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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파동' 우려에 몸 낮춘 대법원장…'판사회의' 전격 수용

양승태 대법원장이 17일 일선 판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사법행정권 남용'을 논의하는 전국적 판사회의를 열겠다고 밝힌 것은 점차 확산하는 판사들의 반발 움직임과 사법행정 개선 요구에 따른 대책으로 풀이된다.

앞서 전국 최대 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은 15일 각급 판사 가운데 단독판사 53명이 모인 단독판사회의를 열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사법부를 만들기 위해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심각한 사태"가 벌어졌다며 개선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다른 법원들도 이보다 먼저 회의를 열었거나 향후 열기로 하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되자 결국 대법원장은 판사들이 함께 모여 문제점을 토론하고 의견을 모을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양 대법원장의 이 같은 입장 발표는 '대법원의 사법개혁 저지 시도' 의혹이 본격적으로 공론화한 지 두 달여만이다.

애초 이 사건은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의 임종헌(58·사법연수원 16기) 차장이 대법원장에게 비판적인 판사들의 학술행사를 축소하라고 행정처 휘하 판사에게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며 파문을 낳았다.

이 과정에서 전국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장의 의중을 받들어 지나칠 정도로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 일선 법원 행정과 판사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최근 수년간 법조 환경의 큰 변화가 이어지면서 퇴직 법관이 줄어들고 '평생법관제' 등에 따라 계속 근무하는 판사는 늘어나면서 인사 적체가 심해졌고, '황제노역 판결' 등의 여파로 그간 운용돼온 지역법관 제도까지 사실상 개편돼 판사들이 근무지역을 더 빈번히, 더 광범위한 곳으로 옮기게 되는 상황이 됐다.

이처럼 환경 변화에 따라 법관들이 인사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여건이 된 가운데 사법부 내부적으로는 사법행정을 기획·실행하는 소수의 법원행정처 내 판사 자리가 대표적인 승진 코스로 인식되며 그렇지 않은 판사들이 상대적인 박탈감이나 위화감을 느낀 점도 사안의 심각성을 키우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이인복 전 대법관이 이끄는 법원 진상조사위원회는 3월 말부터 4월 중순까지 26일간 이번 사태를 조사해 임 차장이 아닌 법원행정처 소속 이규진(55·18기) 전 상임위원이 행사 축소 등을 지시하는 등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고 인정했다.

이 전 위원이 부당 지시를 했다는 행정처 심의관이 속한 핵심 부서 컴퓨터에 사법부에 비판적 입장을 개진해온 판사들에 관한 신상정보가 이른바 '블랙리스트'처럼 정리된 자료가 있다는 의혹이나 이번 사태와 대법원장의 연관성에 대해선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판사들은 조사위의 결론에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서 더욱 충실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과 전국 단위 법관회의 개최 의견 등이 분출됐다.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엔 대법원장이 직접 입장을 표명하라는 요구와 전국 법원이 대표 판사를 뽑아 회의를 열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는 서울동부지법, 서울중앙지법 등의 실제 판사회의로 이어지며 '사법파동'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고 결국 양 대법원장은 그간의 논의 결과를 토대로 고민한 끝에 입장을 표명하게 됐다.

한마디로 양승태 대법원장 체제하에서 법원이 보수화 되고 관료주의화까지 심화된데 따른 일선 법관들의 불만이 이번 사태의 기저에 깔려있다는게 서초동 주변의 분석이란 점에서 양 대법원장의 이번 조치로 사태가 수습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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