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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곶자왈에서 쉬고, 오름에서 억새와 춤을 추다 - 제주 쫄븐갑마장길 ②

[라이프] 곶자왈에서 쉬고, 오름에서 억새와 춤을 추다 - 제주 쫄븐갑마장길 ②

박대영 기자 cyumin@sbs.co.kr

작성 2017.05.26 07:01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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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라이프] 곶자왈에서 쉬고, 오름에서 억새와 춤을 추다 - 제주 쫄븐갑마장길 ②
▲ 길을 따라 잣성이 늘어서 있다.

잣성은 제주지역 중산간 목초지에 경계 구분을 위해 축조된 두 줄로 된 돌담이다. 축조 목적은 말들이 농경지에 들어가 논밭이나 농작물을 망가뜨리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몽골 침략기 이후 주요한 말 사육장이 된 제주도에서 말로 인한 농경지 피해가 막대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조선 중기에 우마(牛馬) 사육지를 중산간 지역으로 제한하게 되었고, 그 중산간 지역의 말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이 잣성이었던 것이다.
쫄븐갑마장길 29 중산간 지역의 말들이 산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막기 위한 방책이 잣성이다.잣성은 그 길이가 60km에 이를 정도로, 긴 띠를 이루는 선형(線形)유물로서 제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에 남아있는 역사유물 가운데 가장 길다고 한다. 한편으론 조선시대 목장운영과 관련된 중요한 산업유적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잣성은 제주사(史)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조차 없는 대규모 공사였기 때문에, 그 공사에 동원된 제주인들의 노고는 두말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담을 이루는 돌 하나하나에 그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음은 자명한 일이다. 

저 멀리 풍력발전기가 맴을 돈다.
잣성길 너머로 풍력발전기가 보인다.목축지와 잣성을 가르는 둘레길이 한가롭다. 길은 S자의 유려한 커브를 그리기도 하고, 곧장 숲을 향하여 나아가기도 한다.
쫄븐갑마장길 31 쫄븐갑마장길 31-1더러 돌무더기를 만난 길은 짧은 오르막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대체로 무난한 길이다. 아이들도, 나이 드신 분들에게도 편안한 길이 아닐까 싶다.
큰사슴이오름 가는 길 유채꽃 프라자 가는 길갈림길이 나타난다. 직진하면 ‘유채꽃 프라자’가 나오고, 우회전하면 ‘큰사슴이오름’으로 가는 길이다. 응당 큰사슴이오름으로 가는 종주 코스로 가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카메라와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거의 동시에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답사기를 목적으로 걷는 이에게 사진 없는 도보여행은 ‘앙꼬 없는 찐빵’보다도 더한 절망이기 때문이다.

유채꽃프라자로 발길을 서둘렀다.
큰사슴이오름 아래에 유채꽃프라자가 자리하고 있다.유채꽃 프라자는 가시리마을의 신문화조성공간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문화공간이면서, 마을공동체의 구심이기도 한 숙박시설이다. 큰사슴이오름 아래에 자리 잡은 천혜의 숙박시설인 셈이다. 봄에는 유채꽃이, 가을에는 억새들이 장관인, 벌판 가운데 우뚝 솟은 유일한 건물이 유채꽃 프라자이다.
억새들은 차마 길을 침범하지 못한다.유채꽃 프라자 로비에 있는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고 본의 아니게 도전(盜電, 전기 도둑질)을 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긴 했지만, 배터리의 눈금이 조금씩 올라가자, 왠지 뿌듯했다. 다시 걸을 이유가 생긴 것이다.
쫄븐갑마장길 35 제주도에도 이렇게 넓은 평원이 있었나싶게 허허벌판이다.유채꽃 프라자의 앞은 제주도에도 이렇게 넓은 평원이 있었나싶게 허허벌판이다. 그 허허벌판 위로 풍력발전기들이 줄지어 늘어서 저마다 존재의 이유대로 열심히 팔을 돌리고 서 있다. 

벌판의 가운데를 가르며 이어진 길은 억새들이 구분지어주고 있었다. 억새와 억새 사이, 그 사이로 길은 이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길이 어찌 풍요롭지 않을 것인가. 억새들의 사열을 받으며, 벌판 가득한 바람의 간지럼에 애간장을 녹이며 걸을 수 있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어디에 있을 것인가.
쫄븐갑마장길 36 길에 주저앉아 취하고 싶었으나 가야만 했다.바삐 지나가야 하는 걸음이라면, 그 걸음은 무언가 특별한 사정이 있는 걸음일 것이다. 이 길에서 마음이 어떠하든 빨리 걸을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바쁜 척을 해야 했다. 그대로 주저앉아 길에 취하고 싶었으나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오후 6시가 가까워져 오는지라, 또, 가야만 했던 것이다.

다시 길은 숲으로 이어진다.
꽃머체그러다가 만나는 돌무더기. 그 돌무더기 위에 뿌리박고 솜사탕처럼 풍성하게 자라는 나무들. 모양이 특이하다. 이정표에는 ‘꽃머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특이한 이름만큼이나 나무들이 딛고 선 바위들의 모양새가 예사롭지가 않다.
‘머체’란 제주도 말로, 땅 속에 묻혀 있던 용암 덩어리가 지표면에 노출된 상태를 말한다.‘머체’란 제주도 말로, 땅 속에 묻혀 있던 용암 덩어리가 지표면에 노출된 상태를 말하는데, 지질학적으로는 크립토돔이라고 한단다. 그리고 이와 같은 지질구조는 국내에서는 이 지역이 유일한 분포지로 알려져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고 한다.
쫄븐갑마장길 39 바위를 뚫고 바위 위에서 그들은 산다.‘꽃머체’란 이름은 ‘머체’ 위에서 자라나는 나무들과 꽃이 아름답다 하여 꽃머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꽃머체 정상부에는 구실잣밤나무, 제주참꽃나무, 조록나무, 동백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작은 식물로는 숟갈일엽초, 호자덩굴, 자금우 등이 자라고 있다는데, 나 같은 문외한이 알 길은 없다. 그냥 그런가보다 한다.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울창한 숲을 이룬 그들의 엄청난 생명력이 나를 놀라게 한다.다만 용암덩어리인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저만큼이나 울창한 숲을 이룬 그들의 엄청난 생명력이 나를 놀라게 한다. 문득 어느 땅을 딛고 서있느냐는 문제 못지않게, 딛고 선 땅 위에서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물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한다.’ 류의 숙명론을 펼치려는 건 아니다. 기왕 살아야 한다면, 투쟁적으로 살아도 될 것 같은 영감을 얻었다는 말이다.
어지러운 나무들 사이로 길이 뻗어있다.다시 길을 걷는다. 하지만 다행인지 아쉬움인지 저녁 어스름이 다가오는 속도에 맞춰 길의 여분 역시 얼마 남지 않았나 보다. 이정표가 알려주는 정보가 그렇다.
쫄븐갑마장길 42 제주도의 다양한 길들.제주도의 여러 길을 걸으며 새삼 제주도 길의 다양성에 감탄했다. 제주도에는 제주 올레길이 있고, 한라산 둘레길이 있으며, ‘갑마장길’처럼 지역 사회나 지자체가 개척해 세상에 내놓은 아름다운 길들이 지천이다. 가야할 길이 많으니, 걸어야 할 이유 하나쯤 더 생긴 셈이다.
길이 있으니 걷는 것일 뿐 달리 더 무슨 이유가 있을까.사실 걷는 이유라는 것이 길이 있으니 걷는 것일 뿐 달리 더 무슨 이유가 있을까만은, 그 길 위에서 평소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무엇을 보고, 그런 과정 속에서 다른 무엇을 느끼고 깨닫는 계기는 될 것이다. 그 계기를 위해 걷는다면 그마저도 걷는 이유가 될 수도 있겠다. 
길을 걸으며 사람들은 평소와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무엇을 보고, 그런 과정 속에서 다른 무엇을 느끼게 된다.티베트 여행기 <카일라스 가는 길>을 쓴 소설가 박범신 선생은 ‘별을 보고 바람을 느끼고 우렁각시 같은 마음의 언어에 귀를 기울일 수 있다면, 구태여 이곳에 와서 눈물겨워 할 필요는 없다. 어디에 있든 마음의 참된 말을 듣기만 한다면 그곳이 바로 네 집이다.’ 라고 말한다.
그냥 걸어 보시라.그곳이 어디든 그곳에서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면야 여행이 부차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깨닫기 위해 가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특별한 느낌이나 깨달음이야말로 결과로서 여행의 부가적인 소득일 뿐이다. 걷는 것은 그냥 걷는 것이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그 이유 안에서 그냥 걸어 볼 일이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도보 여행이든 뭐든 가방을 무겁게 하는 것일 뿐이다. 그냥 걸어 보시라. 특히 <쫄븐갑마장길>은 제주도에 가는 그 누구든 걸어도 좋을 것이다.
여행은 언제나 여행자를 설레게 한다.

## <쫄븐갑마장길 가는 방법> 

- 쫄븐갑마장길은 진입로까지 가는 대중교통이 없다. 원점회귀 코스이므로 자동차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고, 가장 가까운 가시리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갑마장길’ 20km 전체코스를 걷는 방법이 있다.

- 제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표선민속촌방면 버스를 타고가다 가시리정류장에서 하차. 제주시외버스터미널 (064)753-1153

- 표선콜택시(064-787-5588), 표선콜(064-787-7733)

▶ [라이프] 곶자왈에서 쉬고, 오름에서 억새와 춤을 추다 - 제주 쫄븐갑마장길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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