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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봅슬레이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를 떠나 보내다

시력 장애 이겨낸 美 봅슬레이 영웅…못 이룬 평창 꿈

[취재파일] 봅슬레이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를 떠나 보내다
미국 봅슬레이의 영웅 스티븐 홀컴이 지난 6일(현지시간) 아침 미국 뉴욕주 레이크플래시드의 미국 봅슬레이 대표팀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홀컴은 내년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비해 하계 시즌 훈련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그의 죽음에 미국 스포츠계는 충격에 빠졌고 슬픔에 잠겼습니다.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도 이보 페리아니 회장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고 그의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시했습니다. AP통신은 "부검 결과 그의 사인이 '폐 울혈'로 추정되는데 그것만으로는 사망 원인이 충분히 규명이 되지 않는다며 추가로 독극물 검사 결과가 나와야 최종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 1차 조사에서 일단 약물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 "홀컴은 현역 최고의 드라이버"
미국 봅슬레이 선수 스티븐 홀컴
홀컴은 현역 봅슬레이 선수 가운데 최고의 '드라이버'로 꼽혔습니다. 주행 기술에서는 단연 최고라는 것입니다. 1980년생인 그는 세계 상위 랭킹 선수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던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 순발력이 떨어지고 체중이 불어나면서 스타트 기록은 갈수록 처졌지만 이 약점을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노련한 주행으로 보완했습니다.

이용 봅슬레이 대표팀 총감독은 주저 없이 홀컴을 가장 드라이빙을 잘하는 선수로 꼽았습니다. 홀컴이 월드컵 때 스타트 기록이 20위 정도에 불과했지만, 최종 기록에서는 2~3위를 하곤 했다며 그의 탁월한 주행 기술에 감탄했습니다. 봅슬레이에서는 스타트 기록에서 0.1초 차이가 나면 최종 기록에서는 0.3초 차이가 날 정도로 스타트가 중요한데, 홀컴은 이같은 통념을 깨고 주행으로 스타트의 약점을 보완해온 것입니다. 그리고 봅슬레이 선수로서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계 정상권을 지켰습니다.

이용 감독은 홀컴의 주행 영상을 우리 대표팀의 교본으로 활용한다고 전했습니다. 주행 능력만 놓고 봤을 때는 홀컴이 지난 시즌 세계랭킹 1위인 독일의 프리드리히보다 뛰어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늘 홀컴의 주행 영상을 보고 분석해서 그런지 그가 더욱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전했습니다.

홀컴은 2010년 밴쿠버 동계 올림픽 봅슬레이 남자 4인승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1948년 생모리츠 대회 이후 62년 만에 미국 봅슬레이에 금메달을 안겼습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도 2인승과 4인승에서 모두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세계선수권에서도 금메달 5개를 비롯해 모두 10개의 메달을 획득했고, 월드컵에서는 6차례 금메달을 비롯해 모두 60개의 메달을 수확했습니다. 그야말로 미국 봅슬레이의 영웅이었습니다. 지난 2016-2017 시즌에도 2인승 세계 랭킹 2위, 4인승 세계 랭킹 3위를 차지하며 여전히 녹슬지 않은 기량을 선보였고, 내년 평창 올림픽에서도 유력한 메달 후보로 꼽혔습니다.

● "우리 대표팀과도 친했던 홀컴"
지난 3월 평창 월드컵 때 인터뷰 중인 스티븐 홀컴
홀컴은 지난 3월 평창에서 열린 월드컵 8차 대회 때 우리나라를 찾았습니다. 그때가 첫 방한이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저는 홀컴과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처음 경험하는 평창 트랙이 아직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매우 흥미로운 트랙이라고 말했습니다. 홀컴은 평창 월드컵에서 2인승 14위, 4인승 10위로 다소 부진했지만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주행 경험만 더 쌓는다면 내년 평창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할만하다고 희망을 얘기했습니다.

이용 감독은 홀컴과 우리 대표 선수들 사이의 에피소드도 소개했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홀컴과 지난해부터 친해졌습니다. 계기는 우리 대표팀을 지도했던 영국인 말콤 로이드 코치의 갑작스러운 사망이었습니다. 우리 선수들은 당시 봅슬레이 앞에 로이드 코치의 사진을 붙이고 애도를 표시했는데 이를 보고 홀컴이 우리 대표팀에 경의를 표했다고 합니다. 그는 우리 선수들에게 다가와 "코치를 단순히 코치가 아니라 가족처럼 여기는 모습이 보기 좋고 존경스럽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이후 홀컴은 대회와 전지훈련 때 우리 선수들을 보면 먼저 다가와서 안부를 묻고 평창 트랙에 대해서도 묻는 등 친근감을 표시했습니다. 홀컴의 성격이 다소 내성적이어서 친해지기가 쉽지 않았지만 이를 계기로 급속도로 가까워졌는데 비보를 접해 너무 충격적이고 슬프다고 이용 감독은 말했습니다.

● 시력 장애로 자살까지 기도했던 홀컴
홀컴의 사망을 애도하는 국제 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홈페이지
홀컴에게는 과거 아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는 2007년 퇴행성 시력 장애로 실명 위기에 빠졌습니다. 실의에 빠진 그는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기도했습니다. 수면제를 복용해 자살을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이후 홀컴은 콘텍트 렌즈를 눈에 이식하는 수술을 받고 실명 위기를 넘겼고 재기를 위해 구슬땀을 흘렸습니다.

이때 그는 잘 볼 수는 없지만 '느낌'으로 조종하는 자신만의 비법을 터득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처럼 다시 일어섰습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딴 것입니다. 시련과 장애를 딛고 일어선 그는 2012년 '이제는 볼 수 있습니다. 시력 장애를 딛고 올림픽 금메달까지'(But Now I See: My Journey from Blindness to Olympic Gold)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펴내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부터 3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던 그는 자신의 4번째 올림픽이 될 평창에 대한 도전 의지를 불태웠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갑작스럽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제 평창에서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그의 사망은 국제 봅슬레이계로서도 크나큰 아픔과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 최고의 드라이버로서 봅슬레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그의 사망을 애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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