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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지현, "빌린 퍼터로 우승…송희 언니 恨도 풀렸대요"

[취재파일] 김지현, "빌린 퍼터로 우승…송희 언니 恨도 풀렸대요"
"평펑 울고 났는데 아직도 우승 실감 안 나"
"퍼터 빌려준 김송희 언니가 '대신 한을 풀어줘 고맙다'고 전화했을 때 또 울컥"
"소심한 성격 맞지만 '새 가슴'은 아냐…첫 승 물꼬 텄으니 올해 3승 도전"
 
김지현이 한국여자프로골프, KLPGA투어 KG 이데일리여자오픈에서 데뷔 8년 만에 생애 첫 우승을 차지하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인터뷰를 할 때 순간 시청률이 동시간 대 프로야구 시청률을 넘어섰습니다.

분명히 얼굴은 활짝 웃고 있었는데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져 첫 우승의 문턱을 넘어서기까지 겪었던 마음 고생이 시청자와 현장에 있던 갤러리, 방송 관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우승 다음 날 오전 김지현의 소속팀인 한화골프단의 서울 사무실에서 그녀를 만났습니다.
 
"노무라 어떻게 됐어요? 우승했어요?"
 
약속 시간 보다 20분 먼저 사무실에 도착한 그녀는 문을 열자마자 먼저 노무라 하루의 LPGA 우승 여부부터 확인했습니다. 같은 한화골프단 소속인 노무라 하루(한국이름 문민경)는 그 시간 미국 LPGA투어 텍사스 슛아웃대회에서 크리스티 커와 연장 6번째 홀까지 가는 접전 끝에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노무라의 우승 소식을 전해주자 김지현은  "와~대박!"이라고 외치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습니다.
 
한화골프단 관계자들은 휴일(근로자의 날)인데도 모두 사무실에 출근해 소속 선수들의 연이은 승전보에 들뜬 표정으로 다음 일정들을 챙기느라 분주한 모습이었습니다.
김지현 선수
김지현은 2010년 정규투어 데뷔 후 첫 우승을 하기까지 125경기를 치렀습니다.

그동안 2부투어로 떨어져 눈물 젖은 빵도 먹어봤고, 정규투어 챔피언조에서 조연 노릇만 하다가 멘탈이 약하다는 비아냥도 들었습니다. 지난해까지 준우승 2회를 포함해 톱5에 10번, 톱10에 22번이나 들었지만, 우승컵은 늘 다른 선수들의 차지였습니다. 친구나 동료, 언니들의 챔피언 세리머니에 들러리만 서다가 막상 첫 우승을 달성하고 보니 그동안 도와줬던 많은 분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 가고 힘들었던 일들이 떠오르며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멈추지 않았다고 털어놨습니다.
 
- 축하 전화 많이 받았어요?
"네, 전화도 받고 축하 메시지도 정말 많이 받았어요. 답장하느라고 손가락 부러지는 줄 알았어요.(웃음)
여기 저기서 축하받고 새벽 두 시에 잠들었는데 하루가 지났어도 아직 우승했다는 게 실감이 안 나요."

 
- 축하 메시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모든 메시지가 다 고맙고 의미가 있었지만  (김)송희 언니와 (윤)채영 언니 메시지에 또 한 번 울컥했어요. 제가 이번 대회에서 송희 언니 퍼터(반달형 오딧세이)를 갖고 나갔거든요. 작년 한화금융 클래식 대회 때 언니 퍼터를 빌려 써 봤는데 어드레스 때 느낌이 너무 편하고 좋았어요. 송희 언니는 대학원 다니느라 대회에 잘 안 나갈 때여서 제가 당분간 빌려 달라고 했죠.

제가 우승하고 나서 송희 언니한테 전화 왔어요. '너 무슨 퍼터 썼냐?'  묻길래  '언니 퍼터 썼지~' 했더니, '그래 잘했다. 지현이가 내 한을 대신 풀어줬구나' 라고 하시더라고요. 언니는 그 퍼터로 LPGA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마음 고생 많이 했을 텐데 그 말을 들으니 정말 마음이 짠했어요."

 
- 윤채영 선수 메시지는 뭐였죠?
"(한숨을 크게 내쉬고) 채영 언니는 제가 가장 아팠던 순간을 함께했어요. 작년 두산매치플레이 결승에서 제가 박성현 선수에게 마지막 두 홀을 남겨놓고 두 홀을 앞서가다 따라잡혀서 연장전에서 졌을 때, 정말 제 자신에게 화가 많이 나서 울고 있었는데 채영 언니가 제 곁에서 하루를 같이 지내면서 진심으로 위로를 해줬어요.
지금 일본 투어 뛰고 있는 채영 언니가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지금 네가 눈물 흘리는 걸 보니 작년 눈물이 또 생각난다. 결국 해냈구나. 축하해'

채영 언니가 2014년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생애 첫 우승할 때가 데뷔 9년 만이었고 160경기 만이었어요. 제가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을 때마다 언니가 '넌 그래도 나보다는 빨리 첫 우승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줬는데 진짜 제가 채영 언니보다는 빨리 첫 우승을 했네요(웃음)"

데뷔 8년 만에 우승한 김지현 선수
-원래 성격이 소심한 편인가요?
"솔직히 소심한 건 인정해요. 결정적인 순간에 퍼팅이 항상 짧아요. 그래서 후배지만 (고)진영이 스타일이 부러웠어요. 승부처에서 진영이가 퍼팅 어드레스를 하면 그냥 보는 사람도 편안해 보여요. 한 번 방향을 결정하면 주저하지 않고 지르는 과감함, 결단성, 배짱…. 전 그런 게 부족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첫 우승의 문턱을 넘고 나니 마음이 참 편안해 졌어요. 앞으로는 정말 즐기면서 경기를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새 가슴' 소리는 정말 듣고 싶지 않아요."
 
-이번 대회 최종라운드 18번 홀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7m 버디퍼팅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떨리지 않았나요?
"솔직히 저는 그때 그게 우승 퍼팅인지 몰랐어요. 스코어 전광판을 보지 않았거든요. 눈이 나빠서 보이지도 않았고 보려고 하지도 않았어요. 제가 몇 등인지, 다른 선수들 스코어는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마지막 퍼팅이니까 짧지만 않게 치자 생각했죠. 오르막 경사였는데 왼쪽 안쪽 끝 정도 보고 치려고 캐디 오빠한테 물어봤더니 캐디 오빠가 그냥 가운데 보고 세게 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홀의 한가운데로 질렀는데 그게 들어간 거예요. 그때까지도 제가 우승한 지 몰랐어요. 캐디 오빠가 '너 우승했어, 축하해' 하는데 제가 '뻥 치지 마' 그랬어요. 그런데 뒤에 있던 박결 선수랑 후배, 동료들이 물을 뿌려주더라고요. 정말 얼떨떨하고 실감이 안났어요. (박)결이가 저를 안아주었을 때 비로소 눈물이 빵 터졌어요. 결이도 같이 울더라고요."
 
-하도 울어서 주변 사람들까지 울컥하게 만들었는데, 누가 가장 생각나던가요?
"제일 먼저 엄마가 떠올랐어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13년 동안 저를 따라다니시면서 헌신적으로 뒷바라지 해주신 분이죠.  빨래, 밥, 옷 코디, 운전까지 매니저 역할 하시면서 힘들어도, 몸이 불편하실 때도 내색 한마디 안 하셨어요. 이번에 우승하고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까 엄마가 안 계시더라고요. 클럽하우스에 계셨대요. 눈 마주치면 제가 괜히 신경 쓰일까 봐 자리를 피하신 것 같아요. 정말 엄마는 저에게 큰 힘이 되어 주셨어요.

그리고 또 고마운 분, 제 스윙 코치 안성현 프로님 껴안고 한참 울었어요. 제가 안성현 프로님한테 배운 투어 프로 1호 제자인데, 5년 동안 이정민, 조윤지 등 저보다 뒤에 배우기 시작한 다른 선수들은 줄줄이 우승을 하는데 저만 우승을 못 해서 늘 죄송한 마음이었어요. 이번에 우승하고 나니까 10년 묵은 체증이 싹 내려가는 것 같아요."
 

-우승 문턱에서 수없이 실패하다가 이번엔 무엇이 달랐나요?
"마음을 비우니까 되더라고요. 욕심을 버리고 다 내려놓고 치니까 2라운드에 10언더파 개인 베스트 스코어도 나오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스코어가 한 타 씩 줄어가고 있었어요. 최종라운드 첫 홀에서 3펏으로 보기를 했을 때 솔직히 좀 흔들린 건 사실이예요. 그때 캐디 오빠가 저를 진정시켜 줬어요. '우승 생각하지 말고 그냥 즐기다 가자.' 이 한 마디에 다시 정신이 번쩍 났어요. 7번 홀 버디 잡고 그 다음부터는 다른 선수 스코어도, 제 스코어도 안 보고 그냥 한 타, 한 타, 한 홀, 한 홀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캐디(이윤상, 31세)와는 호흡 맞춘 지 오래 됐나요?
"올해부터 제 백을 메주시는데, 원래 남자선수 박상현 프로님 캐디를 하셨던 분이세요. 박 프로님과 4승을 합작한 베테랑이시죠. 경험이 많은 분이라 저에게 도움이 많이 돼요. 제가 눈이 안 좋아요. 한쪽은 난시, 다른 한쪽은 근시라서 공을 치고 나면 공이 어디로 날아가는지 보이지 않아서 캐디 오빠 없으면 공을 못 찾아요. 저와 함께하기 직전에는 박결 프로와도 호흡을 맞추셨는데 여자 프로대회 우승은 저와 처음이래요."
 

-샷의 비거리도 좀 늘어난 것 같은데요?
"맞아요. 제가 겨울에 체력 훈련 열심히 하고 스윙도 간결하게 바꾸고 나니까 드라이버로 255~260야드 정도 치는 것 같아요. 작년보다 10~15야드 정도 늘었어요. 좋은 장비 덕도 좀 봤죠."   
우승 트로피를 들고 있는 김지현 선수
-이제 첫 우승을 했으니 다승에 대한 욕심도 생길 법한데?
"(손사래를 치면서) 아뇨. 우승은 욕 부린다고 되 는게 아니더라고요. 또 말씀드리지만 마음을 비워야 해요. 욕심부리는 순간 망가져요. 이번 주에 열리는 교촌 허니레이디스 대회에서는 컷 통과만 하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마음속 깊이 묻어 놓은 목표는 있지 않나요?
"(웃으면서) 올 시즌 3승까지 도전해 보고 싶어요."
 
-올 시즌 남은 대회 중 꼭 우승하고 싶은 대회는?
"두산 매치플레이에서 지난해 연장전 패배를 설욕하고 싶어요. 메이저대회 중에서는 한화금융클래식과 이수그룹 KLPGA 선수권에서 성적이 좋았었는데 지금처럼 샷 감만 유지하면 좋은 결과가 기대됩니다."
 
-외모가 '차도녀'(차가운 도시의 여자) 스타일이라 성격이 까칠해 보인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는데?
 "제가 선글래스를 끼고 경기를 하다 보니 그렇게 보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저와 몇 마디 해보시면 아주 웃기다고들 많이 말씀하세요. 제가 보기보다 꽤 털털하거든요.(웃음)"
 
-팬들이 꽤 많던데?
"정말 고마운 일이죠. 그동안 우승 한 번 못 했어도 주말마다 꼭 고정으로 응원 오시는 분들 있어요. 그런 분들한테는 정말 고맙고 미안하고 대단하고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온라인 팬 카페 회원도 1천 명 정도 되는 것 같아요. 팬분들 생각하면 제가 더 잘해야죠."
 

-여가 시간이 생기면 주로 뭘 하나요?
 "제가 먹는 걸 좋아해서 맛집 투어를 하거나 영화를 봐요. 영화는 액션이나 코미디 장르를 좋아하고 멜로나 공포물은 질색이예요."
 
인터뷰 말미에 결혼관과 이성관에 대해 가벼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자 프로 골퍼들은 결혼 적년기를 많이 놓치는 경향이 있는데 결혼은 언제쯤 계획하고 있나요?
 "제가 1991년생, 세는 나이로 27살인데 33살쯤 결혼하고 싶어요. 6년 뒤죠. 그 전까지는 투어에 집중하고 싶어요. 결혼과 출산 후에도 육아와 투어를 병행하면서 우승까지 하신 홍진주, 안시현 프로님 보면 정말 존경스럽고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어떤 스타일 남자를 좋아하시나요?
 "저는 남자다운 스타일 좋아해요. '꽃미남' 스타일은 별로예요. 씩씩한 '상남자' 스타일에 적당한 배려심이 있는 남자면 'OK' 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데 그녀가 웃으면서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대회가 매주 열리는데 남자 만날 시간, 소개받을 시간이나 있을까요? 그냥 투어에 전념하려고요. 첫 승 물꼬를 텄으니 이제부터 진짜 시작인걸요(웃음)"     

(사진=KLPGA 제공/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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