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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유리알 휴전, '시리아 안전지대'의 진실

IS 격퇴전에서 시리아가 이라크보다 진행이 더딘 이유는 뭘까요? 이라크는 IS 대 이라크 정부라는 양자 대결 구도가 뚜렷한 반면 시리아는 내전에 개입한 당사자가 너무 많고 또 이해관계로 서로 다른 점이 크게 작용합니다.

시리아 정부와 반군, 미군, 국제동맹군, 러시아, 터키, 쿠르드까지 개입한 조직과 국가가 많죠. 반군은 또 터키의 지원을 받는 반군과 알카에다 계열의 반군 등 10여개 조직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각자의 이해에 맞게 군사 행동에 나서다 보니 반목과 대립이 심화되고 덕분에 IS 격퇴전도 속도를 내기 힘듭니다. IS가 이라크에서 80%의 점령지를 잃으며 괴멸 위기에 놓였지만 시리아에서 여전히 동부와 중부를 중심으로 세력을 유지하는 점도 이런 이유에서죠.

이런 복잡한 시리아 내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습니다. 바로 ‘안전지대’ 설정입니다. 간단히 설명하면 시리아의 4지역을 총성 없는 평화지대로 설정하자는 겁니다. ‘휴전’과 비슷한 의미로 이해하면 됩니다. 러시아와 터키가 주도해 지난 6일부터 발효가 됐습니다. 안전지대에선 시리아 정부와 반군간 전투가 중단되고 외국군의 공습도 금지됩니다. 통폭탄도 사린가스폭탄도 사라지는 거죠. 안전지대 주민에 대한 구호활동과 인프라 재건도 진행됩니다.
시리아 폐허
● 총성 없는 안전지대 

안전지대로 설정된 지역은 1.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 (라타키아,하마,알레포 포함) : 2. 서부의 홈스 3. 동부의 구타(다마스쿠스 외곽), 4. 남부 요르단 인접 지역 (데아라) 입니다. 이른바 ‘온건’반군이 장악한 지역이 적지 않습니다. 안전지대를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 러시아는 휴전이 적용되는 반군지역과 테러조직 지역을 명확히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IS는 물론 자바트 알누스라 같은 알카에다 계열 반군과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 점령지도 안전지대에서 제외됐습니다. 

실효성에 반신반의했는데 의외로 초반엔 무력사용 금지가 잘 지켜지는 듯 합니다. 해당 안전지대에서 교전은 물론 공습도 확 줄었다고 합니다. 수백만 명의 시리아 주민이 총성 없이 두 다리 뻗고 잘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셈이죠. 정부군과 반군간 싸움은 잠시 접고, 그 사이 당면한 위협인 IS 격퇴에 치중하자는 논리는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이행만 잘 되면 안전지대를 점차 확대할 수도 있고, IS를 박멸한 뒤 정부군과 반군간 대화로 7년 째 이어진 시리아 내전을 종식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벌써부터 나옵니다.
시리아 안전지대 : 빗금 친 지역이 안전지대
● Safe Zone과 de Escalation Zone

‘안전지대’ 설정은 사실 처음 나온 이야기는 아닙니다. 터키가 지난해부터 줄곧 주창해 왔고, 트럼프도 최근에 안전지대를 들먹거렸습니다. 터키의 안전지대 이야기는 뒤에서 다루고, 트럼프의 ‘안전지대’와 러시아가 주도한 ‘안전지대’는 의미와 목적을 비교해보죠. 국내 언론에선 편하게 둘 다 ‘안전지대’로 통일하지만 그 내용은 사뭇 다릅니다. 영어로 보면 이해가 쉬운데 트럼프의 것은 말 그대로 안전지대 ‘Safe Zone’으로 불리고 이번 안전지대는 ‘de Escalation Zone’으로 씁니다. ‘에스칼레이터’가 어떻게 작동하죠? 계단식으로 한 칸 한 칸이 올라가는 방식이죠. 여기에 부정어인 DE- 가 붙었으니 ‘단계적 긴장 완화 지대’ 라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휴전 같지만 완전한 휴전은 아닌 지역이죠.

트럼프의 안전지대는 내전으로 고향을 등진 시리아 난민이 원래 삶터로 돌아가거나 제 3국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안전하게 체류할 수 있는 지대를 시리아와 인근 지역에 만들겠다는 구상입니다.언뜻 보기엔 난민 보호 같지만 사실은 난민 차단 정책의 일환입니다. 난민이 여기저기 밀입국하고 멋대로 몰려들어오지 못하게 ‘가둬 두겠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럼 이 안전지대의 유지비용은 누가 댈 것이냐? 트럼프는 ‘걸프국이 내게 하겠다’ 라고 아주 무책임하게 한마디 뱉고 말았죠. 국제사회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고, 감금과 같은 조치를 시리아 난민이 반가워할 리도 없고 해서 흐지부지 됐습니다.
시리아 구조 : 사린가스와 통폭탄 걱정 없는 평화가 올까요?
● 둘이서 북 치고 장고 치고?

러시아와 터키가 주도한 ‘시리아 안전지대’, 잘만 운영되면 평화정착의 기틀이 될 수 있지만 국제사회는 아직도 실효성에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입니다. 휴전 같지 않은 휴전, 유리알 휴전, 살얼음 평화, 뭐 그런 말이 자꾸 나옵니다.  왜 그런지 살펴보죠. 

안전지대 설정의 가장 큰 약점 합의 주체에 정작 내전의 당사국은 빠져 있다는 겁니다. 시리아 정부를 지원하는 러시아와 반군을 밀어주는 터키가 손을 맞잡았다고 하더라도 시리아 정부와 반군은 정작 합의에 빠졌습니다. 수니파인 반군 측은 시아파인 이란이 안전지대 보증국 자격으로 합의에 참여한 데 반대하며 합의를 거부했습니다. 러시아,시리아와 한통속인 이란이 하는 보증을 누가 믿을 수 있냐는 것이죠.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럴만한 이유는 뒤에 덧붙이고.. 시리아 정부도 러시아의 결정에 암묵적으로 따르는 모양새지만 안전지대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수틀리면 언제든 다시 반군을 때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시리아 사태에서 빠질 수 없는 나라, 미국도 이번 합의에 빠졌습니다. 미국은 더구나 안전지대에 대해 여러 의문점을 제기하며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비행금지 결정과 상관없이 미국은 IS나 알카에다 반군 같은 테러조직을 안전지대라도 계속 폭격하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이 테러조직 공격을 명분으로 안전지대를 공습하면 러시아나 시리아 정부군이 대공 미사일로 대응에 나설 수 있다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유엔은 빠져!” 셀프 감시?

미국은 큰 틀의 합의만 있지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 제시가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안전지대’의 안전을 누가 보장하느냐? 부분이 그렇습니다. 이란이 보증국으로 나섰다지만 미국은 이란을 믿을 수 없는 존재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안전지대 합의를 누가 감시하고 통제할 것이냐도 의문입니다. 반군지역을 시리아 정부군이 들어와서 지킬까요? 러시아군을 반군들이 믿고 그들의 통제를 따를까요? 이란은 더더구나 안 믿겠죠. 보통 분쟁 종식 지역은 유엔의 평화유지군이 일정기간 들어와 휴전이행을 감시하는데 시리아 정부는 유엔이 감독하는 어떤 형태의 외국군을 안전지대에 두지 않겠다며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 

또, 안전지대의 경계선이 모호하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대충 어디 어디가 안전지대라고 적긴 했지만 정확히 어디서부터 어디라는 경계를 정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동네가 안전지대인 줄 알고 다리 뻗고 자다가 통폭탄을 맞아도 하소연 못 할 수 있다는 이야깁니다. 객관적이고 독립적인 감시주체가 없는 상황에서 러시아와 시리아정부가 제멋대로 안전지대의 범위를 운영하면서 공격대상도 맘대로 지정하면 지금이나 다를 게 뭐냐는 반문이 나옵니다. 
시리아 반군 : 안전지대가 자칫하면 반군의 감옥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 반군의 감옥?

안전지대가 주로 반군지역이라는 점을 뒤집어 보면 반군을 무장 해제 시킨 뒤 포위해버리는 꼼수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안전지대로 지정된 지역에 군사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는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는 다른 지역의 반군에 화력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집중포화를 맞게 된 타 지역의 반군은 화력의 열세 때문에 자연히 안전지대로 이동할 수 밖에 없겠죠. 실제로 다마스쿠스 북부 반군은 7년 간 싸워온 점령지를 버리고 철수를 단행했습니다. 손 안 대고 코 푼다고 시리아 정부 입장에선 장악 지역을 넓히면서 반군을 무장해제시켜 울타리 안에 가둬버리는 1석 2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반군을 가둬두고 군사력을 집중해 IS를 먼저 쳐낸 뒤 고립된 반군을 특유의 고사작전으로 말려 죽이는 내전 승리의 방정식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쿠르드가 점령한 시리아 북부가 안전지대에서 제외된 점도 간과해선 안 됩니다. 안전지대 설정은 사실 터키가 맨 처음 주장한 겁니다. 터키 국경과 인접한 시리아 지대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자는 내용이죠. 터키로 난민이 밀려드는 걸 막는 동시에 IS보다 미워하는 쿠르드족이 시리아 북부에 세력을 확대하는 걸 차단하려는 속내가 깔려 있습니다. 이번 안전지대는 시리아 북부를 손에 쥔 쿠르드지역은 빠져 있습니다. 터키로선 쿠르드 격퇴전에 온전히 화력을 집중할 기회가 생긴 겁니다. 안전지대에 갇힌 반군을 쿠르드 격퇴전에 동원할 수도 있겠죠. 터키 국경 코 앞인 자라블루스를 쿠르드가 점령하자 터키는 반군한테 중화기를 지원해 쿠르드를 내쫓았습니다. 이게 ‘유프라테스 방패 작전’입니다. 그런데 시리아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가 누굽니까? 미군의 지상군 역할을 해주는 IS의 천적입니다. 미군은 터키의 반대도 무릅쓰면서 쿠르드민병대를 ‘중무장’시키기로 결정할 정도로 인민수비대를 중시하고 있습니다. 터키가 쿠르드를 공격하면 미국이 가만히 있을 것인가? 극과 극은 통하는 시대, 독재자 에르도안과 럭비공 트럼프의 로망스가 계속 이어질까? 오히려 내전에 혼란만 가중시키는 건 아닐지? 여러 추측이 나옵니다.
유엔 안보리 : 안전지대가 제대로 지켜지기 위해선 국제사회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담금질은 국제사회의 몫 

시리아 안전지대 설정이 내가 내놓은 가설들처럼 우려만 가득한 건 아닙니다.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평화를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지옥을 여는 열쇠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의 공감대와 지지세력 형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안전지대 합의를 주도한 러시아가 바쁘게 움직입니다. 일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시리아 안전지대’ 설정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제출했습니다. 러시아는 그 동안 시리아 문제에 늘 거부권을 행사하며 국제사회의 평화 의지와 알아사드 제재를 방해해 왔는데 보기 드물게 스스로 시리아 평화해법을 내놨습니다. 유엔 안보리는 이번 주 이 문제를 논의할 예정입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도 회의에 참석합니다. 과연 미국을 비롯한 서방이 ‘시리아 안전지대’에 어떤 입장을 내놓을 지 주목됩니다. 

이번 주에 스위스 제네바에선 유엔이 주도하는 시리아 평화회담을 재개합니다. 러시아와 터키가 주도한 안전지대 설정이 주요 의제가 될 전망입니다. 시리아 정부는 물론 반군대표단도 참석하는 만큼 내전 당사자의 동참과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낼 지 관심입니다.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이미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라브로프는 미국과 안전지대 운영에 대한 일정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를 했다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미국으로선 안전지대를 동의하는 게 시리아에서 주도권을 러시아에 뺏기는 건 지, 유리알 같은 휴전에 발을 잘못 담그는 건 아닌지, 동의하는 보답으로 얻을 건 뭔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을 겁니다. 

일이 잘 풀려서 국제사회의 지지와 함께 내전 관계집단이 아닌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감시가 가능하다면 시리아에서 IS 격퇴는 물론 평화의 날은 오랜 기다림만큼 성큼 다가올 수도 있을 겁니다. 틀은 마련됐습니다. 안전지대가 잔혹한 아사드 정권를 구하고 독재에 항거한 저항을 짓누르며 러시아와 터키의 야욕을 채워줄 도구로 전락하지 않는, 7년간 지옥에서 고통 받은 시리아 민중을 평화로 인도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국제사회의 치밀한 한 수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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