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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성산 일출봉에서 섭지코지를 가다 - 고성~신양 구간 산책로

[라이프] 성산 일출봉에서 섭지코지를 가다 - 고성~신양 구간 산책로

박대영 기자 cyumin@sbs.co.kr

작성 2017.05.10 18:45 수정 2017.05.11 10:44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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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대표 이미지:[라이프] 성산 일출봉에서 섭지코지를 가다 - 고성~신양 구간 산책로
민박집의 이른 아침이 분주하다.

주인 할머니의 아침 식사 준비 탓이다. 식당 옆방을 차지하고 밤을 보낸지라, 고등어 굽는 냄새까지 단잠을 깨우는 데 일조를 한다. 그렇게 주인 할머니의 부지런함이 더해진 푸짐한 아침상을 물리고, 식사 포함 2만 5천 원을 건네는 손길이 조금은 미안하게 느껴진다.
한적한 어느 아침, 성산 일출봉은 행인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민박집을 나서자마자, 성산 일출봉이 조금은 거만한(?) 자세로 내려다본다. 올라오고 싶으면 와 보라는 듯하다. 살짝 오기가 발동한다.

● 성산 일출봉을 오르다

수많은 계단이 조금은 버겁기는 해도,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것이 없는 것이 산이고 봉우리인지라 아침 댓바람부터 땀 좀 흘렸더니, 어느새 정상이다.
성산 일출봉의 정상분지는 휘뿌염한 안개 속에서 졸고 있었다.성산봉 분지는 흐린 날씨 탓에 일출은 고사하고, 가장자리가 안개에 가리운 채로 행인을 맞는다. 이른 아침인지라 오가는 이도 많지 않아 그야말로 고요의 분지였다. 이따금씩 물방울이 연못 위로 떨어지며 내는 소리인 양 피융피융~~ 맑은 새소리만이 아득히 정적을 깨운다.
성산 일출봉 정상의 나무 데크 관람석에 앉아 분지와 바다와 나를 본다.몇 년 전과 달리, 성산봉 정상은 나무 데크로 정비를 해놓은 탓에, 데크에 가만히 앉아 바다로 밀려가는 안개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빛살 사이의 찰나의 자리바꿈을 느긋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부산에서 오셨다는 노년의 부부께서는 내가 찍어 준 사진에 고맙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리신다. 나 역시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추억의 순간을 선물해 드렸으니, 그 분들도 한 번쯤은 나를 기억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봉우리 아래에 바다가 있고, 사람들이 살아간다.봉우리 아래로 펼쳐진 바다며, 사람 사는 마을이 아득하다.

해발 180m인 성산 일출봉은 약 5,000년 전 제주도 수많은 분화구 중에서는 드물게 바다 속에서 수중 폭발한 화산체라고 한다. 오래전에는 화산섬이었지만 신양해수욕장 쪽 땅과 섬 사이에 모래와 자갈이 쌓임으로써 육지와 연결되어 현재처럼 곶이 되었다고 한다. 2000년 7월 19일 천연기념물이자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아침 이슬 머금은 거미줄이 생경하다.내려오는 길에 만난 이슬 머금은 거미줄이 눈길을 붙잡는다.
까마득하게 아래로 펼쳐진 계단들이 아득하기만 하다.내려가는 길은 나무 데크 계단이다. 까마득하게 아래로 펼쳐진 계단들이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내려가는 길은 여유가 있다. 올라갈 때는 발끝 밖에 보이지 않았다면, 내려갈 때는 제주의 광대무변(廣大無邊)한 경관을 시야에 담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의 '내려 갈 때 보았네. /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처럼, 같은 길을 걸어도 눈은 제 편한 대로 세상을 볼 뿐이다. 나 역시 올라갈 때 못 본 동쪽 끝 제주의 모습을 내려갈 때 봤던 것이다.
성산봉이 가는 길을 배웅한다.성산 일출봉을 벗어나면 길은 광치기 해변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길은 제주 올레 1코스를 지나, 2코스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올레 2코스를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섭지코지에 다다를 때까지는 이 길이 2코스라는 믿음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길은 고성~신양 산책로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던 것이다. 
바다와 나란히 산책로는 이어지고 있었다. 해안을 따라 난 산책로를 걸었다. 성산 일출봉과 멀지 않은 해안 산책로에는 아침을 맞은 여행객들을 위한 커피숍이며, 해장국집까지 분주하다. 무심코 돌아본 성산봉은 파도의 너울 너머로 자꾸만 멀어지고 있었다.

● 다시 4.3 사건을 생각하다

얼마 가지 않아 제주 4.3 성산읍 희생자 위령비가 보인다.
제주 4.3 성산읍 희생자 위령비와 들국화'제주 4·3사건'이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제주 다랑쉬 동굴에서 발견된 4.3 사건 희생자들 유골(자료사진)1947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에서 단독으로 무장대를 조직하여, 경찰지서를 기습함으로써 사건이 시작되었다고 '제주 4.3 사건'이라고 불리지만, 실상은 1947년 3월 1일부터 시작되어 한국전쟁이 휴전될 때까지 계속된 사건이라고 한다. 이 사건으로 14,032명(진압군에 의한 희생자 10,955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 1,764명 외(外))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 위키백과)
터진목 해안가에 세워진 제주 4.3 성산읍 희생자 집단 학살터 표지석과 성산 일출봉4.3 사건 와중에 성산읍에서도 445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였는데, 이 중에서 약 200명이 이곳 터진목 해안가에서 학살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010년, 그날의 희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가 세워졌다.

위령비에는 시 한 수가 새겨져 있다.

섬의 우수
                             강중훈

여기 가을 햇살이
예순 두해 전 일들을 기억하는 그 햇살이
그때 핏덩이 던 할아비의 주름진 앞이마와
죽은 자의 등에 업혀 목숨건진
수수깡 같은 노파의 잔등위로 무진장 쏟아지네

(중략)

숨비기나무 줄기 끝에
철지난 꽃잎 몇 조각
핏빛 태양 속으로 목숨 걸듯 숨어드는데
섬의 우수 들불처럼 번지는데
성산포 4.3 희생자위령제단 위로
뉘 집 혼백인양 바다갈매기 하얗게 사라지네.



광치기 해변의 '돌빌레' ● 돌빌레의 땅, 그리고 바다. 광치기 해변

길은 광치기 해변으로 나아간다.

광치기 해변은 밀물과 썰물의 차이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광치기 해변의 매력은 바로 썰물 때 드러나는 넓은 암반지대와 성산일출봉이 함께 어우러진 멋진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암반지대를 '돌빌레'라고 하는데, 땅에 묻힌 넓적한 바위를 말한다고 한다.
바다와 바다를 가르는 '돌빌레'는 수억 년 전 그 뜨거운 기억은 잊은 듯하다.무심히 백사장을 따라 걷던 걸음은 어느새 돌빌레로 다가가고 만다. 초록 이끼로 뒤덮인 돌빌레는 먼 곳에서도 행인의 발걸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수억 년 전 화산의 흔적들은 바닷가로 밀려 나와 그 옛날 뜨겁게 끓어오르던 열정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광치기 해변은 뜨거웠던 돌빌레가 침묵하는 바위가 되어 버린 현장이다.갑자기 안도현 시인이 어디선가 달려와서는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고 다그칠 것 같은 그런 뜨거움조차도, 이제는 유치환 시인이 노래했던 '아예 애련(愛燐)에 물들지 않고 /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 억년(憶年) 비정의 함묵(緘默)에 /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한 채로 침묵하는 바위가 되어 버린 현장이 광치기 해변의 돌빌레다.
 말 팔자가 상팔자다.느긋한 길이 나타난다. 근처 숙소에서 아침 산책을 나온 이들이 여유롭다.

그런데 그들보다 더 여유로운 이가 있었으니, 말이다. 낯선 방문자를 향해 입으로 두어 번 푸드득 대더니 이내 얌전하게 앉은 채로 지나는 이를 스캔한다. 그러더니 시덥지 않다는 표정을 짓고는 바로 휴식 모드로…. 귀찮게 하지 말고 빨리 지나가라는 뜻이리라.(^^)
해녀들이 물질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 운명은 해녀가 되라 했고, 해녀는 운명을 개척한다.

얼마를 더 갔을까. 운 좋게도 물질을 나가는 해녀들을 만날 수 있었다.

공동 작업장에서 필요한 어구를 챙기고 물옷으로 갈아입은 해녀들이 줄지어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테왁과 망사리를 걸머진 채로 작업장으로 걸어가는 해녀들의 행렬이 사뭇 장엄하다. 
테왁과 망사리를 걸머진 채로 작업장으로 걸어가는 해녀들의 행렬이 사뭇 장엄하다.'테왁'은 부력을 이용한 작업 도구로, 몸을 얹어 해엄치거나 물질 중간에 수면에서 쉴 때 사용한다. 과거에는 테왁을 '박'을 이용해 만들었으나, 최근에는 스티로폼을 천으로 싸고 나일론 끈을 묶어 사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테왁에 달린 그물주머니를 '망사리'라고 하는데, 망사리는 채취한 해산물을 보관하는 도구로 테왁과 함께 사용한단다.
해녀의 삶은 바다와의 쟁투의 연속이다.성산 일출봉이 가만히 내려다보는 광치기 해변의 돌빌레에서 해녀들의 삶의 쟁투가 시작된다.

몸이라는 가장 순수한 도구를 활용한 신성한 노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삶이라는 지엄한 현실에 순응하며, 또 대응하기 위해 그네들은 바다와 동거동락(同居同樂)하며 살아왔고, 또 살고 있는 것이다.
물질은 몸이라는 가장 순수한 도구를 활용한 신성한 노동의 상징이다.보통 제주 해녀는 숙련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산소공급 장치 없이 10미터 정도 깊이의 바다 속에서 1~2분 남짓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한다고 한다. 해녀가 잠수했다가 물에 떠오를 때, 긴 숨을 내뱉는데 그 숨 쉬는 소리를 '숨비소리'라 한다.
'숨'과 관련해 제주 해녀들에게 금기어가 있다면, 그것은 '물숨'이다.제주 해녀를 다룬 다큐 영화 <물숨>에 따르면, '숨'과 관련해 제주 해녀들에게 금기어가 있다면, 그것은 '물숨'이란다.

물숨이란 해녀들이 일컫는 물속에서의 호흡이면서, 해녀들이 물속에서 '좋은 물건'을 발견했을 때 내는 마음의 숨이란다. 좋은 물건을 남보다 더 빨리, 더 많이 가지려 자신이 지닌, 또 어쩌면 타고난 '숨의 길이'를 넘어 서고자 할 때 찾아오는 마지막 숨이 물숨이고, 해녀들의 표현대로 '물숨'을 먹으면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결국, 물숨이란 잘라내지 못한 욕망의 상징이면서, 불행의 씨앗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래된 해녀들은 딸에게 맨 먼저 물숨부터 피하는 방법을 가르쳐준다고 한다. 그 방법은 욕심이 가져올 파국을 경계하는 것이며, 능력만큼만 욕심내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이치를 체득하는 일일 것이다.
 물숨이란 잘라내지 못한 욕망의 상징이면서, 불행의 씨앗이다.
제주 해녀들에게도 등급이 있다. 그 등급은 그들의 물질 기술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한번 잠수해 2분가량 바닷속에 머무르는 상군은 수심 15m 이상의 바다에서 작업하는 베테랑 해녀이고, 중군은 수심 8~10m, 하군은 5~7m에서 작업한다고 한다.
해녀로서의 의무와 삶의 자세는 해녀와 해녀 사이에서 전수되며. 또 계승한다.특히 상군 해녀는 오랜 기간 물질을 한 까닭에 물질기량이 뛰어나고, 해당 지역의 물 속 지형이나 해산물에 대한 식견이 높아 아래 급의 해녀들에게 물질 기술뿐만 아니라 해녀로서의 의무와 삶의 자세를 전수하며 그들만의 공동체를 유지, 발전시키는 책무를 진다고 한다.

그렇게 물질은 다른 해녀의 물질을 보고, 다른 해녀의 경험을 듣고, 또한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우면서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에게서 딸로, 시어머니에게서 며느리로, 나아가 제주 해녀 공동체라는 큰 틀에서도 끊임없이 세대 간에 전승되고 있는 중이다. 
바다는 일터이면서, 또 두려움이다.2016년, 제주 해녀가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 역시, '제주해녀문화'가 지역의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상징한다는 점, 자연 친화적인 방법으로 지속가능한 환경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점, 관련 지식과 기술이 공동체를 통해 전승된다는 점 등을 높이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해녀의 고령화로 해마다 그 수가 줄고 있다.다만, 아쉬운 점은 해녀 수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도청 자료를 보면, 제주 해녀 수는 1970년 1만 4,143명에서 2015년에는 4,377명으로 줄었고, 특히 지난해 말에는 4,005명으로 크게 줄었다고 한다. 그만큼 고령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 할 것이다.
해녀들이 넘실대는 바다 속으로 걸어간다.파도가 넘실대는 바다 속으로 그들이 걸어간다.

여행자에겐 아직은 차가운 바다가 온몸이 오그라드는 듯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그네들에겐 삶의 익숙한 일상이며, 거친 바다의 몸부림에도, 하얗게 부서지며 달려드는 파도마저도 극복해야 할 대상이면서 또 운명일 것이다.

그렇게 뚜벅뚜벅 바닷속으로 걸음을 옮기며 나아가는 '삶의 전사'들의 의연한 '포스'가 바다를 압도한다.
바다에는 파도가 일고, 갈매기는 저 홀로 한가롭다.발길을 돌려, 다시 길 위에서 길을 길어간다.
화산 폭발로 바다로 밀려든 용암들은 산을 만들기도 하고, 더러는 넓게 퍼져 너럭바위를 만들기도 했다.해변을 따라 걷노라면 이곳저곳에서 넙적 바위인 돌빌레가 행인의 시선을, 또 붙잡는다. 푸른 이끼 옷을 입은 돌빌레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화산 폭발로 바다로 밀려든 용암들은 산을 만들기도 하고, 더러는 넓게 퍼져 너럭바위를 만들기도 했던 것이다.
바위틈 사이로 바다가 흐른다.돌빌레의 틈들 사이로 바다가 흐르고, 하늘이 열린다.
나무 데크에 오르면, 그 자체로 전망대가 된다.나무 데크로 된 길이 나온다. 나무 데크에 오르면, 그 자체로 전망대가 된다. 바다는 잿빛 하늘을 이고 가없이 이어지고 있었고, 한 성깔 하는 파도는 섬으로 섬으로 자꾸만 밀려들어 제 몸을 뭍에다 들이받는다. 그리고 스러져 간다.

● 섭지코지에 이르다.

눈을 들면, 저 멀리 반도처럼, 또 곶인 양, 섭지코지가 아스라이 보인다. 가야 할 곳이다.
섭지코지의 검은 팔다리가 바다에 빠져있다.바다와 동행하던 길은 신양해수욕장을 지나고, 드디어 섭지코지에 이른다.

그런데, 헐~ 이정표가 없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지금까지 걸었던 길이 제주 올레 2코스인 줄만 알았던 내게 부리나케 찾아본 올레 안내 책자는 이 길이 2코스가 아니란다. 바다를 에둘러 가는 곧은 길이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2코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수중 생태공원인 아쿠아 플라넷 앞에서 길을 잃은 채로 미아가 되고 말았다.
섭지코지에는 붉은 화산재 송이로 덮여 있고, 해안가에는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섭지코지는 여러 번 와 본 곳이었지만, 올 때마다 풍경이 달라진다. 제주도 어디건 개발의 열병을 앓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이 섭지코지가 아닐까 싶다. 리조트 단지로, 놀이공원으로 완전히 변모를 하고 말았다. 풍광이 뛰어나다는 섭지코지의 자랑이 도리어 개발의 손길을 부르는 역설의 현장이 돼 버린 것이다.

드라마 <올인>의 촬영지가 되면서 유명해진 탓이 아닐까 싶다. 그 흔적은 아직도 '올인 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섭지코지의 명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저 멀리 올인하우스가 보이고, 옆으로는 선돌바위가 보인다.섭지코지라는 이름은 제주 말로 ‘좁은 땅’이라는 의미의 '섭지'와 '곶'을 의미하는 '코지'가 붙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섭지코지에는 어느 해안과는 달리 붉은 화산재 송이로 덮여 있고, 해안가에는 수많은 기암괴석들이 즐비하다. 특히 '선돌바위'는 용왕의 아들과 선녀 간의 못다 한 사랑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는 설명이다.
 다시! 어디로 갈 것인가?자! 이제는 어디로 간단 말인가?

제주올레 2코스인 줄만 알고 걸었던 길이 2코가 아니었다니…. 광치기 해변에서 길을 틀어 마을 길로 향해야 했었는데…. 그곳에서 깜박 길을 놓친 것이다.

택시를 탔다. 택시는 광치기 해변으로 간다. 어쩔 수 없이 계획했던 올레 2코스를 걸으러 그 시작점으로 가는 것이다. 


<고성~신양 구간 산책로 가는 길>

- 광치기해변 버스 : 701번, 710번, 910번 -> 광치기 하차
- 섭지코지, 아쿠아플라넷, 신양해수욕장에서 나가는 버스는 '신양리' 정류장에서는 910번, '신양리 입구' 정류장에서는 701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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