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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일본 노동계, 최저임금 1500엔 주장 이유

[월드리포트] 일본 노동계, 최저임금 1500엔 주장 이유
국내에서 최저임금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지난주 6월 27일 일본 후생노동성에서도 중앙최저임금심의회 소위원회가 열렸습니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논의하는 첫 자리였습니다.

일본의 최저임금은 각 지역마다 다릅니다. 전국 평균은 823엔(6월 30일 환율 100엔:1017원)으로 도쿄도가 932엔으로 가장 높고 미야자키나 오키나와 등이 714엔으로 가장 낮습니다. 중앙최저임금심의회에서 전국 47개 현을 4개 지역으로 구분한 뒤 매년 7월 쯤 각 지역의 최저 상승 권고 금액을 발표합니다. 이 금액을 토대로 각 지역 노동청 최저임금심의회에서 지역 상황을 고려해 자기 지역의 최저임금을 최종 결정합니다.
도쿄 최저임금 932엔 포스터(도쿄도 노동국 제작)
각 지자체는 지역별 최저임금과 별도로 특정 산업 근로자들을 위한 최저임금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특정 산업은 지역별로 다릅니다. 아래 표를 보면, 지역 최저임금이 883엔인 오사카에선 페인트 제조업 근로자들이 912엔의 최저임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특정 산업별 최저임금이 지역 최저임금보다 낮으면 높은 지역 최저임금을 적용 받습니다.
오사카부의 특정산업 최저임금
일본의 전국 평균 최저임금은 2008년 703엔에서 올해 823엔까지 10년 간 17% 상승했습니다. 우리나라는 같은 기간 3,770원에서 6,470원으로 71.6% 올랐습니다.

그럼 일본은 어떤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정할까요? 주요 경제 통계를 살피는 것은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래는 지난 26일 일본 중앙최저임금심의회 소위원회에 올라온 자료들입니다. 주요 통계자료와 함께 '일하는 방식 개혁 실행 계획',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 방침', '미래 투자 전략 2017' 등의 문서가 눈에 띄는군요. 일단 통계 자료에는 GDP 상승률, 제조공업 가동률, 도산건수, 실업률, 유효구인배율, 각종 물가지수, 임금상승률, 학력별 초봉수준, 노동시간, 기업들의 경기전망, 최저임금 위반상황 등이 담겨 있습니다.
6월27일 일본 중앙최저임금심의회 회의자료
그런데, 이런 통계 수치로는 '지금보다 얼마나 높일까?'를 정할 수 있지만, 최초 기준금액은 산출하기 어렵습니다. 무엇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정해야 하는가? 역시 일본도 최저 생계비를 먼저 계산합니다. 그 첫 기준은 일본 공무원들의 급여 수준을 결정하는 '인사원'이 발표하는 표준 생계비입니다.
일본 인사원 표준생계비
인사원이 2016년 4월 발표한 '세대 인원수별 표준 생계비'입니다. 식비, 주거비, 광열비, 수도, 가구, 가정용품, 의류, 보건의료, 교통, 통신, 교육, 오락, 용돈, 교제비, 선물비 등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세대 인원수별 표준 생계비
선진국치고는 생각보다 높지 않죠.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아동수당 등 일본의 각종 복지혜택도 고려를 해야 합니다. 후생노동성이 목표로 하는 연간 1,800시간 노동시간을 고려하면 1인 세대를 기준으로, 가능한 최저임금은 11만 5530엔X12개월÷1800시간=770.2엔입니다. 일본 47개 현 가운데 31개 현이 770엔 이하입니다.
일본 최저임금 격차를 지적하는 포스터(오사카노동조합총연합 제작)
일본 최대 노동단체인 전국노동조합총연합(젠노렌)은 더 높은 수준으로 전국 평균 1,500엔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젠노련은 지난해 4월 자체적으로 '세대별 최저생계비'를 조사했습니다. 6개 유형의 세대별 최저생계비를 정리했습니다. 거주공간 넓이 예시를 보니 역시 일본인들 좁은 집에 사는군요.
세대별 최저생계비
아래는 25세 남성의 월간 최저생계비입니다.
일본 노동계 조사 1인 최저생계비 월 23만3801엔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식비 40만 2500원, 거주비 55만 1200원, 교통통신비 18만 5300원, 용돈 및 교제비 24만 1600원, 각종 세금 43만 1400원 등입니다. 인사원 1인 표준생계비의 거의 1.6배 수준입니다. 젠노렌은 이를 기준으로 280만 5612엔÷1,800시간=1533엔을 최저임금으로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공공기관 인사원 770.2엔 < 현재 전국 평균 823엔 < 정부 목표 1000엔 < 노동계 1533엔의 순입니다.
일본 노동계의 최저임금 1500엔 시위포스터
이밖에 일본 통계청이 조사하는 세대별 소비지출액을 기준으로도 최저임금을 논의할 수 있습니다. 올해 1/4분기(1-3월) 조사치를 살펴보죠. 앞의 수치는 연금을 받는 노인세대나 국가 보조금을 받는 저소득층까지 모두 포함한 총세대별 소비지출액이고요, 뒤 () 안 수치는 일반 근로자 세대의 소비지출액 가운데, '근무처로부터의 월수입'입니다.
근무처로부터의 월수입
현재 일본 전국 평균 최저임금 823엔으로 받을 수 있는 월수입을 계산하면, 823엔X연간 권고 노동시간 1800시간÷12개월=12만 3452엔입니다. 통계청의 실질 1인 세대 소비지출액의 79.3%정도이고, 근로자의 근무처 월수입 48.5%입니다.

지금까지 일본 최저임금의 이런저런 기준을 전해드렸습니다.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논의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는 일본에서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네요. 우선 일본처럼 생계비 자료를 먼저 살펴보니 보건복지부가 매년 발표하는 월 '최저생계비'가 있군요.
월 '최저생계비'
실제 우리 최저임금 논의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 일본에서 정확히 파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본처럼 우선 정부 측이 계산한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한다면, 99만1759원X12개월÷연간 권고 노동시간 1,800시간=6,612원입니다. 현행 최저임금 6,470원과 비슷하군요.

일본 노동계처럼 우리 노동계도 자체적으로 생계비를 조사해 최저임금 협상에 활용합니다. 이 조사로는 한국노총이 발표한 올해 '표준생계비'가 있군요.
올해 '표준생계비'
이걸 일본처럼 계산하면 219만 7,478원X12개월÷1,800시간=1만 4,659원입니다. 일본 노동계의 요구인 1,500엔과 비슷해지는군요. 하지만, 우리 최저임금 논의에선 이보다 '최저임금위원회 사무국'이 매년 조사하는 미혼단신 근로자의 생계비가 큰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기준 167만3803원이군요. 일본 통계청의 소비지출액 조사 수치에 견줄 수 있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일본과 우리는 생활환경과 복지제도가 서로 달라 더 이상의 비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본의 최저임금 논의는 우리와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로 최저임금이 국가전략 수준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겁니다. 잠깐 일본의 최저임금 논의를 살펴 보면요, 일본에선 2006-2007년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최저임금 정책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선 일본 헌법 25조대로 '모든 국민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한도의 생활을 영유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후 2009년 출범한 민주당 정부는 2010년 6월 '신성장 전략'을 발표하면서 최저임금 정책을 국가전략으로 채택합니다. 1) 사회적 불평등 해소와 소비진작을 위해 최저임금은 반드시 인상해야 한다 2) 부담이 늘어나는 중소기업들의 생산력 향상을 국가적으로 지원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입니다. 이때 이미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전국 평균 1000엔을 목표로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지난해 6월 각의 결정을 통해 '최저임금을 매년 3%씩 올려 2020년까지 1000엔으로 만든다'고 발표했죠. 최저임금은 적극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것에는 여야가 일치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은 그 이후 단계, 즉 중소기업과 소규모 사업자들의 부담 경감과 생산성 향상 방안을 더 깊이 논의하고 있습니다. 6월27일 후생성 중앙최저임금심의위 소위원회가 검토한 자료에 '일하는 방식 개혁실행 계획', '경제재정운영과 개혁의 기본방침', '미래투자 전략 2017' 등의 문서가 포함된 이유입니다. 이들 자료에 언급된 중소기업·소규모 사업자 지원 방안은 아래와 같습니다.
일본 '미래투자전략 2017' -최저임금 1000엔 목표 명시
- 5월 '생산성 향상 국민운동 추진협의회' 발촉
- 연내 중견중소기업 1만 곳에 빅데이터 IT 로봇 등 이용한 신 가치창조 시스템 도입
- 향후 2년 내 IoT 로봇 도입 원하는 중소제조업체 상담센터 40곳 설치
- 하청관계 엄정 개선 정부 감독 강화
- 관련 시스템 통합 기술자 3만 명 양성
- 공격적인 금융지원 14조엔 투입
- 지역 상공회의소와 경영혁신지원센터 2만7천 곳으로 확대

물론 위 정책들이 제대로 실현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처럼 최저임금 문제가 '을(소규모사업자)과 을(최저임금 근로자)의 대결'은 아니라는 겁니다. 최저임금을 얼마로 할 것이냐에만 몰두해선 안 되는 이유입니다. 국내 보수언론들은 2020년 일본 최저임금 1,000엔과 한국 1만 원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중소기업과 소규모 사업자들의 경쟁력과 생산성이 아닐까요? 2020년 한국과 일본의 소규모 사업자들, 중소기업들은 각각 어떤 모습일까요? 이제 최저임금 논의는 언성을 높이는 사무실 내 말싸움이 아니라, 노사정이 현장을 둘러보며 미래의 10년 20년을 바라보며 논의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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