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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누가 그들을 '수퍼 전파자'로 만들었나

[취재파일] 누가 그들을 '수퍼 전파자'로 만들었나
메르스(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가 유행하던 지난 2015년 6월, 한 일간지에 실린 기사다.
 
14번 환자는 100㎏이 넘는 거구이며, 지난달 27~29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입원하면서 80명 가까운 환자를 감염시킨 '수퍼 전파자'다. 서울대병원 관계자는 "이 환자는 자기도 14호 환자에게 감염된 줄 알고 있었고 최근에야 자신이 14호 환자이며 수퍼 전파자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고 밝혔다.
 
14번 환자는 1번 환자와 같은 시기에 평택의 병원에 입원했다가 감염됐다. 이 환자 입장에서는 병을 고치러 병원에 갔다가 메르스에 감염된 것도 억울한데, 외부에서는 자신을 메르스 2차 유행의 장본인인 양 바라보는 당혹스러운 상황. 게다가 환자의 신상을 짐작할 수 있는 정보까지 보도됐으니, 아마 더 당황스럽고 충격 받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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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보건복지부는 1번, 6번, 14번, 15번, 16번 환자를 5명 이상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전파자 그룹’으로 분류했다. 이 환자 5명이 메르스에 감염된 뒤 폐렴이 심하게 진행된 상태로 병원에 가 바이러스를 많이 배출했고, 이른바 ‘수퍼 전파자’가 됐다고 설명했다. 보건당국의 주장만 언뜻 들으면, 마치 그들이 감염된 줄도 모르고 병을 키우다가 뒤늦게 병원에 간 것이 메르스 유행의 가장 큰 원인 같다. ‘수퍼 전파자’라는 단어에 자칫 감염병 유행의 책임을 개인에게 지울 수 있는 위험이 내포돼 있는 것이다. 보건당국까지 수퍼 전파자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가져다 쓰면서, 이 다섯 환자들에게 낙인을 찍어버린 셈이다. 기침 많이 하고 침 많이 튀긴 환자들이 수퍼 전파자라는 기사도 등장했다. 그런데 과연 그들이 수퍼 전파자가 된 것은 그들의 잘못일까?
메르스 수퍼 전파자 서울대 논문
서울대병원 연구팀은 최근 메르스의 병원 내 전파 요인을 밝힌 논문을 발표했다. 전체 확진 환자 186명 가운데 15명을 전파자로 분류했고, 이들을 6명 이상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수퍼 전파자(Super-spreader)’, 5명 이하의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긴 ‘보통 전파자(Usual-spreader)’로 다시 나눴다. 논문에 따르면 메르스 관련 수퍼 전파자는 5명, 일반적인 전파자는 10명이다. 이들과 非 전파자를 비교해보니, 38.5℃ 이상 고열과 세 곳 이상의 폐침윤, 병원 내 비 격리기간이 긴 것, 이 세 가지가 메르스 감염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한 발 더 들어가 수퍼 전파자와 보통 전파자의 차이도 꼼꼼히 비교 분석했다. 고열이나 폐침윤 등 임상적인 특성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병원 안에서 격리되지 않은 채 머문 평균 기간에서 차이가 벌어졌다. 수퍼 전파자 6.6일, 보통 전파자 2.9일로 수퍼 전파자가 두 배 이상 길었다. 초기에 제대로 격리를 했더라면 그 다섯 명은 수퍼 전파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이유도 없었고, 국내 메르스 환자가 186명까지 늘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환자를 조기에 진단하고 격리하지 못한 보건 당국과 병원의 과오가 더 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제2, 제3의 메르스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 ‘수퍼 전파자’라는 이름으로 개개인에게 낙인 찍을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다수에게 급속히 전염되는 상황 자체를 조기에 차단하는 것이 보건당국의 역할이다. 감염병을 빨리 탐지해 적절하게 조치하는 것, 그것이 메르스가 우리에게 남긴 뼈아픈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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