매 경기를 할 수 있는 트랙 자체가 현재 전 세계 11개 나라에 15개 밖에 없을 정도로 희귀한 데다, 홈 트랙 선수들이 다른 나라 선수들보다 주행 훈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트랙의 얼음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는 '아이스메이커' 때문입니다. 원래 콘크리트로 된 트랙 위에 냉각장치를 이용해 얼음을 얼리면, 아이스메이커들이 얼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일을 합니다. 선수들이 최적의 상태에서 안전하게 주행할 수 있도록 얼음을 부드럽고 매끄럽게 유지해야 합니다. 트랙 위에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고 울퉁불퉁하게 패인 곳이 없도록 고르게 다지고, 얼음의 두께를 6~7cm 정도로 유지하기 위해 물을 뿌리고 얼리는 일도 아이스메이커의 임무입니다.

그런데 아이스메이커가 선수들의 경기력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승부에서 중요한 외부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아이스메이커가 얼음을 어떻게 깎느냐, 어떤 각도로 깎느냐 그리고 거기에 선수들이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따라서 100분의 1초(봅슬레이, 스켈레톤) 또는 1000분의 1초(루지)를 다투는 썰매 종목에서 승부를 좌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스메이커들이 얼음 상태에 변화를 주면, 선수 입장에서는 같은 트랙이라도 전혀 다른 트랙으로 느껴진다고 말할 정도로 민감하게 작용합니다.

● '트랙 얼음 관리' 아이스메이커…'홈 이점 극대화'의 핵심

이 때문에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 루지연맹에서는 평창 동계올림픽 때 아이스메이커 20명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문제에 심혈을 기울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우리나라 아이스메이커들로만 구성하는 것이지만, 한국인 아이스메이커들이 아직 경력이 짧다 보니까 돌발 상황 대처 등에서 경험 많고 숙련된 외국인 아이스메이커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현재 평창 슬라이딩센터에는 우리나라 아이스메이커 6명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 때 강광배 現 한체대 교수, 이용 現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과 함께 한국 선수 최초로 썰매 종목 루지에 출전했던 이기로 씨가 한국인 아이스메이커 팀장을 맡고 있습니다.

한국인 아이스메이커들로만 평창 올림픽을 치르기는 무리이기 때문에 외국인 아이스메이커들을 포함시켜야 하는데 어느 나라 출신으로 구성하느냐가 문제입니다. 우리의 입장은 한국 코칭스태프, 선수와 소통이 잘 되고, 썰매 종목에서 우리나라와 경쟁하는 나라 출신이 아닌 사람들로 구성하자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트랙 정보가 외부로 유출되더라도 우리가 받을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대표팀 총감독은 지난달 미디어데이 때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미국의 아이스메이커들로 구성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 국제연맹의 이례적 간섭…아이스메이커 구성 놓고 줄다리기

그동안 전례를 보면 아이스메이커 구성은 전적으로 개최국 의사에 따라 결정했습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을 비롯해 과거 동계 올림픽 때는 개최국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자국 연맹의 의견을 받아들여 정했습니다. 그랬기에 홈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었고, 성적으로도 연결됐습니다. 소치 올림픽 때는 개최국 러시아의 뜻대로 러시아와 프랑스 출신 아이스메이커로 구성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다릅니다.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과 국제 루지연맹에서 평창 올림픽에 특정 국가의 아이스메이커들을 포함시키라며 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안 그랬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올림픽에서 이러는 배경에는 지난해 3월 평창 슬라이딩센터 사전인증 때 우리의 '과오'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냉각 펌프가 파손되는 바람에 트랙 얼음이 녹아서 참가 선수들이 주행을 못 하고 돌아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국제 연맹 관계자들과 외국 선수들을 불러 놓고 망신을 당하고 신뢰에도 금이 간 것입니다. 국제 연맹에서는 그로부터 5개월 후인 지난해 8월 평창 슬라이딩센터에 대한 현장점검을 실시해 나머지 펌프에서도 잡음이 난다며 교체를 지시했고, 트랙의 안전성에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습니다.

평창 슬라이딩센터의 시설 관리를 책임지고 있는 강원도 관계자는 당시 "우리가 보기에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국제 연맹에서 왜 자꾸 시비를 걸고 넘어지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지난해 3월 사전 인증 때 벌어졌던 사태 때문에 국제 연맹의 불신감이 커졌고, 이 때문에 우리에게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아이스메이커 구성에도 간섭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 평창올림픽 아이스메이커, 일단 조건부로 결정
평창 슬라이딩센터의 다국적 아이스메이커
평창 슬라이딩센터의 다국적 아이스메이커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국제 루지연맹과 우리의 협상 창구인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간의 줄다리기 끝에 지난주 아이스메이커 구성 문제가 일단 정리됐습니다. 캐나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미국, 러시아 출신 아이스메이커 15명으로 구성했습니다. 일단 우리 연맹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런데 국제 연맹에서 한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오는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진행하는 국제 트레이닝 주간 때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경우'라는 단서를 달았습니다. 문제가 없으면 이대로 평창 올림픽까지 가지만, 혹시라도 얼음 상태에 이상이 있으면 아이스메이커를 교체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것입니다. 향후 평창올림픽 조직위원회의 협상력이 요구되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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