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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바닷길, 들길, 산길, 3색(色)의 합주를 듣고, 보다 - 제주 올레길 2코스 ①

광치기 해변의 돌빌레
다시 광치기 해변이다.

제주 올레 2코스는 이 곳 광치기 해변에서 시작된다. 눈을 부릅뜨고 다시는 길을 잃고 헤매지 않겠노라 다짐에 다짐을 한다. 하지만 문득, 또 어떻게 생각해 보면 길 위에서 길을 잃고 헤맨다는 것이 꼭 실패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어딘가를 헤맨다는 것은, 그 어딘가를 가봤다는 의미도 있는 것이고, 원래 과정이란 시행착오의 연속이 아니던가. 

가고자 한다면, 길은 시간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열릴 것이라는 긍정의 마인드로 무장을 해 본다.
가고자 한다면, 길은 저절로 열린다.
제주 올레 2코스는 광치기 해변에서 온평리 해변에 이르는 14.5km의 여정이다. 난이도는 중간 쯤? 물빛 고운 바닷길부터 잔잔한 저수지를 낀 들길, 호젓한 산길까지 색다른 매력의 길들이 이어진다.

광치기 해변을 벗어난 길은 서귀포시 고성 마을로 여행자를 이끈다. 고성 시내를 지나는 길이다.
어중간한 오전의 시간임에도 식당 앞은 줄선 이들로 북적였다.
어느 식당 앞이 분주하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도 식당 앞은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간판을 보면 국수를 파는 집인가 본데, 아침도 점심도 아닌 어중간한 시간임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에게서 저 식당의 국수를 반드시 먹겠다는 결의가 느껴진다. 나 역시 그 맛이 궁금하지만, 민박집에서의 든든한 아침이 아직은 국수를 허락하지 않을 듯싶다.
길은 대수산봉으로 향한다.
시내를 벗어난 길은 몇 순배의 마을길을 돌아 대수산봉으로 이어진다.

대수산봉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원래 ‘물뫼(물미)’라 했던 것이 동쪽에 이웃한 ‘족은물뫼(小水山峰)’와 구별하여 ‘큰물뫼(큰물미)’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한자로는 대수산봉(大水山峰)이 맞다. 다만 대수산이면 대수산이고, 대수봉이면 대수봉이지, 산(山)과 봉(峰)을 동시에 사용하는 지명이 조금은 낯설다. 
숲은 그 봉우리의 크기에 비해 꽤나 짙은 색깔을 드러낸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일정 탓이라 변명을 하지만, 고작 100여m 남짓한 봉우리 앞에서 후들거리는 저질 체력이 새삼 안타깝다.

길은 나무숲 사이로 이어져 있다. 숲에는 삼나무, 해송들이 저마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라, 그 봉우리의 크기에 비해 꽤나 짙은 색깔을 드러낸다. 여성들의 경우 둘 이상 짝을 지어 오르는 게 필요할 듯싶다. 성차별(^^)이 아니라, ‘만사불여튼튼‘이라지 않는가.
순백의 의자 하나. 존재만으로도 휴식이 된다.
두어 번 땀을 훔칠 즈음, 대수산봉의 정상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 놓인 순백의 의자 하나, 20여 분 남짓한 산행이었지만 그 수고로움을 위로라도 하는 듯 너른 품으로 도보 여행자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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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산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제주의 하늘과 땅
대수산봉에 서면, 정면으로는 성산 일출봉이 보인다. 오늘 아침 저곳에서, 지금의 이곳까지 걸어서 이동한 것이다. 4시간 남짓한 여정의 결과이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살짝 돌리면 섭지코지가 있다. 섭지코지는 긴 팔을 뻗어 한 아름의 바다를 안고 있다. 품 안에 든 바다가 더없이 편안해 보인다.

대수산봉은 탁 트인 전망 덕분에 제주의 숨겨진 일출 명소라는데, 언제 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지리산 천왕봉 일출을 보는 것이 그렇듯, 아마도 삼대(三代)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산을 내려가는 일은 언제나 위안이 된다.
내려가는 길은 순탄하다. 커피 박물관의 사유지라는 푯말을 보며, 머지않아 커피 박물관의 커피향내를 맡을 수 있을 거라는 짐작을 한다. 짐작대로 커피향을 맡을 수는 있었으나, 마시지는 못했다. 갈 길이 바빴기 때문이다. 스스로 정한 목표량이 있었던지라, 그걸 채우기 위해서는 바삐 걸음을 옮겨야 했던 것이다.
제주의 무덤과 산담(무덤 둘레에 쌓은 돌담)
산을 내려서자, 눈에 띄는 산담(무덤 둘레에 쌓은 돌담) 하나. 조상을 모시는 자세부터가 남다르다. 새삼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생각하게 한다. 
길의 유려한 유선(流線)의 이미지는 보고 또 봐도 아름다운 예술이다.
길은 밭담을 따라 늘어서 있다. 제주의 어느 곳을 가도 볼 수 있는 풍경인지라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한다. 하지만 밭담과 밭담 사이로 이어지는 길의 유려한 유선(流線)의 이미지는 보고 또 봐도 아름다운 예술이다. 여유가 있다. 굽이치는 길 모양이 소리 한 가락이 어느 지점에서는 저절로 흘러나올 것만 같은 음악성이 깃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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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애써 키운 무들을 저렇게 버려야 했을까?
안타까운 것은 그 아름다운 밭담 안의 농작물은 무슨 이유때문인지 파헤쳐지고, 버려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버려진 농작물은 무였다. 왜 애써 키운 무들을 저렇게 버려야 했는지 그 연유야 알 수 없었지만, 그 무를 키워낸 농부의 안타까운 마음이 내게로 이입이라도 되는 양 왠지 서늘하고, 또 안타깝다.
청보리의 푸르름이 차고 넘치고, 또 싱그럽다.
얼마를 더 갔을까. 청보리밭이다.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다.

겨울의 꽁꽁 언 땅 속에서 보낸 보리들은 그 인고의 시간을 대변하듯 자신만의 푸르름을 떨치고, 또 휘몰아친다. 푸르름이 차고 넘치고, 또 싱그럽다. 
황량한 벌판에 봄기운이 일렁이면 어느 생명보다 먼저 보리가 제 살아있음을 세상에 고한다.
내 어린 시절, 보리는 어느 작물보다 이른 시기에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는 농작물이었다. 황량한 벌판에 봄기운이 일렁이면 어느 생명보다 먼저 보리가 제 살아있음을 세상에 고한다. 텅 빈 들판에 푸릇푸릇한 싹을 튀어 놀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보리를 꼭꼭 밟아주어야 한다. 보리밟기가 필요한 것이다. 날이 풀리면 얼었던 흙이 들뜨게 되고, 그러면 보리 싹이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할 뿐만 아니라 수분공급이 원활하지 못해 말라죽기 때문이다.

그 시절 어린 마음에 이제 막 싹이 나오기 시작하는 놈을 매정하게 밟으면 짓뭉개진 보리들이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까 싶어, 제대로 밟지도 못하고 걱정을 했던 것이 벌써 아득한 옛일이 되고 말았다.
청보리에게는 엄혹한 계절을 이겨낸 자의 당당함이 있다.
푸르른 청보리는 멀리서 봐도 힘찬 기운이 느껴진다. 엄혹한 계절을 이겨낸 자의 당당함도 엿보인다. 동무들과 서로 어깨를 나누고 또 기대며 남쪽 섬나라의 거친 바람에도 꿋꿋하게 버티어내는 그들의 공고한 연대(連帶)는 자랑이 되고도 남을 듯싶다. 어찌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인가. 청보리 만세!
길 위에서 꽃들이 아는 체를 한다.
길은 다시 밭담의 호위를 받으며 이어지고 있었다.

길 위에는 과문한 탓에 이름을 알지 못하는 들꽃들이 도보 여행자에게 아는 체를 한다. 봄의 생동하는 기운은 꽃들의 휘황한 아름다움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길은 굽이쳐 흐르고, 걷는 이는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난다.
길은 굽이쳐 흐르고, 걷는 이는 길 위에서 사람을 만나고 봄을 다투어 맞는 생명들을 만난다. 그들과의 만남을 즐기기 위해서는 걸음을 멈추고, 또 더러는 느긋한 걸음으로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고 다가가기 위한 노력 역시 필요하다. 그냥 보았다고 그들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천천히 걸어라. 과정을 인식하고 또 즐겨라!
<순례자>를 쓴 코엘료는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느리게도 걷지 말 것이며, 언제나 길의 법칙과 요구를 존중하며 걸어가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길의 법칙과 요구는 스스로의 필요와 인식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간혹 길을 떠날 때, 우리는 그곳에 얼마나 빨리 도달할 것인가에만 매몰되어 있을 때가 많다. 그런 이유로 과정은 불필요한 절차로 인식되고, 더러는 고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생이 그렇듯, 여행 역시 과정의 예술이 아니던가. 과정을 인식하고 즐길 수 있어야만 여행도 인생도 즐거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인생이든 여행이든 탐색과 모험이 주는 기쁨을 발견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얼마간의 아스팔트길을 걷다가 짧지만 아늑한 길을 만났다.
산과 들을 벗어난 길은 온평리로 이어진다.

얼마간의 아스팔트길을 걷다가 짧지만 아늑한 길을 만났다. 가던 길을 돌려 그 길을 걷는데, 경운기를 몰고 가시던 팔순은 됨직한 할아버지가 말을 건다. 그런데 말투가 화가 난 느낌이다 . 내가 길을 잘못 들었나? 가면 안 되는 길이었나? 여러 생각을 하면서 할아버지 말에 귀를 기울였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외국어였다. 간간이 ‘~~합수꽈’ 류의 제주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건 표준어 바탕 위에 쓰는 제주도 말이었고, 할아버지의 말은 순수 제주도 말이었다. 그런데 말투까지 센 발음에 표정도 무표정한지라 그냥 ‘예예’하면서 대꾸는 했지만 대략 난감했다.
할아버지가 웃으시며 경운기를 몰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답답하신 듯했다. 그렇게 할아버지와 나는 서로 막막한 표정을 짓다가, 나중에는 웃음으로 헤어졌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원래 제주도 말이 경상도 말보다도 훨씬 센 발음이라고 한다. 그래서 외지인들은 제주도 사람들하고 대화할 때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단다. 할아버지 역시 별 뜻 없이 밭일 가시다가 혼자 걷는 외지인에게 무언가 정보를 주고픈 마음에, 또는 관심에 말을 붙인 것이었는데...... 나의 무지가 관심과 배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한 이유였다.
혼인지다. 탐라국의 시조인 ‘고, 양, 부’ 삼신인(三神人)이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를 배필로 맞아 혼인을 올린 곳이다.
혼인지(婚姻池)다. 

‘혼인지’는 제주 탐라국의 시조인 ‘고, 양, 부’ 삼신인(三神人)이 벽랑국에서 온 세 공주를 배필로 맞아 혼인을 올린 곳이라는 신화가 서려 있는 곳이다. 이후 세 공주가 가져온 송아지, 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리면서 제주도에 농경과 목축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하니, 국제결혼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세 쌍의 부부는 땅 속 바위동굴에서 잠시 동안 신접살림을 차렸다는데, 그 동굴은 아직도 보존되고 있다.
올레길은 나무 데크 길을 따라 이어진다.
연못을 에둘러 나무 데크로 만든 길이 아늑하다. 웨딩마치에 맞춰 퍼레이드를 하면 어떨까 싶은 길이다. 올레길은 이 나무 데크 길을 따라 이어진다.
마을은 유채꽃밭 너머에 있었다.
길은 혼인지 마을(온평리)을 지난다. 혼인지의 유명세는 마을 이름마저도 혼인지 마을로 개명을 시켰나보다. 길은 유채꽃이 소담스레 피어난 밭을 따라 마을로 이어진다.  

(다음 편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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