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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히잡 쓴 '소녀 복서'의 위대한 도전

[취재파일] 히잡 쓴 '소녀 복서'의 위대한 도전
지난해 11월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슈가 버트 복싱선수권’에서 16살 소녀 복서 아마이야 자파르는 링에 오르지도 못하고 실격당했습니다.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인 자파르는 히잡을 쓰고 긴 팔과 긴 레깅스를 입고 있었는데, 링에 오르기 직전 대회 관계자가 급히 다가와 “유니폼 규정을 어겼다.”며 실격 판정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국제복싱연맹은 “소매 없는 상의와 무릎을 덮지 않는 하의를 입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미국복싱연맹은 “유니폼 규정은 선수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자파르를 실격 처리한 겁니다.

복싱에 입문한 지 3년 만에 데뷔전을 앞두고 꿈에 부풀어 있던 자파르는 눈물을 흘리며 쫓겨나듯 경기장을 떠나야 했고, 자파르와 맞붙기로 돼 있던 알리야 샤르보니어라는 선수가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 벨트까지 거머쥐었습니다.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우승자인 샤르보니어가 “자파르에게 기회를 빼앗은 것은 불공평하다. 이 벨트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자파르”라며 자파르에게 벨트를 선물한 겁니다.
자파르에게 벨트 선물하는 샤르보니어
이 훈훈한 미담이 미국 언론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알려지면서, 종교 차별 논란에 불을 붙었습니다. 때마침 지난해 리우올림픽에서 미국인으로는 최초로 히잡을 쓴 펜싱선수 이브티하즈 무하마드가 편견을 딛고 동메달을 따내면서 감동을 전하던 때여서 파장은 더 컸습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는 자파르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그녀의 포기하지 않는 열정과 안타까운 사연을 전했습니다. 많은 지지자들이 자파르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고, 자파르의 사연이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기 시작하면서 미국 복싱연맹을 압박했습니다. 미국 복싱연맹은 결국 지난 달 유니폼 제한을 철폐했습니다.

▲ 미국 최초의 히잡 복서 자파르 데뷔전, 4월 29일

그리고 ‘헤비급 복싱의 새로운 제왕‘ 앤서니 조슈아와 클리츠코의 빅매치로 후끈 달아올랐던 지난 주말 (29일) 자파르는 미국 복싱 역사상 처음으로 히잡을 쓰고 데뷔전을 치르게 됩니다. 미니애폴리스의 작은 체육관에는 많은 지지자들과 외신들이 뜨거운 관심을 보였습니다. 헤드기어 안에 히잡을 쓰고, 검은색 긴팔과 레깅스를 입은 자파르가 링 위에 올라서자 환호성이 터졌고, 상대선수인 이사벨라 핸드릭슨은 자파르를 안아주며 격려했습니다.

자파르는 경기가 펼쳐지는 10분 동안 링 위를 맘껏 누비며 주먹을 뻗었습니다. 키 큰 상대를 맞아 때리는 횟수보다 맞는 횟수가 더 많았지만, 행복했습니다. 최선을 다한 자파르는 핸드릭슨에게 결국 패했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자파르는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내가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어떤 강제 규정도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내가 오늘 그걸 보여줬다. 모든 소녀들이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자파르도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펜싱을 하라“는 권유를 받았다고 합니다. 유니폼으로 온몸을 가릴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자파르는 칼로 찌르는 것 보다 주먹으로 얼굴을 맞는 게 더 낫다며 복싱을 고집했고, 마침내 모두의 관심 속에 감격적인 데뷔전을 치렀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멉니다.

미국 복싱연맹의 배려로 국내에서는 복싱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아직 국제복싱연맹은 아직도 ‘유니폼 규정’을 유지하면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자파르가 목표로 하는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서는 국제연맹의 규정이 개정돼야 가능합니다.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자파르의 ‘위대한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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