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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플라스틱은 왜 참기름 때문에 깨지는 걸까

[취재파일] 플라스틱은 왜 참기름 때문에 깨지는 걸까
처음에 '참기름 때문에 냉장고 플라스틱이 깨진다'는 걸 듣고는 이해가 잘 안됐습니다. 그래서 화학과 교수님들, 화학계열 연구소 연구원님들, 화학업계 관계자분들 등 많은 분들께 물어봤습니다. 사실 이런 전문가들도 첫 반응은 비슷했습니다. "네? 뭐라고요? 그건 말이 안되는데요?" 이런 의견을 낸 전문가도 있었습니다. "그냥 제품 하자 아닌가요?" 

8시 뉴스 보도를 통해 그리고 지난번 취재파일을 통해 말씀드렸듯이 피해자도 몰랐던, 언급하지도 않았던 사고 원인인 '참기름병'을 먼저 꺼냈던 게 삼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에게 계속 물어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제조사가 참기름병 표면에 묻은 참기름 때문이라고 먼저 얘기하는데, 근거가 있지 않을까요?" (  ▶ [취재파일] "냉장고 선반도 놀란 참기름의 고소함", ▶ [단독] "참기름 묻으면 깨져요"…황당한 냉장고 선반)

계속 취재하다 보니, 해당 냉장고에 사용된 소재가 '내화학성' 즉 기름을 견딜 수 있는 정도가 약한 것이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석유화학 분야는 못 알아 먹는 문과 출신이라 저의 '무식' 때문에 취재에 도움을 주신 전문가들이 고생을 많이 하셨는데요.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플라스틱의 원료는 대부분 석유 정제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남는 '나프타'입니다. 나프타에 첨가물을 더하고 빼거나 제조 공정상의 수많은 화학 작용을 통해 수많은 종류의 플라스틱이 생산된다고 하는데요. 태생이 '기름'이다 보니 플라스틱은 비슷한 성질을 가진 '오일' 종류를 만나면 태생적으로 섞이게 되고 이를 방지하는 게 화학회사의 기술력 중 하나라고도 합니다. 

냉장고 플라스틱 얘기를 해볼까요. 과거에는 냉장고 소재로 투명 플라스틱 부분은 PC(폴리카보네이트), 냉장고의 하얀색 부분은 ABS라는 소재를 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PC의 경우 환경호르몬 검출 우려가 제기되면서 다른 투명 플라스틱으로 대체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즘 냉장고에 많이 사용되는 투명 플라스틱은 일반적으로 PS(폴리 스티렌)입니다. 제가 도움을 받았던 화학분야 연구원에 따르면, PS 중에서도 GPPS(General Performance PS)라는 플라스틱이 투명하면서도 유리 같은 질감을 낼 수 있는 소재로 많이 쓰이는데 상대적으로 잘 깨질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쓰이는 게 HIPS(High Impact PS)라고 하는데요. '내충격성 폴리스티렌'이라고 하는데. 이 플라스틱은 잘 안깨지도록 하기 위해 고무를 섞다보니 물에 우유를 탄 것처럼 뿌옇게, 불투명한 재질이 된다고 합니다. 이번에 파손 문제가 발생한 냉장고 선반도 GPPS를 쓴 것으로 추정되지만, 삼성 측은 "PS 계열 플라스틱을 사용했다"고만 알려왔습니다. 

결론적으로 "기름에서 태어난 플라스틱이 비슷한 성질의 기름과 닿으면서 '화학 작용' 때문에 미세한 '금'(크랙 crack)이 생기면서 파손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였습니다. 식물성 기름인 올리브유나 참기름, 들기름은 그 성질이 '쎈' 편에 속하는 기름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좀 더 크랙이 잘 생긴 게 아닌가, 추정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 PS를 쓰는 한 계속 비슷한 파손 사고가 나는 게 아닐까 우려하시는 시청자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일반적으로 투명 플라스틱이 불투명 플라스틱보다는 내화학성, 기름에 잘 견디는 '내유성'이 약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투명 플라스틱이 시각적으로 보기가 좋으니까 포기할 수는 없죠. 그래서 내화학성이 강한 투명 플라스틱 소재를 쓰면 될 거란 의견을 주신 전문가도 있었습니다. 기술 발달에 따라 플라스틱의 진화가 PS에서 멈춘 게 아니니까요.

앞서 말씀드렸듯 냉장고 투명 플라스틱은 PC에서 PS로 교체돼왔고, PS 역시 폴리에스터(Polyester) 계열로 대체 가능하다고 합니다. 폴리에스터 계열 투명 플라스틱이 기름을 좀 더 잘 견딘다고 합니다. 다만 아직까진 가격이 2배 정도 차이가 나기 때문에 경제성 측면에서 PS가 여전히 많이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가격이 높은 건 다 이유가 있겠죠. 강도가 높아서 상대적으로 잘 안 깨지는 투명 플라스틱은, 사진 속 표시처럼 식품 용기나 물병 같은 물건을 떨어뜨리기 쉬운 부분에만 일부 사용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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