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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 성격"·"끝없는 A/S 요구"에 자살…법원 "업무상 재해"

내성적인 성격으로 영업실적 부담을 못 이긴 은행지점장, 4개월간 1만 건에 달하는 하자보수 요구를 받고 스트레스를 받은 아파트 A/S업체 직원.

법원이 이들의 자살을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잇달아 내놓았습니다.

대법원 2부는 은행지점장 김 모 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 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유족 패소로 판단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습니다.

김 씨는 경기도 한 지역 지점장이던 2013년 우울감에 시달리다가 목을 매 숨졌습니다.

당시 그는 여신 실적 부진, 대출고객의 금리 인하 요구 등을 겪었지만 특별히 회사로부터 심한 질책,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른 지점장보다 과다한 업무를 수행하는 것 역시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이에 1심과 2심은 "A 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며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고인의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고인은 영업실적 등에 관한 업무상 부담과 스트레스로 중증의 우울감을 겪게 됐고 스스로 정신과를 찾아 치료를 받았음에도 지속된 업무상 부담으로 중압감을 느낀 나머지 증세가 급격히 악화됐다"고 밝혔습니다.

대법원은 "업무상 스트레스라는 객관적 요인 외에 이를 받아들이는 고인의 내성적인 성격 등 개인적 취약성이 자살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다고 해 업무와 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달리 볼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는 건설업체 애프터서비스 업무에 종사하다 숨진 직원 A씨의 유족이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밝혔습니다.

A 씨는 지난 2013년 1월 건설업체에 입사해 지방 아파트 공사현장에서 근무하던 중 2014년 6월 근무지인 아파트 옥상에서 '죄송합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내용의 유서와 함께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그는 2014년 2월부터 아파트 입주자로부터 하자보수 신청을 받고 협력업체에 이를 요청하는 업무를 담당했는데 과중한 업무량과 입주자들의 항의, 상사의 질책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해당 아파트는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입주 당시 주택거래가가 분양가보다 2천만∼5천만 원 하락한 상태로 이에 따른 입주자들의 무리한 하자보수 요구가 많았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동료 1명과 함께 4개월간 1만 건에 이르는 하자접수를 처리했습니다.

A 씨는 또 3월엔 하자보수를 받은 입주자로부터 '책장의 책을 모두 빼고 다시 청소하라'는 항의를 받았습니다.

입주자 항의에 청소 작업자가 불쾌하다며 작업 도중 철수하자 그는 자신의 돈으로 청소비 일부를 지급했고, 상사로부터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질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SNS에 '어차피 고객들한테 욕먹을 건데 쓸데없는 불안감 때문에 일을 못 하겠다', '아파트 AS 얼른 벗어나고 싶다.

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불안감' 등의 글을 올려 업무 스트레스를 자주 호소했습니다.

또 여자친구에게 '윗분들한테 무능한 인간으로 찍혀서 너무 괴롭다'며 토로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재판부는 "A 씨는 아파트 입주자들의 지속적이고 부당한 하자보수 요구에 따른 불안감, 고충을 토로하거나 무기력감, 불면증 증세를 호소하는 등 스트레스를 매우 심하게 받았다"며 "업무상 스트레스로 우울증 관련 증상이 발현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자살 직전에는 우울증 악화로 합리적 판단을 기대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자살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며 "내성적인 성격이 자살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해도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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