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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비정규직 축소만으론 일자리 질 높이지 못한다

88%가 일하는 중소기업 성장이 근본 해법

[취재파일] 비정규직 축소만으론 일자리 질 높이지 못한다
비정규직 논란이 한창입니다. 비정규직을 줄이자 혹은 없애자는 논의의 핵심 목적은 좋은 일자리를 만들자는 것이죠.

성장률이 높건 낮건 경제는 성장하는데, 임금과 복지가 열악한 일자리가 많아지는 건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기업은 살찌는 데 근로자는 점점 가난해지고 있다는 것은 가계, 기업, 정부로 엮인 경제 시스템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증거입니다. 경제성장은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 즉 근로자의 임금과 복지 향상에 기여할 수 있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일자리 사정을 보면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 공기업 직원 등으로 구성되는 상위 10%의 일자리는 높은 임금에다 고용 안정성까지 뛰어나지만,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근로자들로 채워진 90%의 일자리는 그 반대입니다. 게다가 그 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일자리의 질을 놓고 볼 때 정규직 비정규직의 구분이 그렇게 유효하지 않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분류되는 대기업 비정규직이 중소기업 정규직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받는 경우가 많기에 중소기업 근로자들에겐, 대기업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비정규직 논란이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릴 수 있는 것이죠. 더욱이 우리 전체 근로자의 88%가 중소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 그렇습니다.
비정규직
어쨌든 우리 일자리 시장은 1:9의 형태로 이른바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가 양극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과 복지격차도 더 늘어나고 있고요. 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대기업의 80%에 육박하던 중소기업 임금비중은 최근엔 60%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차이도 마찬가지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단순히 전체 근로자의 임금수준을 서열대로 쭉 세워놓고 살펴볼 때도 우리 일자리의 심각한 문제적 단면이 드러납니다. 전체 임금 소득자 가운데 딱 중간에 위치한 중위 소득의 66-133%를 지칭하는, 이른바 중간임금 일자리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대 초반 44% 수준에서 요 몇 년 사이엔 35% 수준으로 하락했습니다. 비단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지만, 중간일자리 감소는 근로자들 간에 소득이 양극단으로 치달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예가 됩니다.

중간일자리 감소의 이유는 기술이 진보하고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숙련 전문 인력들이 보다 더 필요하고 대접받는 이유도 있지만, 우리의 경우는 그보다 고용의 88%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부진 탓이 가장 큽니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일자리 양극화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중소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업 생태계를 조성해 우량 중소기업을 늘려 중간임금 일자리를 확장시키는 방법일 것입니다. 좋은 일자리를 가진 10%의 양보를 통해 나쁜 일자리의 질을 개선한다고 하지만 그것만으론 90% 일자리의 수준을 올리긴 힘듭니다.

근로자 열에 아홉이 속해 있는 중소기업의 경영상태가 호전되고, 그 중소기업이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커나가면 자연히 중간 일자리가 늘어날 것입니다. 동시에 전체적으로 일자리의 질도 좋아질 것이고요.

정규직을 늘리기 위한 정책은 기업의 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그대로 추진하되, 중장기적으론 갈수록 경쟁력을 잃어가는 우리 중소기업들의 회생방안을 찾는 일이 시급합니다. 구호에만 그치지 말고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를 확실히 근절해 중소기업의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중소기업 내부에서도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좀비기업이 하루 빨리 정리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싹이 보이는 중소기업에는 과감한 정책자금 지원도 필요합니다.

그동안 수많은 정권의 셀 수 없는 정책들이 중소기업 육성과 지원을 천명했지만 우리 중소기업들의 사정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새 정부가 그동안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 피와 살이 돌게 만드는 대책을 내놓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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