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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류석춘 "탄핵은 정치적 보복"…한국당 혁신 어디로?

[취재파일] 류석춘 "탄핵은 정치적 보복"…한국당 혁신 어디로?
● "탄핵은 정치적 보복"…류석춘표 혁신은 '헌재 결정 불복'?

자유한국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류석춘 연세대 교수의 첫 기자회견 (11일). 홍준표 신임 당 대표가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진 당을 구할 방안으로 '대대적 혁신'을 강조했기 때문에 기자들의 관심도 뜨거웠습니다.

홍 대표가 취임일성으로 제기했던 세 가지 혁신 분야 중 단연 핵심은 인적 쇄신이 될 터였습니다. 이미 인명진 비대위원장 시절 친박계에 대한 청산 작업이 한바탕 소란스럽게 진행됐기 때문에, 류석춘 표 인적 쇄신의 요체가 무엇일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류 위원장이 밝힌 구상은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우선, 류 위원장은 " 박 대통령 탄핵은 정치적 보복"이라고 규정했습니다. " 이미 당은 탈 박근혜화 됐다"며, "태극기 집회에 참여한 국민은 탄핵을 억울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출당조치 역시 " 시체에 칼을 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불가 입장을 밝혔습니다.

류 위원장은 한 발 더 나아가 " 탄핵의 본질은 허무맹랑한 얘기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정치적 실패다, 국정농단이 아니라 국정실패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과거) 새누리당 일부가 탄핵에 앞장선 것을 치켜세우는 것은 잘못됐고, 오히려 당을 지리멸렬하게 한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말했습니다. 헌재 결정을 부정하고, 지금까지의 혁신 논의의 출발점을 몇개월 이전으로 되돌려놓는 발언입니다.

● 인적혁신 대상은 '친박' 아닌 '배신자'

탄핵에 대한 평가가 이렇다면 인적 혁신 대상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 인적 쇄신의 요체가 대상이 친박뿐 아니라 탄핵에 찬성했거나 탈당을 했다가 복당한 의원들이냐'고 물었더니 " 무엇이 더 (당을 지리멸렬하게 만든 데) 결정적이었는지 따져볼 문제"라며 가능성을 열어뒀습니다. 단순히 '친박'을 청산하겠다는 게 아닌 것입니다. 그럼 누굴 상대로 쇄신하겠다는 걸까. 류 위원장의 지난해 11월 조선일보 칼럼을 보면 조금 더 뜻이 분명해 집니다.

" 박근혜 대통령 팔아 국회의원, 장관, 수석 등 한 자리씩 꿰차고 단물 빨던 인물들의 배신이 비록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순실 사건 터지고 나서의 배신은 더욱 꼴불견이다. …'친박'의 대명사인 서청원 의원 그리고 대통령을 누님이라 부르던 윤상현 의원은 왜 이 시점에서 존재감이 전혀 없는가? …최경환 의원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 2016년 11월 5일자 조선일보 기고 칼럼)
 
단순히 ' 친박'이 아니라 ' 배신자'를 청산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탄핵을 당하도록 당을 지리멸렬하게 만들었던 책임'은 박 대통령을 지키지 못한 친박들과 탄핵 찬성파, 탈당파 모두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류 위원장은 이 대목에서 " 저의 정체성을 고백하겠다"며 "태극기 집회에 열심히 나갔다"고 말합니다.

● 혁신위원장이 '혁신' '통합' 걸림돌 될라

당 내에서부터 동요가 시작됐습니다. 정우택 원내대표는 " 혁신위가 소리를 먼저 내면 군림하는 행태로 보일 것"이라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한 핵심 친박계 인사는 "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당원권 정지 시키고 다했지 않냐"며 " 이중처벌이라도 할 셈이냐"고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복당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른정당에 있다가 한국당으로 돌아온 장제원 의원은 SNS 글을 통해 " 당이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극우화되는 것 같아 심각한 우려를 하게 된다"고 직격탄을 날렸습니다. 또 다른 복당파 의원은 " 류 위원장의 사고가 이렇게 좁다면, 보수의 통합이나 새로운 보수 가치를 이끌어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다"고 우려했습니다.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 류석춘 혁신위원장 말씀을 들어보니 한국당 혁신의 방향은 탄핵반대 태극기 정당이고 탄핵 찬성했던 분들은 혁신의 대상이라는 것"이라며 복당파 의원들에게 " 쫓겨나기 전에 자진 탈당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 '전략가' 홍준표 대표의 계산은?

사실 이런 소란은 이미 예상된 것이었습니다. 류 위원장의 칼럼과 그간 행적들이 그가 생각하는 혁신은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당장 당을 통합하고, 나아가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목표로 한 홍준표 대표가 류석춘 위원장을 기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당내 요인을 볼까요. 홍 대표는 대선 후보였지만, 당장 한국당을 휘어잡을 수 있는 주류세력은 아닙니다. '친홍계'라고 할 수 있는 원내외 인사들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주류 친박들이나, 과거 탈당파를 비롯한 중도확장 세력 모두 '대안이 없기 때문에 대표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스스럼 없이 말할 정도입니다.

당장 당 대표를 맡았지만 지지세력은 없는, '무장해제' 상태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두 세력 모두에 강한 반감을 가진 류석춘 위원장을 내세워 당을 장악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측근이 아니라, 홍 대표의 정적으로 볼 수 있는 원조 친박계 인사를 통해서 말이죠.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도 보입니다.

당 밖 요인도 있습니다. 홍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바른정당과 통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당대당 통합이 아닌 힘의 우위를 통한 흡수통합 방식으로 말입니다. '개혁보수'를 표방한 바른정당과는 차별화하면서 빠른 시간 안에 힘을 키우는 방법은 이른바 '우파 색채'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탄핵정국 이후 목소리를 낮춰왔던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전폭적 지지만 얻어낸다면, 바른정당을 무릎꿇릴 수 있을 것이라 봤을 수 있습니다. 류 위원장의 기용은 우파 색채 강화, 태극기부대의 지지를 얻기 위한 다목적 카드일 수 있습니다. 남은 기간, 바른정당이 소속 의원 20명 중 한 명이라도 이탈해 교섭단체 지위를 잃는다면 이런 시나리오가 영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다만 이런 과정의 맹점은 바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린다는 점입니다. 한국 정치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측면에서 보수세력의 조속한 재건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법체계 존중'이란 보수 본래 가치를 부정하고, '혁신'이란 이름으로 과거로 '회귀'한다면, 장기적으로 보수 재건에 진정 보탬이 되는 걸까요. 홍 대표가 언급한, '공동 묘지의 평화'를 깨는 당내 논쟁이 필요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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