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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암에 무릎 꿇은 中 인권 해방의 기수 류샤오보는 누구?

오늘(13일) 중국에서 간암치료를 받던 중 숨진 류샤오보는 민주화 운동을 이끈 인권 해방의 기수로 잘 알려졌습니다.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했으나, 감옥에서 있었던 탓에 끝내 시상하지 못했던 걸로 유명합니다.

1955년 12월 지린성 창춘에서 태어난 류샤오보는 문화대혁명 시기 '지식청년'이라는 이유로, 강제로 노동현장에 보내졌습니다.

건축공사 근로자로 일해야 했고, 1977년에야 지린대학 중문과에 입학해 1982년 졸업했습니다.

이어 베이징 사범대학에서 석·박사 학위과정을 이수하고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그 이후 미국 컬럼비아대학과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하와이대학 등에서 방문학자로 지내며 특강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운명은 1989년 6월4일 톈안먼 민주화 운동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 이전의 학력과 경력으로 볼 때 중국에서 '안락한' 삶을 살 수 있었으나 그는 중국의 참혹한 인권을 위해 싸웠습니다.

톈안먼 사태 발생 당시 미 컬럼비아대학에 머물던 류샤오보는 곧장 중국으로 돌아가 광장시위 단식농성에 가담해 민주개혁 요구에 동참했습니다.

이후 류샤오보는 중국에서 민주화 운동이라는 형극의 길을 걸었습니다.

텐안먼 사태 이틀 후인 6월 6일 중국 공안당국에 '반혁명선전선동죄'로 체포된 그는 강단에서 쫓겨나는 공직박탈 조치를 당했습니다.

공안의 집중 감시 대상이 돼 1995년 5월 베이징 교외에 1년여 감금됐다가 그 다음해 10월 '사회질서교란죄'라는 명목으로 법원에서 3년의 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 같은 고난 속에서도 류샤오보는 작가활동을 하면서 중국 당국의 반인권 처사를 비판하고 중국인의 인권보호활동에 투신했습니다.

류샤오보는 중국 당국의 중점 감시대상이 돼 톈안먼 민주화 운동 기념일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가 되면 꼬투리를 잡혀 감금됐습니다.

심지어 외출금지는 물론 전화까지 차단되는 등 외부와 격리돼야 했습니다.

그는 특히 2008년 12월 세계인권의 날에 '08헌장'을 발표해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 등 민주개혁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2009년 12월 국가 전복선동 혐의로 징역 11년형을 선고받아 수감됐습니다.

그러나 류샤오보의 이 같은 민주화 활동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201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습니다.

노르웨이 노벨 위원회는 당시 그가 "중국에서 기본적인 인권을 위해 길고 비폭력적인 투쟁을 벌였다"며 "중국 인권 개선을 위한 광범위한 투쟁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류샤오보는 노벨상 시상을 할 수 없었고, 노벨위원회 측은 대신 그가 불참한 의자에 메달을 걸어주는 이벤트를 했습니다.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노르웨이와 중국의 수년에 걸친 외교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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