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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둘레길이 갖춰야 할 조건에 대하여 - 양평 물소리길 2코스

강변이야기 길

가끔 살다 보면 이름에 혹~ 해서 일을 그르칠 때가 있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 못한 것이다.
 
대부분 엘리자베스나 그레이스 같은 이름(우리 이름으로 예를 들기에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이해해 주시라!^^)을 들으면 왠지 부드럽고 상냥하고 단정해 보이는, 얌전한 여성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이름과 그 이름 안에 담겨진 실체가 닮아있으리라는 우리의 예측은 너무도 자주 빗나가고, 때로는 너무나 엉뚱한 결과 앞에서 망연자실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름이 주는 허상에, 또 넘어가기도 한다. 내가 딱 그랬다. 70여 년 만에 4월 기온으로는 최고였다는 어느 날에 걸은 길이, 어쩌면 그랬다.
길은 이름값을 못하더라~
그 길은 양평 <물소리길>이었다. 주말의 교통체증을 뚫고 허우허우 달려가서 걸은 길이었는데…그래서 더욱 아쉬웠다.
 
길은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의 노선인 국수역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농촌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는 분양을 기다리는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물소리길’은 ‘남한강과 북한강의 맑은 물소리와 자연의 소리‘를 아우르는 길이라는 근사한 모토를 내세운다. 하지만 그 길에서 여러 시간을 보낸 이의 느낌은 약간 달랐다. 그곳에는 물소리와 자연의 소리보다는 개발의 소리가 더 거셌다.
양평 물소리길 2코스 지도
‘물소리길’은 총 6개의 코스가 있다. 그중에서 걸은 길은 2코스, 일명 ‘강변 이야기 길’이다.
 
굳이 이 코스를 선택한 이유는 너른 강을 벗 삼아 여유 있게 걸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드라이브 삼아 여러 번 와 봤던 길이니 손에 잡힐 듯 그림이라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한 길이었고, 그러니 당연히 걷고 싶었던 길이기도 했었다.
 
게다가 물소리길 중에서도 그 이름도 상큼한(?) '강변 이야기 길'이니 그 길이 품고 있는 풍경이며, 선선한 강바람이 들려줄 이야기에 살짝 흥분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또 하나, 16km가 좀 넘는 거리라, 다른 코스에 비해 하루 걷기에 적당한 코스라고 딴에는 생각했던 것이다.
길은 처음부터 상상에서 한 뼘 정도는 엇나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길은 처음부터 상상에서 한 뼘 정도는 엇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껏 걸은 다른 둘레길도 시작은 다 어설펐다고 나름 이해를 하고, 스스로에게도 위안 아닌 위안을 건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물소리길이 지나는 산과 들은 곳곳이 파헤쳐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참을 걸어도 길은 그 길이 그 길이고, 그 길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렇다고 대단한 농촌의 목가적인 풍경을 기대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내가 아는 평범한 시골의 어느 마을 길이나 논둑길 정도만 됐어도 그나마 만족했을 텐데, 물소리 길이 지나는 곳곳의 산과 들은 파헤쳐진 공사장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욕심은 들을 지나고 산 중턱까지 집어 삼키고 있었다.
그렇게 파헤쳐진 산과 들을 보면서 나는 한하운의 시, <전라도 길>을 떠올렸다.
 
(전략)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 찌까다비 : 일본의 전통적인 신발로, 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에 끼우는 형태의 신발. 오늘날의 ‘조리’와 비슷하다.
개발의 현장 한 가운데 솥단지 하나 걸려 있다.
‘가도 가도 황톳길’의 느낌이 비슷했다. 이곳 저곳이 파헤쳐져 산야(山野)가 황토의 벌건 속살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한하운 시인의 개인적 아픔과 나의 실망이 동렬로 비교조차 가능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지만, 그냥 그 순간 시인의 시가 떠올랐다.
 
‘전원생활’이라는 도시인의 로망과 개발업자의 이익이 만나 양평의 산과 들이 열심히 집이 들어설 주택단지로 ‘트랜스포머(?)’가 되는 중이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한꺼번에 불어 닥친 열풍이 과하게 느껴졌다. ‘차례차례’라는 질서의 개념보다는 ‘무분별’이라는 무질서의 느낌이 강했다.
길 위로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의 고압적인 주택들만이 늘어나고 있었다.
정작 이 길을 둘레길 코스로 잡은 이는 한가로운 농촌의 풍경이 나름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이름도 정겨운 방죽들길이며 고들빼기마을이라는 곱고 순박한 이름 위에 물소리 길이라는 이름을 덧칠해 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농촌은 사라져가고 있었고, 산 중턱의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의 고압적인 주택들만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길은 가도 가도 개발의 현장이었다. 길의 시작점에서 한 시간을 넘게 걸었는데도 개발의 현장은 끝이 나질 않았다.
분양을 알리는 플래카드는 어느새 길 위에서 익숙한 풍경이 된다.
후회막급이다. 일전에 써먹었던 유행어인데도 또 생각난다. ‘내가 이러려고 먼 길을 달려와 땡칠이(*오래전 한 드라마에 출연한 강아지 이름)처럼 걷고 있는 것인가’. 동네 곳곳에는 분양 광고와 플래카드가 농촌 풍경의 중심에서 펄럭이고 있었다.
제비꽃과 민들레
돌양지꽃
그나마 길옆에서 가지런히 피어있는 들꽃들을 만나는 것이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그렇게 몇 개의 마을 지나고, 커다란 언덕 하나를 넘고서야, 개발의 현장을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기대를 했다. 이제는 걸을 만한 길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지만 웬걸…길은 전혀 엉뚱한 곳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저 터널을 지나면 걸었던 길과는 다른 또 다른 길이 있을 줄 알았다.
이정표는 무작정 자전거길을 걸으라고 강요하고 있었다.
 
국토 파헤치기를 모토로 삼았던 이 아무개 전임 대통령께서 자신의 최대 치적으로 꼽는 그 길 말이다. 하지만 자전거길은 그야말로 자전거를 위한 길이 아닌가. 특히 이곳의 자전거길에는 도보 여행자를 위한 최소한의 갓길조차도 확보되어 있지 않은, 말 그대로 자전거길이었다.
자전거길에는 도보 여행자를 위한 최소한의 갓길조차도 확보되어 있지 않은, 말 그대로 자전거길이었다.
이 전대통령께서 워낙 길을 잘 닦아 놓아 자전거들에게는 막힘이 전혀 없는 특A급의 길인지라 그 속도는 가히 위협적이었다. 그런데 이 길을 도보 여행자도 같이 걸으라는 것이다. 도보 여행자의 안전 따위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자전거 여행자에게도 길을 공유하는 도보 여행자가 위협이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헐~……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어쩌랴~ 물소리길임을 알려주는 리본들이 끈덕지게 자전거길 위 난간을 따라 늘어서 있으니 좇아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배려와 그들의 조심성을 믿기로 한 것이다. 달리 가야 할 길도 모르니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인천둘레길. 길은 소래습지를 지나고 있었다.
부안 마실길. 둘레길이란, 지자체나 마을이 품고 있는 역사나 문화, 자연 생태를 다른 이에게 내보여 주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면서 자랑이기도 할 것이다.
도보길, 그중에서도 둘레길은 운동이나 하자고 무작정 걷기 위한 길은 아닐 것이다.
 
지자체가 이름을 걸고 만들거나 연결한 둘레길이란, 길을 만든 이나 지자체 입장에서는 그 지자체나 마을이 품고 있는 역사나 문화, 자연 생태를 다른 이에게 내보여 주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면서 자랑이기도 할 것이다.
 
한편으론 그 길을 걷는 도보 여행자들은 길을 연결해 놓은 이들이 펼쳐놓은 길 위의 역사와 문화, 자연이라는 선물에 감탄하기도 하고, 또 배움의 장소이면서, 여유와 사색이라는 휴지(休止)의 공간이기도 할 것이다.
대부도 해솔길. 둘레길은 배움의 장소이면서, 여유와 사색이라는 휴지(休止)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물소리길 위에서는 감탄이나 배움, 여유나 사색 같은 것들은 고사하고, 도보 여행자들을 위한 배려 자체가 부족해 보였다. 그냥 무작정 일정 거리의 길을 연결해 놓기만 한 듯한 느낌? 길을 만든 이나 지자체에게는 야속하겠지만 그런 느낌이 들었다.
 
두세 시간을 넘게 걸으면서 한 번도 이 길을 걷기 위해 기꺼이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냥 조금 후회가 됐다. 좀 더 알아보고 올걸…하는 마음도 들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데, 입에서는 우짜노~ 하는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
중앙선 폐 선로였던 기곡터널이 자전거길이 되었다.
길은 터널 속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폐 선로를 자전거길로 만든 기곡터널이다. 기곡터널이 ‘아트’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이유는 그 터널 안에 16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레이저쇼가 가능한 조명시설을 해놓았기 때문이란다. 같은 중앙선 폐 선로인 용담터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지역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조명시설이 2014년 고장 난 이래 오랫동안 방치되어 왔고, 전기료라는 비용의 문제까지 있어 제대로 운영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시행정의 그림 속에는 유지 보수라는 개념은 아예 없었던 것인지…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폐 선로는 걷는 길이 되었으나, 걷기에는 너무 짧았다.
터널을 빠져 나오면, 길은 옥천면으로 이어진다. 옥천냉면으로 유명한 그 옥천이다.
 
그 곳에서 100여m 정도 폐 선로를 걸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노루 꼬리만큼이나 짧은 까닭에 ‘맛뵈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걸을 길이 아니다. 그나마 이제껏 하고는 조금 다른 풍경이라는 사실에 위안을 얻는다.
물소리길에는 늘 자전거와 자동차라는 동행이 있었다.
폐 선로를 벗어나면, 길은 ‘옥천 볼랫길’이라는 마을길로 이어진다. 이제는 자동차와의 동행이다. 사실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차 아니면 자전거와의 동행이 일상화된 길이 ‘물소리길’이었다. 도보 여행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양평 물소리길
아마도 누군가 바람이 났다면 그건 복숭아꽃 때문일 것이다.
그나마 볼랫길 위에서 만발한 도화(桃花)를 만났다. 개인적으론 복숭아꽃의 붉음이 여타 다른 붉은 꽃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으뜸이라는 생각이다. 알 수 없는 관능미가 느껴진다고나 할까. 봄바람에 누군가 바람이 났다면 그건 복숭아꽃 때문일 것이다.^^ 도화살(桃花煞)이 그냥 생겨난 말이 아니지 않은가.
상곡재의 입구. 물소리길에서 처음 만나는 도보길이다.
조금을 더 걸어가자 처음으로 도보 여행자를 위한 짧은 산길이 나타났다. 상곡재로, 단풍마을에서 옥천방면으로 넘어가는 산길이란다. 비록 600여m 밖에 되지 않는 짧은 길이지만, 자전거와 차가 없는 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반갑다.
이 길 위에서만큼은 바쁘게 쫒기듯 걸었던 걸음을 조금은 느슨하게 놓아주고 싶어진다.
이 길 위에서만큼은 바쁘게 쫓기듯 걸었던 걸음을 조금은 느슨하게 놓아주고 싶어진다. 아마도 이 길을 벗어나면 또 이제껏 걸었던 길의 반복일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고, 슬픈 예감은 자꾸만 이 길 위에서라도 쉬어가라 유혹을 한다.
 
이 길 위에서 준비해간 바나나 하나로 늦은 점심을 대신했다. 사실 두 시간 이상을 걸었지만 길 위에 간단한 요기라도 할 수 있는 공간도 달리 없었던 탓이다.
길 위에서는 진달래도 동행이었다.
4월의 야산에서는 별것도 아닌 진달래마저 이 길에서는 특별한 손님이고 풍경인 양 반갑다.
 
짧은 산길이 끝나자마자 또다시 길은 자동차와의 동행을 강요한다. 가야 할 목적지가 정해져 있는지라 길 위에서의 이탈은 애초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기에 끝까지 가보자는 오기가 발동한다. 하지만 조금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양평 물소리길
개천에서 먹이를 찾는 백로와 길 가의 꽃잔디가 차라리 위로가 되었다.
길 위에서 만나는 금잔디와 개천에서 먹이를 찾는 백로 한 쌍에게서 억지로 위안을 찾는다. 그러다가, 자동차길 옆 천변 둑길에서 만난 하염없이 지고 있는 벚꽃들의 낙하(落下)에서, 또 목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의 행렬에서 문득 봄이 가고 있음을 깨닫는다.
길은 다시 자전거길이다. 걷는 이는 나 혼자뿐인가 보다.
옥천 냉면 뒤편으로 이어진 길은 다시 자전거길이다.
 
슬슬 지겨움이 밀려온다. 친절하지 못한 길과 더위는 발걸음을 더디게 하고, 고역으로 다가온다. 달리 방법도 없으면서 길 위에서의 이탈을 잠시나마 고민해 본다.
그만 두고 싶을 때, 딱 한 걸음만 더~
그러다가 조셉 M. 마셜의 책, <그래도 계속 가라(Keep Going)>의 충고를 떠올린다. ‘한 걸음만 더 나아갈 힘이 있다는 걸 알면, 포기하는 것보다 계속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충고 말이다.
 
‘계속해서 희망을 품는 것이야말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마셜의 말은 이 길 위에서는 해당사항이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어쩌랴~
 
물소리길 위에서의 희망이란 희망고문일 가능성이 크지만 ‘그래도 계속 가라’는 충고만큼은 수용해야 할 듯 싶었다.
계속해서 희망을 품는 것이야말로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는 말한다.
 
‘강하다는 것은 네가 아무리 지쳐 있더라도 산꼭대기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딛는 것을 의미한단다. 그것은 비통해 하면서 눈물이 흐르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을 뜻하고, 사방이 캄캄한 절망으로 들러 싸여 있다 하더라도 계속해서 해결책을 찾는다는 뜻이지......
 
산꼭대기를 향해, 희망을 향해 내디딘 가장 연약한 한 걸음이 가장 맹렬한 폭풍보다 훨씬 강하단다....... 그래도 계속 가라!’
 
조셉 M. 마셜의 혜안이 길 위의 지친 도보 여행자의 등을 떠민다.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그래 속는 셈치고 끝까지 가보자!
길은 덕구실 보도육교를 지나면서 강과 연결되어 있다.
길은 덕구실 보도육교를 지나면서 강과 연결되어 있다. 길을 걸은 지 세 시간여만이고, 일정의 2/3가 지난 지점에서 ‘물소리’에 어울릴만한 풍경과 맞닥뜨린 것이다. 남한강이다.
강을 따라 길은 흐르고 있었지만, 그 길은 자전거를 위한 길이었다.
하지만, 이 길 역시 도보 여행자를 위한 길은 아니었다. 역시나 자전거길이다.
 
오늘의 종착지인 양평역이 머지않았는데, 이제야 물을 보여준 길의 설계자가 괘씸하다. 오른편으로 이어진 강 위에는 수상스키며 보트를 즐기는 이들의 독무대다.
애기똥풀이 지나는 이에게 눈인사를 건넨다.
그나마 길 위에는 자전거를 타는 남매들의 즐거운 웃음이 있고, 길 가장자리에서 수줍은 듯 고개 내민 애기똥풀이 있어 부족한 풍경을 채워주고 있었다.
멀리 양근성지가 보인다.
이 길이 끝나는 지점에 고풍스런 성당이 있다. 양근성지다.
 
가톨릭정보에 따르면, 양근성지는 신앙공동체가 형성되고 퍼져나간 순교성지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회 신자인 이승훈이 양근(양평의 옛 지명)으로 내려와 세례를 베풀기도 하였으며, 천주교 신앙이 이곳을 거쳐 충청도와 전라도로 전파되었다고도 한다. 그런 이유로 천주교 박해 당시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곳이 이곳 양근성지다.
고난의 예수는 도보 여행자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성지 안 곳곳에는 예수상을 비롯하여 성지 가장자리 둘레로 다양한 조형물들이 천주교회와 예수의 행적을 알려주고 있었다.
인간 구원을 위한 숭고한 죽음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다.
특히 눈에 띈 것은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였다. 비신자인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인간의 구원이라는 숭고한 목적의 실현을 위해 목숨을 바친 한 반체제 인사의 장엄하면서도 고독한 죽음이었다.
고산정 서쪽의 강섬인 떠드렁산의 별칭이 고산(孤山)이라 고산정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길은 다시 물안개공원의 고산정(孤山亭)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산정 주변을 어슬렁대다 발길을 돌릴 즈음, 공원에서 모임을 갖고 소주잔을 기울이던 중년의 남정네들 중 한 명이 행인인 내게 소주 한 잔 하고 가라며 잔을 권한다. 마음만 받겠다고 하였더니, 공원에서 무분별하게 술 마시는 자기네 사진을 찍어 고발하라며 농을 건넨다. 공원에서의 음주는 당연히 안 되는 것이겠지만, 오가는 이 드문 공원에서 나름 즐거워 보이는 모임인지라 그렇게 민폐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길은 꽃들로 지천이었다.
고산정에서 내려오는 길이 꽃길이다. 벚꽃은 잔바람에 소슬하게 떨더니 꽃봉오리를 떠나 허공을 맴돌다 이내 땅 위로 고요히 낙하한다. 아무런 소리도 없이, 때가 되면 응당 그래야 하듯이 아무런 투정도 없이… 
양평 물소리길
하얀 쌀밥을 닮은 이팝나무 꽃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이팝나무의 하얀 쌀밥 같은 꽃들도 손을 쳐들고 아는 체를 하는지라, 모른 척 외면할 수가 없어 카메라에 담았다.
양근리섬에는 강태공 천지더라.
양근리섬이 보인다. 섬에는 강태공 천지다. 다리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에게 어떤 놈이 무느냐고 묻자, 베스란다. 좀 잡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손맛도 못 봤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많이 잡으시란 인사를 건네며 오늘 일정의 막바지를 향해 걸음을 서두른다.
아주머니들이 개천 언저리에 뿌리박은 쑥을 캐고 있었다.
양평시내로 접어든다. 작은 개천을 에둘러 산책길이 이어지고, 개천 언저리에 뿌리박은 쑥을 캐는 아주머니들을 만났다. 슬핏 마주친 눈빛에 서로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카메라 셔터 소리에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든 것이다.
 
물소리길 2코스 여정의 끝은 운이 좋거나, 계획을 잘 세우면 5일장인 양평전통시장에서 마무리된다. 3과 8로 끝나는 날이 양평 장날이다. 아쉽게도 그 날은 그 날이 아니었다.
양평역에서는 여정을 끝냈다는 반가움보다는 아쉬움이 먼저 아는 체를 했다.
양평역에서 오늘의 여정에 종지부를 찍었다. 몸에서 풍겨나는 땀 냄새에서 오늘 여정이 그리 평탄한 것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하지만 약간 이리저리 헤맨 것까지 포함하면 17km 남짓을 걸었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다. 좋은 길을 걸었을 때에는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포만감으로 풍성하고 가벼운데, 물소리길에서의 도보여행은 거기까지는 이르질 못한다.
길은 동경이면서 도전의 대상이기도 하고, 배움과 깨달음의 터전이기도 하다.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 그렇듯 걷고자 찾아 나선 이에게도 길은 동경이면서 도전의 대상이기도 하고, 배움과 깨달음의 터전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지자체가 보증하는 관광 상품이면서, 그들이 품고 있는 역사와 문화, 자연,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특별한’ 기대를 갖게 하는 둘레길이라는 이름의 길은 두 말 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경이나 향수, 체험, 배움, 한가로운 여유나 사색 등의 요소들을 배제한 채 단순히 길만을 연결해놓고 걸으라고만 닦달하는 어떤 길은 찾은 이를 실망케 하기도 한다.
규슈 올레길. 길 양 옆으로 녹차밭이 펼쳐져 있다.
규슈 올레길에서 만난 도자기 제조소. 여행자에게 쉬고 가시라 인사를 건넨다.
둘레길은 단순히 길을 연결해 놓기만 한 길이 아니다. 속도를 위한 길이라면 자동차도로가 있지 않은가. 굳이 둘레길을 개척하고, 그 둘레길을 세상에 내놓는 이유는 앞서도 이야기한, 마을과 그 마을에서 살아낸 사람들, 또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배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길을 개척하여 연결하는 이가 이 점을 고려한다면, 걷는 이들은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즐거워하며, 더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물소리길은 도보 여행자를 위한 길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자전거 여행자를 위한 길처럼 보였다.
둘레길에는 마을과 그 마을에서 살아낸, 또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배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도보 여행자의 길과 자전거를 위한 길은 같을 수도 있지만, 근본은 다르다. 도보 여행자들을 위한 길에서 속도는 무의미하다.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고, 아름다우며, 성찰의 기회까지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길일 것이다. 지점과 지점을 연결만 해놓는다고 길이 다 길이 되는 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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