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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옥자', 봉준호 감독은 왜 직설화법을 택했을까

[리뷰] '옥자', 봉준호 감독은 왜 직설화법을 택했을까
봉준호 감독의 영화들은 해석의 여지가 많았다. 신(Scene) 하나에도 보이는 것 이상의 함의가 있었고, 이는 관객들에게 발견되고 해석되었다. '봉테일'(Bong+Detail)이라는 별명은 이런 곱씹음의 미학이 감독의 정제된 연출력에서 파생됐기 때문이었다.

6편째 장편 영화인 '옥자'는 제작비 560억을 미국의 동영상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로부터 투자 받았다. 개봉 전부터 안방과 극장의 동시 개봉을 두고 국내외적인 이슈를 몰고 온 가운데 29일 전 세계 190개국에 공개됐다. 

'옥자'는 봉준호 감독의 직설 화법이 두드러지는 영화다. 물론 그간의 작품에서도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블랙 코미디 형식으로 보여준 바 있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전작인 '설국열차'보다 훨씬 더 메시지가 밖으로 두드러진다. 종전까지 다층적인 방식의 은유법을 구사했다면, 이번 작품은 의도하는 바가 명확한 직유법을 구사한 것처럼 보인다. 

강원도 산골 소녀 미자(안서현)에게 옥자는 10년간 함께 자란 둘도 없는 친구이자 소중한 가족이다. 자연속에서 평화롭게 지내던 어느날, 글로벌 기업 '미란도'가 나타나 갑자기 옥자를 뉴욕으로 끌고 가고, 할아버지(변희봉)의 만류에도 미자는 무장적 옥자를 구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여정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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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비리에 옥자를 활용한 '슈퍼돼지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미란도 코퍼레이션'의 CEO '루시 미란도'(틸다 스윈튼), 옥자를 이용해 제2의 전성기를 꿈꾸는 동물학자 '죠니'(제이크 질렌할), 옥자를 앞세워 또 다른 작전을 수행하려는 동물 보호 단체 ALF까지, 각자의 이권을 둘러싸고 옥자를 차지하려는 탐욕스러운 세상에 맞서, 옥자를 구출하려는 미자의 여정은 더욱 험난해져 간다.

'옥자'는 슈퍼돼지 옥자가 집을 떠나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과정의 모험기다. 이 모험은 자의적 선택이 아닌 돈으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모든 생명의 상위에 있다고 오만을 떠는 인간의 이기에서 비롯됐다. 미자의 성장담이기도 하다. 자신의 친구이자 애정하는 대상인 옥자를 지키기 위해 미자는 에덴동산(산골)을 벗어나 냉혹한 정글(사회)로 들어온다. 미자는 그 질펀한 정글의 법칙을 파악한 뒤 가장 확실한 방식으로 저항한다. 

이 영화에는 돈이 많은 사람(루시 미란다), 똑똑하고 유명한 사람(죠니 윌콕스 박사), 정의롭고 신념에 찬 사람(제이)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은 말 못하는 돼지 옥자보다 덜 인간적이고, 불의에 저항하고 신념대로 행동하는 미자보다 덜 용감하다. 

미자는 갖은 고초를 겪으며 옥자를 구하는 법을 익힌다. 영화 후반부 미자와 낸시가 하는 거래는 명쾌하다기보다는 어딘가 씁쓸하다. 옥자의 탄생을 가능하게 했던 수단을 동원해 옥자의 자유를 얻는 아이러니다. 자본주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미자와 옥자가 자기들의 세상으로 귀환하기 위해 써야 했던 방법은 어른들의 나쁜 방식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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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적인 것들의 한데 섞여 기묘한 리듬과 유머를 만들어내는 봉준호만의 작법은 여전하다. '옥자'는 한국 영화 같기도, 미국 영화 같기도 하다. 

영화 전반부는 지극히 한국적인 두메산골이 나오고, 어린아이는 가축과 함께 산속을 뛰어논다. 시골 밥상에선 할아버지와 손녀의 정겨운 대화도 오간다.

이 평온한 농가에 파란 눈 외국인이 발을 디딘 풍경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동물학자 죠니는 산자락에 위치한 미자네 집을 등산하듯 힘겹게 오른다. 펌프로 기른 물을 바가지에 담아 마시고, 오래된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닫아본다. 지극히 한국적인 풍경에 할리우드 액션을 구사하는 배우가 등장해 묘한 웃음을 자아내는 식이다.

영화의 장르와 분위기도 전,후반부가 사뭇 다르다. 전반부가 목가적 분위기의 자연 다큐(심지어 대사도 거의 없이 카메라가 자연과 생명을 담아낸다)와 같다면, 소동극과 추격전으로 이어지는 중·후반부는 할리우드 전형적인 장르물처럼 보인다.

'옥자'의 메시지는 명료하고, 화법은 직설적이다. 돈과 생명, 인간과 자연, 자본주의와 휴머니즘, 동물의 인간다움과 인간의 동물스러움의 대비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인간의 폭력성에는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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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 국내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를 누구나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경쾌한 우화로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확장성도 넓혔다.

그러나 메시지의 밑거름이 되는 서사는 단조롭다. 직접적인 보여주기를 통해 메시지를 설파한다는 느낌도 짙다. 물론 이런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 가장 효과적인 방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감독의 의도는 명확하게 전달되지만, 영화적 미학은 떨어진다.

관객들이 봉준호에게 기대하는 바는 스페셜이다. 그러나 '옥자'는 봉준호의 영화로는 지나치게 순진한, 그래서 별로 흥미롭지 않은 '착한 동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봉준호 감독이 택한 결말은 보기에 따라 장밋빛 희망일 수도, 잠재된 불안일 수도 있을 것 같다.          

(SBS funE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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