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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변호사 vs 억만장자 사업가…달라도 너무 다른 한·미 정상

피란민의 아들과 부동산 개발업자 아들…성장배경부터 대조적<br>'대선 재수' 文 대통령 vs '아웃사이더의 반란' 트럼프<br>두 정상 모두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분노 바탕으로 당선

인권변호사 vs 억만장자 사업가…달라도 너무 다른 한·미 정상
이틀 뒤면 정상회담장에서 마주하게 될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화 스타일은 매우 대조적이라는 평이 나온다.

문 대통령이 일관된 원칙과 목표를 세우면 여기서 벗어나는 법 없이 상대를 끈질기게 설득하는 '정공법' 스타일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가가 수완을 발휘하듯이 상황과 상대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대화를 주도하는 '임기응변형' 또는 '변칙형'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이는 두 사람의 가치관과 정치적 배경, 살아온 인생의 궤적이 그만큼 달랐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피란민의 아들 vs 부동산 개발업자의 아들

문재인 대통령은 1953년 1월 경남 거제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함경도 흥남이 고향인 부모가 1950년 12월 '흥남철수' 때 미군 함정에 몸을 실었던 게 남한 정착으로 이어졌다.

변변한 살림살이 하나 챙기지 못하고 고향을 떠난 탓에 문 대통령의 부모는 가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문 대통령이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가족이 부산 영도로 이사했지만, 가난은 여전했다.

성당에서 나눠주던 구호물자를 받으려 양동이를 들고 긴 줄을 서야 했고, 모친의 연탄 배달일을 돕다가 리어카 채로 길가에 처박힌 일은 지금도 문 대통령의 뇌리에 생생히 남아있다고 한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문 대통령은 부산의 명문 경남중·고에 진학했고 재수 끝에 경희대 법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유신 반대 운동을 벌이다 구속됐고 강제로 징집돼 특전사에서 군 생활을 해야 했다.

그 와중에 학교에서 제적됐고 군 제대 후에야 사법시험에 몰두할 수 있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부동산 사업을 하던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그러나 반항아 기질이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부모는 아들을 규율이 엄한 뉴욕 군사학교에 보냈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 스쿨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고 가업을 이어받아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100만 달러를 밑천으로 공격적인 경영에 나섰다.

뉴욕 맨해튼 중심가에 고층 빌딩을 지었고 1983년 뉴욕 맨해튼에 58층짜리 '트럼프 타워'를 지어 이름을 알렸다.

이후 전 세계를 무대로 굵직한 부동산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은 성공 가도를 달렸다.

◇인권변호사 文대통령 vs '넌 해고야' 트럼프

문 대통령은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지만, 시위전력 때문에 판사로 임용되지 못했다.

이때 문 대통령에게 손을 내민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과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문 대통령은 '인권변호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문 대통령은 저서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인권변호사의 길을 간 이유는 변호사가 단순히 밥벌이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6월 항쟁 때인 1987년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결성 시 노 전 대통령은 상임집행위원장, 문 대통령은 상임집행위원을 맡으며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다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대선에 출마하자 문 대통령은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았고 함께 청와대에 입성했다.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민정수석과 시민사회 수석을 맡았고 마지막에는 비서실장까지 맡으면서 참여정부의 처음과 끝을 같이 했다.

문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 히말라야 트래킹을 중단하고 급거 귀국해 변호인단을 꾸렸고,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서거 발표를 맡는 등 마지막까지 노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

노 전 대통령 서거 후 문 대통령은 정치와 선을 긋고 살았으나 그를 향한 정치 참여의 압박은 날로 수위가 높아갔다.

결국, 문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 출마했으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석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으로 탄핵됐고 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대권에 도전했다.

본인 스스로 "재수에 강하다"고 했던 문 대통령은 두 번째 대선에서 압도적인 표 차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본업인 부동산 사업에서 성공하자 방송·연예·스포츠 등으로 활동영역을 넓혀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4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 NBC의 인기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인 '어프렌티스'(Apprentice·수습생)'를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트럼프 대통령의 회사에 입사를 희망하는 수습생을 받아 몇 주 동안 임무를 수행하게 하고 이를 평가해 실적이 저조한 수습생을 탈락시키는 형태로 진행됐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수습생에게는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회사 중 하나를 1년 간 경영할 수 있는 파격적인 우승 상품이 주어졌지만, 탈락자는 가차 없이 짐을 싸야 했다.

이 방송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탈락자를 지목하면서 말한 '넌 해고야'(You're fired)는 한때 미국 사회에서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프로레슬링을 공식 후원하기도 했다.

열렬한 프로레슬링 팬인 트럼프 대통령은 수차례 '트럼프 타워'에서 WWE(World Wrestling Entertainment) 대회인 레슬마니아를 개최한 바 있으며 2013년에는 WWE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됐다.

1999년 트럼프 모델 매니지언트라는 모델회사를 설립하는가 하면, 미인대회도 개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6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인수해 2015년까지 미스 유니버스와 미스 USA 대회를 운영한 바 있다.

이처럼 대선 출마 직전까지도 '별난 억만장자'라는 이미지가 따라 다닌 탓에 그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 진보·개혁층 지지 vs 백인·보수층 지지

두 사람은 인생사 만큼이나 정치적 성향이나 지지층도 정반대로 갈린다.

문 대통령은 진보·개혁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어 당선된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백인 보수층의 지지를 등에 업고 정권을 잡았다.

다만, 두 사람이 대권을 잡을 수 있었던 기저에 '기성정치에 대한 분노'와 '변화에 대한 기대'가 잠재하고 있었다는 점은 공통점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권의 국정농단에 대한 '촛불시민'의 분노로 대통령직에 올랐고, 트럼프 대통령은 차츰 미국 주류 사회에서 변방으로 밀리는 데 대한 백인 보수층의 불만을 원동력으로 기적 같은 승리를 이뤄냈다.

두 대통령 모두 현실에 대한 불만과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 오늘보다 나은 내일에 대한 기대를 토대로 정상의 자리에 섰다고 볼 수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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